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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의 워치블랙북] 마술의 아버지를 만든 시계토리니를 전설의 마술사로 만든 브레게 회중시계
   
▲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포켓워치 넘버 1160. 출처=브레게

마술은 시대를 대변하는 학문이다. 당대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쇼맨십, 그들 본성에 대한 심리학, 의학과 수학, 철학이 모두 담겨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술의 역사 속에도 시계는 결정적인 역할로 등장한다. 이것은 전설로 남은 토리니의 마술에 대한 이야기다.

 

   
▲ 토리니의 제자 '근대 마술의 아버지' 로베르 우댕. 출처=Magic of Robert-Houdin an Artist's Life

18세기, 마술사는 해박한 지식과 철학, 의학, 수학 등을 모두 습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마술 같은 직업이었다. 그만큼 명성과 인기, 명망도 드높았다. 당시 그 대단한 마술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명성을 날렸던 전설적인 마술사 슈발리에 피네티가 프러시아(Prussia)를 방문했을 때, 프레더릭(Frederick the Great) 대왕이 그의 명성을 시샘해 24시간 내로 베를린을 떠나라고 명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대왕은 "프러시아의 왕과 마술의 왕이라는 두 왕이 함께하기에 베를린은 너무 작은 도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런 슈발리에 피네티와 어깨를 견줄만한 마술사가 바로 토리니다. 토리니는 '근대 마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역사상 최고의 마술가인 로베르 우댕을 만들어낸 스승이기도 하다.

 

최대의 위기는 최대의 기회

위대한 마술사이자 의사였던 토리니는 의학지식을 마술쇼에 이용할 정도로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인생 최대의 도전이 찾아왔다. 로마 교황 피우스 7세(Pius VII) 앞에서 마술을 하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당시 교황의 권력은 국왕과 비교될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성공하면 로마를 얻는 것이고,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었다. 토리니는 그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이용해 교황을 놀릴만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황 앞에 서기 바로 전날, 우연히 들른 워치메이커의 가게에서 기적 같은 호재를 맞이한다.

 

   
▲ 1700년대 후반 브레게의 회중시계. 출처=핀터레스트

그 가게에는 토리니가 교황에게 마술을 선보이는 자리에 참석할 추기경의 시계가 맡겨져 있었다. 그리고 토리니가 그 가게에 들렀을 때 마침 추기경의 시계의 수리가 끝났는지 물어보기 위해 추기경의 심부름꾼이 방문했던 것. 저녁이 되어서야 수리가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간 심부름꾼을 보며 토리니는 이틀 전 어떤 가게에서 추기경과 똑같은 시계를 파는 것을 보았던 걸 기억해냈고, 찰나의 순간 교황을 놀라게 할 계획을 구상해냈다. 추기경의 시계는 브레게(Breguet)의 회중시계였다.

토리니는 가게를 나와 똑같이 생긴 시계를 구입한 후 워치메이커에게 가져가 추기경의 시계와 똑같은 문장과 흠집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여담으로, 당시의 시계들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가격이었다. 때문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만이 갖고 다닐 수 있었는데, 그래서 중고 시계 시장이 매우 활성화되어있다고 한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토리니가 산 브레게의 회중시계도 원래 가격의 1/10의 가격에 산 중고 시계였다.)

토리니의 시계는 눈앞에서도 분간이 힘들 정도로 추기경의 시계와 똑같았다. 지금의 표현을 빌자면 프랭큰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역사상 최초의 프랭큰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토리니는 다음날 당대 최대의 귀빈들과 교황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추기경과 같은 브레게의 시계를 들고 갔다. 당시의 상황은 헨리 리질리 에번스의 <History of Conjuring and Magic>에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브레게와 함께 시작된 마술의 전설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교황과 반짝이는 심홍색 의상을 입고 옆에 서있는 추기경. 그리고 내로라하는 위치를 가진 명망 있는 귀족들. 토리니는 그들에게 몇 가지 마술을 보인 뒤 공연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추기경의 시계를 얻기 위해 분위기를 띄웠다. 그는 여러 사람의 시계를 둘러본 뒤 자신의 마술에 적합하지 않다고 돌려주고는 마지막으로 추기경에게 다가가 시계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눈에 띄는 큰 시계가 필요합니다. 추기경님, 추기경님의 시계를 저에게 잠시 빌려주시겠습니까?" 추기경은 분위기 때문에 마지못해 시계를 건네줬고 그 순간 토리니는 시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당시 브레게의 회중시계는 약 1만 프랑(현재 시세로 약 1,000만원)이었다. 추기경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화를 내기 시작했고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선생! 장난이 너무 심하군요!" 하지만 토리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시계에 흠 하나 내지 않고 그대로 돌려준다며 깨진 시계가 본인의 것이 맞는지 추기경에게 확인시켰다. 추기경은 시계 안쪽에 새겨져있는 문장을 살펴보고 자신의 시계가 맞는 것을 확인했다. 그다음 순간, 마술의 역사에 전설로 남은 토리니의 시계 마술이 시작되었다.

 

프랭큰의 활약

   
▲ 로마교황 피우스 7세와 추기경 카프라라. 출처=Jacques Louis David

토리니는 놋쇠 분쇄기와 절구를 가져오더니 추기경의 시계를 그 안에 넣고 갈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그 가루에는 불까지 붙였으므로, 연기가 꺼진 후 남은 잔해는 시계의 테두리뿐이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토리니의 연출에 추기경뿐만 아니라 귀족들, 교황까지도 가까이 와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테두리만 남은 시계를 쳐다봤다. 토리니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교황의 주머니에 준비해온 브레게의 시계를 넣은 뒤 곧바로 타고 남은 추기경의 시계 테두리를 들어 천천히 교황의 주머니에 넣는 연기를 했다. 그리고는 교황에게 주머니를 확인해 볼 것을 요청했다. 교황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토리니가 떨어뜨리기 전과 똑같은 추기경의 시계였다. 추기경이 다가와 직접 시계를 확인했지만 그것은 분명 자신의 시계였다. 교황은 토리니가 자신을 놀라게 한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로마 전체는 토리니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토리니 이후에도 유명한 마술사들은 계속해서 마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도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방송이나 타이거 마스크의 방송을 추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역사를 거쳐 지금의 현대 마술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마법에 가까운 일을 가능케 하는 영역에 들어섰다. 사람들 앞에서 물 위를 걷는다든지, 로또 번호를 예언으로 맞춘다든지 하는 등의 기상천외한 마술들 말이다. 하지만 그 마술들의 시작에 토리니와 같은 너무나도 세련되고 극적인 마술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마술이 브레게의 시계와 함께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참고문헌>

이상한옴니버스, Magic of Robert-Houdin an Artist's Life, History of Conjuring and M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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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시계 전문 페이지 <블랙북> 운영자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06.11  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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롸님
시계의 역사가 깊은 만큼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해서 김태주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재미있는 내용이 있었네요! ㅎㅎ 마술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2017-07-21 16: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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