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거 르쿨트르 딥씨와 영수증을 들고 있는 잭 노리스. 출처=The Watch Community, hodinkee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에 발견한 행운이라는 뜻이다.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 있어서의 세렌디피티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중고 마켓에서 찾아낸 헐값의 시계가 굉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정도의 스토리일 것이다. 이것은 모든 시계 수집가들의 꿈이기도 하다. 빈티지 시계 시장에는 실제로 이런 전설이 몇 가지 있다. 캔자스의 셀베이션 숍에서 10달러 이하에 판매되었던 블랑팡 밀스펙이나 워싱턴 DC의 장식품 바구니에서 10달러에 산 1920년대 골드 바쉐론 콘스탄틴, 혹은 Wales의 골동품 가판대에서 발견된 '아라비아의 로렌드'가 착용했던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같은 시계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이 전설의 대열에 새롭게 오를 기가 막힌 빈티지 스토리 하나가 탄생했다.

 

뜻밖의 5.99달러

▲ 잭이 5.99달러에 구입한 예거 르쿨트르 딥씨 알람. 출처=The Watch Community, hodinkee

오래되고 저렴한 시계 구입이 취미인 평범한 남자 잭 노리스(Zach Norris)는 여느 때처럼 퇴근길에 <Goodwill store>에 들러 중고 시계 바구니를 뒤적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아름다운 가게’ 와 비슷한 곳이다. 그날 잭은 <LeCoultre Deep Sea Alarm>이라고 적혀있는 예쁜 시계를 5.99달러에 구입해 돌아왔다. 싼값에 오래된 시계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즐거움이었고,(물론 부인은 지극히 못마땅해했겠지만) 예전에 씨마스터 300을 30달러에 파는 것을 보고 지나쳤다가 놓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빈티지를 보면 바로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도 있었다.

 

▲ 예거 르쿨트르 리테일 숍에서 찍은 예거 르쿨트르 딥씨 알람 무브먼트. 출처=The Watch Community, hodinkee

물론 잭도 LeCoultre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계가 5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봐야 300달러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빈티지 시계를 중고 시계 바구니에서 구입하면 으레 그러하듯 잭은 점검을 받기 위해 예거 르쿨트르 리테일 숍에 시계를 들고 갔다. 예거 르쿨트르의 워치메이커는 깨끗한 칼리버 K815 무브먼트와 노폴리싱, 순정 알람 용두를 확인시켜주었다. 알람도 문제없이 작동하는 좋은 상태의 시계라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잭은 자신이 활동하는 페이스북 동호회 <Vintage Watches>그룹에 시계의 컨디션 설명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뜻밖의 35,000달러

시계 사진을 공개한 뒤 잭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수많은 댓글과 메시지로 핸드폰이 조용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잭의 시계의 가치를 알려줬고, 구입하기를 원했다. 잭이 구입한 시계는 LeCoultre Deep Sea Alarm(르쿨트르 딥씨 알람). 예거 르쿨트르에서 만든 가장 가치 있는 시계 중 하나였다. 최초로 알람을 탑재한 다이버 시계로 알려져 있으며 무려 1000개 이하로만 한정 생산된 제품이었다. 1000개 이하 한정 생산의 빈티지로 순정부품에 노폴리싱, 무브먼트의 상태가 깨끗할 확률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른바, 하늘이 허락해줘야 구할 수 있는 시계라는 뜻이다.

잭은 시계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10월에 있을 결혼자금과 드림 워치인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을 구입하는 것이 그의 삶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시계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잭은 수많은 제안 중 시계업계에서 유명한 Eric Ku(에릭 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릭은 유명한 롤렉스 수집가이기도 한데, 이미 새것과 같은 르쿨트르 딥씨 알람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잭의 시계를 구입하기를 원했다. 에릭은 잭의 드림 워치인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과 함께 35,000달러의 가격을 제시했고 잭은 흔쾌히 수락했다.

 

뜻밖의 하룻밤

▲ 시계를 거래한 후 함께 사진을 찍은 잭(좌)과 에릭. 출처=The Watch Community, hodinkee

시계를 판매할 때 택배가 중간에 도난을 당해 고생을 한 적이 있던 잭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에릭에게 직접 시계를 전달해 주기로 했다. 다음날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탄 잭은 에릭을 만나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랍스터 롤과 튀김을 먹으며 시계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드림 워치를 손목에 올린 후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35,000달러를 손에 넣었음은 물론이다. 시계 사랑에는 조건이 필요 없다던가. 둘은 절친이 되었고, 다음날 에릭은 잭을 공항까지 바래다주며 행복하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잭은 35,000달러에 쿨한 시계 수집가 친구도 함께 얻은 셈이다.

 

뜻밖의 행운, 그 이후

▲ 에릭의 소유였으나 잭의 소유가 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좌)과 잭의 소유였으나 에릭의 소유가 된 예거 르쿨트르 딥씨 알람. 출처=The Watch Community, hodinkee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후 잭은 시계를 구입했던 Goodwill에 거액의 기부를 했다. 그리고 잭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퍼진 이후 Goodwill은 시계 수집가들의 폭발적인 방문에 홍역을 치렀다. 물론, Goodwill과 같은 타 중고 판매숍들도 한동안 몰려드는 시계 수집가들을 감당해야만 했다. 잭은 그해 10월 결혼을 한 후(호화롭게라는 말은 없다. 그는 35,000달러를 벌고도 드림 워치인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을 중고로 산 인물이다.) 드림 워치를 손목에 얹고 여느 때와 같이 퇴근길에 Goodwill에 들르는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잭의 이야기는 틀림없이 다른 빈티지의 전설들과 함께 새로운 전설로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으로 말이다. 잭은 자신에게 같은 행운을 얻길 원하며 조언을 구하는 수집가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전부 다 찾아보면 돼요. 당신이 봤을 때 이상해 보이거나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뭔가가 있으면 그냥 바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구글링을 해보세요. (당신이 찍은 것이 보물일지) 누가 알겠어요?"

 

<참고문헌>

watchexchange, hodinkee, The Watch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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