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의 스마트홈 진격전이 새롭습니다.

KT는 9일 대원플러스알앤디와 계약을 맺어 GiGA IoT Home 서비스를 선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입주자들은 외부에서 앱으로  플러그와 열림감지기를 제어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나아가 전자 기기의 전원 온오프(ON/OFF)와 내부 침입 상태를 확인하고, 홈네트워크사가 제공하는 빌트인(Built-in) 기기까지 관리할 수 있게 되었어요.

 

KT만 스마트홈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스마트홈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LG유플러스도 이날 호반건설과 협력해 신축 아파트 단지 세대 내 홈IoT 플랫폼 구축에 상호 협력한다고 밝혔어요.

오는 6월 포항시 북구 초곡지구에 공급하는 호반건설의 ‘포항초곡 호반베르디움’ 824가구에 홈IoT 플랫폼 구축과 함께 실외 IoT공기질 측정기도 설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SK텔레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감치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를 출시한 상태에서 이날 신개념 공기 관리 서비스라는 '수식어'에 빛나는 스마트홈 에어케어를 출시하기도 했어요. 스마트 에너지미터는 여전히 인기입니다.

통신사들은 왜 스마트홈에 집중하는 것일까요? NB-IoT와 로라(LoRa) 등 다양한 네트워크 방법론을 총동원하는 이들은 제조사와 협력해 자기들의 네트워크 운용 노하우를 십분활용하는 분위기입니다.

초연결 시대를 맞아 페이스북과 구글 등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들이 하드웨어까지 품어내는 수직계열화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사들은 자신들이 확보하지 못한 하드웨어 경쟁력을 외부에서 도입해 자체적인 생태계를 꾸리려는 의도입니다.

▲ KT 스마트홈 서비스가 적용될 레지던스 조감도. 출처=KT

어렵나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는 도로공사라는 독점 인프라 사업자가 관리하며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들이 도로공사에 통행료를 지급했고, 도로공사는 이를 바탕으로 망가진 고속도로를 수리하거나 기존 2차선에 불과한 도로를 4차선, 8차선으로 늘려왔어요.

그러던 어느날, 휴게소 사업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고속도로를 단순히 이동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어요.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휴게소에 들러 맛있는 우동도 먹고 휴식하며 쇼핑도 하는 거에요. 당장 고속도로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고속도로는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종의 재미와 의미를 찾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휴게소의 맛있는 우동을 먹고 쇼핑을 하기 위해 일부러 고속도로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어요.

도로공사의 입맛은 씁쓸합니다. 자기들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고속도로를 운영하고 있는데 실제 돈을 버는 사업자는 휴게소를 차린 이들이니까요. 물론 휴게소 사업자들도 도로공사에 돈을 내지만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주장합니다. "우리가 고속도로를 만들어서 너희들이 휴게소를 만든 것 아니냐. 그러니 우리에게 돈을 더 내라"

나아가 자기도 휴게소를 차릴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다만 문제가 있어요.  휴게소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새 휴게소를 만들려면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노하우가 없어요. 게다가 휴게소를 만들려면 건축업자가 필수적이에요. 이를 어떻게 풀어갈까요?

▲ LG유플러스 스마트홈 시연. 출처=LG유플러스

여기서 고속도로는 네트워크 망, 도로공사는 통신사, 휴게소는 페이스북과 구글 등이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충돌은 그 유명한 망 중립성 논쟁의 핵심이고요. 마지막으로 특별한 휴게소를 만들기 위해 건축업자 섭외와 같은 노하우 확보는 최근 통신사들의 하드웨어 업체(스마트홈의 경우 아파트 등) 협력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통신사가 투트랙 전략을 전개하는 겁니다. 플랫폼 사업자를 망 중립성 논쟁 등으로 압박하는 한편, 자기들도 그들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중심에 스마트홈 전략이 깔려있고, 아파트 및 레지던스에 기본 초연결 인프라를 깔아주는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행보는 사업의 외연적 확장 측면에서 보면 매우 고무적입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시장이 발전하려면 경쟁이 있어야 하고, 그 간극에서 소비자 선택의 폭은 넓어지니까요.

다만 걱정이 되는 지점은 있습니다. 특히 통신사 스마트홈이 아파트에 접목되는 지점.

기술의 발전으로 보면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일말의 우려감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이에요. 하나는 기술의 발전과 실제 생활의 괴리감. 그리고 이를 활용한 부적절한 방법론입니다.

전자의 경우 "스마트홈이 과연 필수적인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통신사를 중심으로 나오는 스마트홈 서비스는 대부분 에너지 절약 및 기존 공기청정기술 등의 제어에 국한돼 있습니다. 이러한 기기들이 모두 연결되어 사용자 경험을 확장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우리는 랜섬웨어 사태 등을 거치며 초연결 시대의 보안 인프라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요. 이런 지점에서 초연결 연동이 당장 필요할까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물론 긴 호흡으로 보면 이러한 시도는 고무적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음 질문, 즉 "이를 활용한 부적절한 방법론"이 거슬립니다. 일각에서는 통신사 스마트홈 전략이 아파트 등과 만나는 점을 '불필요한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 SK텔레콤 스마트홈. 출처=SK텔레콤

공동주택 유료방송 설비를 둘러싼 논쟁을 일종의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2012년 12월31일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 후 디지털 전환이 시작되었을 무렵, 저는 여의도 인근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의 공시청 장비 실태 취재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상파 공시청 설비(MATV/Master Antenna TeleVision)와 유료방송 인프라가 도처에서 충돌하고 있더군요. 문제는 몇몇 아파트 관리소에서 특정 유료방송만 공시청으로 뿌리는 장면입니다. 동행했던 업계 관계자는 "몇몇 관리소에서 소위 접대를 받고 특정 유료방송을 아파트 특정 동에 기본으로 설치, 이를 관리비로 청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과 연결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마트홈 서비스가 유료방송 시청 패러다임과 비슷한 부작용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확정할 수 있나요? 단언할 수 없어요.  왜? 결정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규제도 있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홈이라는 ICT 패러다임이 현실로 내려와 실제 적용이 되는 순간, 고려해야할 부작용은 확실하게 파악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진보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죠. 통신사의 스마트홈 전략을 응원하지만, 마음 한 켠에 '냉정한 접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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