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진출 성적에 대한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넷플릭스는 분명 OTT(Over The Top) 측면에서 뉴미디어 플랫폼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국 지상파 재전송 모델의 간극을 파고들었던 에오리오(Aereo) 쇼크가 플랫폼과 콘텐츠의 측면에서 미디어의 미래를 흐릿하게나마 보여줬다면, 넷플릭스와 아마존 비디오의 존재감은 그 이상의 파괴적 영향력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미디어 플랫폼이 콘텐츠 큐레이션에 폭식시청으로 대표되는 사용자 경험 변화, 나아가 오리지널 콘텐츠로 유통의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와 옥자
다만, 현재 넷플릭스에 대한 평가는 약간 엇갈립니다. 글로벌 시장 런칭 이후 미디어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면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넷플릭스 실적을 보면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34.7%나 오른 26억4000만달러에 이르렀으나 가장 중요한 신규 가입자 수는 353만명으로 시장 예상치인 368만명보다 적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중론은 '기대'입니다. 특히 공전의 히트를 친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은 넷플릭스의 뉴미디어적 성격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키워드로 여겨집니다.

이제 플랫폼은 매력적인 콘텐츠를 기다리지 않아요. 스스로의 손에서 만듭니다. 최근 발표 일정이 약간 늦어져 불안하기는 하지만, 페이스북이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하는 이유도 결국 넷플릭스의 성공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옥자 논란이 불거져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시간을 돌려 지난해 초로 가겠습니다.

지난해 1월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가전 전시회 CES 2016에서 넷플릭스의 글로벌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나아가 1월7일 한국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시작했어요.

▲ 리드 헤이팅스. 출처=넷플릭스

물론 전조는 있었습니다. 이에 앞서 2015년 10월20일 한국을 찾은 나단 프리드랜드 넷플릭스 커뮤니케이션 총괄이 기자회견을 통해 철저하게 개인의 취향에 맞춰진 인터페이스와 방대하고 자유로운 콘텐츠, 그리고 이를 적절하게 담아내는 넷플릭스의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넷플릭스는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 각 지역에서 나름의 의미있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유료방송시장이 강력하거나 소위 코드컷팅(유료방송 서비스 해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유난히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논란이 있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의 걸림돌 중 하나로 토종 콘텐츠의 부재가 거론된 부분이에요. 글로벌 서비스의 강점을 가진 상태에서 강력한 오리지널 콘텐츠까지 보유하고 있으나, 로컬(지역) 맞춤형 콘텐츠가 없다는 점은 외연 확장의 큰 걸림돌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넷플릭스가 한국을 대표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에 무려 600억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순간 업계는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매력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플랫폼 사업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옥자에 대한 투자는 로컬 콘텐츠에 대한 '니즈'와 이를 매개로 재차 글로벌 시장과의 간극을 좁히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신의 한 수 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오는 29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에요. 다양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 출처=넷플릭스

영화 옥자가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여한 상태에서 프랑스 극장협회가 즉각 반발한 것이 1라운드였습니다. 옥자가 프랑스 극장협회의 심기를 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식 극장개봉을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옥자는 최초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되는 방향을 잡았고, 이러한 행보가 기존 영화제 입장에서는 '이단'으로 보였다는 설명입니다.

심지어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 옥자를 두고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물론 일이 커지자 수습하기는 했지만 갈등의 골은 이미 깊어진 상태였습니다.

2라운드는 CGV 및 국내 멀티플렉스와의 논쟁입니다. 국내 3대 멀티플렉스는 영화 옥자의 극장개봉을 강하게 반발했어요. 극장과 온라인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것은 '극장 개봉 후 온라인 상영'이라는 원칙을 깨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영화 산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홀드백(개봉이 끝난 후 온라인 상영까지 걸리는 시간)을 무시하는 넷플릭스를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한 기류가 감지됩니다.

▲ 영화 옥자. 출처=넷플릭스

'변화는 언제나 두려운 것'
넷플릭스 옥자 논란을 가만히 지켜보면 예전 케이블 및 민영방송, 그리고 위성방송 개국 당시의 지상파 방송사가 보여준 집단반발이 오버랩됩니다.

다시 시간을 돌려볼까요. 지난 1995년 3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48개 케이블 방송사가 48개 SO, 20개 PP로 출범했습니다. 다매체 시대를 맞아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정책으로 추진된 일종의 실험이었어요.

당시 지상파는 케이블의 등장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요? 당연히 불편한 감정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겨레의 1996년 5월3일 TV연예면에는 '방송3사 시청률 작년보다 10%p 하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습니다. 케이블의 등장으로 지상파 시청이 줄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어요. 기사는 그 이유를 '지상파가 높아지는 시청자의 눈높이를 케이블만큼 맞추지 못하고 있으며 채널간 평준화 현상이 심해지는 한편 케이블이 나름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위성방송이 개국한 후에는 더 심합니다. 한겨레 1996년 5월8일 미디어 면에는 '섣부른 위성방송 득보다 실 많다'는 제목의 기사가 있어요. 위성방송의 개국을 두고 저질 프로그램이 양산된다는 등,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이상한 해석이 다소 보이는 가운데 한국방송공사 뉴미디어국의 '관계자' 멘트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기사에서  '관계자'는 기사에서 "케이블이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내보내면 다른 매체도 따라간다"며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방송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외국기업에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를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위 기사들은 케이블과 위성방송 등 다매체 시대를 맞은 지상파의 공포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독과점 생태계를 점유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새로운 사업자가, 그것도 신선한 무기를 바탕으로 공격하면 겁이 날 수 밖에 없어요.

넷플릭스 옥자 논란도 따지고 보면 비슷합니다. 이제 미디어 플랫폼은 하나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유튜브 키즈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모바일 패러다임이 확장되고 있으며, 무료 보편의 미디어 플랫폼을 지향한다던 지상파도 수신료 모델을 추구하면서도 OTT 시대를 맞아 푹을 런칭하며 월정액을 받는 시대에요.

이제 하나의 패러다임, 하나의 연결통로는 없다는 뜻입니다. 오로지 시청자의 선택에만 달린 문제지요. 봉준호 감독이 시사회에서 "결국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공존하게 되리라 본다"고 말한 부분도 이와 맥락을 함께 합니다.

▲ 넷플릭스 기자회견.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그러나 수동적인 자세로 '하나의 연결통로는 없지..우리는 망해야겠네'라며 지나치게 체념할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 TV가 등장했을 당시 영화관은 당장 망하는 사업으로 여겨졌으나, 지금 영화관이 사라졌나요? 오히려 넓은 스크린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콘텐츠를 즐기려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TV가 보급되자 영화관은 70㎜ 와이드스크린을 내세웠고, 가정용 프로젝터가 나오자 영화관은 서라운드 사운드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어차피 사용자 경험의 시대고 이는 가변적입니다. 독과점 플랫폼의 아집을 버리고 유연한 대응책을 찾아야 합니다.

나아가 이번에는 동시상영 문제로 그치지만, 추후 넷플릭스와 같은 뉴미디어 플랫폼이 더 두각을 보일 경우 훨씬 다양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와디즈가 펀딩했던 영화 판도라를 둘러싼 나름의 논란이 생각나요.

와디즈는 영화 판도라 펀딩을 하며 손익분기점 540만 명이라는 ‘기준’을 세운 바 있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이 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190개 나라에 독점 제공되며 불거졌어요.

투자배급사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영화 옥자 배급사이기도 합니다)가 넷플릭스와 영화 판도라에 대한 국내 및 해외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하며 극장 개봉이 끝나면 별도의 홀드백 기간이 없이 바로 넷플릭스를 통해 상영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영화 판도라에 2차 판권 수익이 생겼다는 것이고, 만약 추가적인 수익이 있다면 손익분기점 540만 명이라는 수치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일각의 주장이 나왔습니다.

▲ 영화 판도라 수익 공지. 출처=홈페이지 캡처

물론 이러한 논란은 와디즈가 펀딩 수익 기준을 공지하며 “극장 수익뿐만 아니라 해외세일즈 수익이 정산에 반영되어 손익분기점은 아래 고지된 540만 명보다 낮아질 예정”이라고 정확히 명시한 것이 알려지며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앞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사건'들은 분명 더 일어날 겁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하려면 당연히 상대를 인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일정정도 내려 두어야지요.

여담이지만 지상파는 물론, 이제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으로 분류되는 케이블 및 IPTV가 최근 1인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MCN 사업을 대하는 태도를 반면교사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사실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 입장에서 MCN 사업자와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는 (아직 상대가 되지 않지만 다른 의미로)최악의 상대에요. 하지만 디즈니는 메이커 스튜디오를 6억7500만달러에 인수했고 워너브라더스는 게임 전문 MCN인 머시니마를 품에 안았어요. CJ E&M의 다이아TV는 케이블 채널에 둥지를 틀었고요. 플랫폼을 덧대어 멀티 채널 플랫폼을 체화한 장면은 일종의 진화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영화사업과는 분명 결이 다르지만, 나름의 시사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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