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대립군>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옥자> 상영 문제로 이슈를 양산했던 멀티플렉스 업계에 한 편의 영화로 또다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은 영화 지난 5일 <대립군>의 정윤철 감독이 자신의 SNS에 올린 게시물에서 시작됐다.  

게시물에서 정 감독은 “(멀티플렉스들이) <미이라>에 상영관을 몰아줘 <대립군>과 <노무현입니다>가 직격타를 맞았다”며 “대한민국은 정녕 지옥이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재벌들이 안 바뀌면, 돈이 최우선이면 아무 소용없다. 승자독식, 1등만 살아남는 사회는 정글이지 사람사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90억을 들인 영화가 이렇게 당하는데 독립영화들은 얼마나 우습고 하찮은 파리목숨이겠나”라고 덧붙이며 국내 멀티플렉스 업체들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개봉한 영화 <대립군>의 상영관 수는 개봉 첫날 전국 809개에서 지난 6일 534개까지 줄어들었다. <미이라>는 개봉 첫날인 6일 전국 1257개 상영관에서 상영됐다. 개봉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대립군>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영관의 감소는 ‘억울할 만’ 하다. 같은 시기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압도적 상영관 수를 가져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윤철 감독의 비판에 힘이 실리고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모든 것을 잘못한 것 같지만, 실제 영화 상영과 일정 조정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중요 지표 ‘좌석 점유율’

멀티플렉스들이 각 영화 개봉 이후의 스크린 수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비중 있게 활용되는 지표는 ‘좌석점유율’이다. 좌석점유율은 스크린의 좌석이 채워지는 비율, 즉 좌석 수 대비 실제 관람비율이다.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 100석 규모 상영관에서 60명의 관객이 방문해 영화를 관람했다면, 좌석점유율은 60%다. 

일반적으로 좌석점유율이 높은 영화는 개봉일 성적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상영관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지 않거나 혹은 점점 늘어난다. 반대로 좌석점유율이 떨어지는 영화의 상영관 수는 줄어든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립군>의 좌석점유율은 개봉 첫날인 5월 31일 22.1%, 첫 주말인 3일에는 28.1%를 기록했다. 한편, <대립군>보다 일주일 앞선 5월 24일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의 좌석점유율은 같은 기간 23.5%에서 41.1%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휴일이었던 6일 두 작품의 좌석점유율은 각각 30.2%, 45.8%로 큰 격차를 보인다. 

이러한 추이는 상영관 수에도 반영되는데, 개봉 당일 809개로 시작해 <캐리비안의 해적>(760개)보다 많은 상영관에서 상영됐다. 이후 <대립군>의 상영관수는 개봉 첫 주말인 3일 <캐리비안의 해적>(756개)보다 적은 725개까지 줄어든다. 즉, 일주일 먼저 개봉한 작품보다 떨어지는 좌석점유율의 추이가 상영관의 배정에도 반영된 것이다. 

멀티플렉스 지점 운영 시스템 

정윤철 감독은 국내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방적으로 블록버스터에 상영관을 몰아주는 방식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멀티플렉스 기업 본사가 개별 영화들의 상영 수를 일방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반만 맞다.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3사는 직영과 위탁 2가지로 운영된다. 직영은 본사에서 파견된 경영자가 운영하는 지점이며, 위탁은 개인 사업자가 영화관의 점주로 있어 극장 수익의 일부분을 로열티로 본사에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여기에서 영화 상영 편성은 철저하게 각 지점 경영자의 권한이다. 직영 지점의 경우 본사가 제공하는 영화의 데이터들을 참고할 수 있지만, 특정 영화의 상영 비중을 강요받지는 않는다. 위탁 지점의 경우는 직영보다 본사의 통제에서 더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각 극장들이 개별적으로 특정영화에 대한 상영관 수를 정하는 것은 철저한 수요와 공급의 논리다. 

▲ 출처= 픽사베이

이 문제는 영화 제작사를 계열사로 둔 멀티플렉스가 계열사 작품들에 상영관을 ‘몰아준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과 맥락이 유사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대기업들의 횡포'라기보다는 관객들이 많이 찾을 만한 작품을 걸어 수익을 극대화하는 개별 극장들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다.

멀티플렉스 업계 한 관계자는 “물론 콘텐츠 제작자와 유통업체의 입장에 따라 충분히 해석이 갈릴 수 있는 사안이지만, 모든 잘못이 극장사업자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전달되는 부분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초기 인프라 투자비용이 높은 극장사업의 특성상 수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서비스 자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상영관 배분 문제의 논쟁은 문제를 어느 쪽에서 해석하는가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 있어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라며 “극장 사업자들도 오랜 시간 같은 내용의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영화 상영의 다양성과 수익 추구의 균형을 충분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윤철 감독은 논란이 확산되자 자신의 SNS 게시글을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