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기사 취재를 위해 매주 전통시장을 방문한다. 취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장들의 상황은 대부분 어렵다. 새로운 유통업태의 출현으로 전통시장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에 대규모 쇼핑몰의 출현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시장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지역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나름의 입지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취재 차 서울 소재의 모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이 시장은 어떤 스토리들을 소개할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인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전까지 취재했던 시장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됐다. 상인회장은 “죄송합니다만, 저희 시장은 자랑할 만 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한숨 쉬며 말했다. 물론 전통시장들이 여러모로 힘든 것은 알고 있지만, 세상에 그렇다고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다니.

그래서 상인회장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들어봤다. 그 시장에서는 얼마 전 중소기업청, 소상공인협의회 등 여러 기관의 주도로 ‘전통시장 살리기’ 행사가 진행됐다. 내용에는 청년상인 점포 유치, 특화거리 조성, 시장 쿠폰 발행 등 이벤트 개최 등이 있었는데, 들어간 예산은 억 단위였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상인들에게 남은 것은 행사로 발생한 쓰레기 더미뿐이었다. 시장 점포 운영에 숙련되지 않았던 초보 상인들을 데려와 점포를 차렸던 탓에 특성화 거리의 점포들도 대부분 문을 닫고 한두 점포만 남았다. 시장의 낙후된 시설이나 가판대의 환경 개선 혹은 보수공사는 없었고, 겉으로 보이기에 화려한 행사만이 우선됐던 것이다. 

상인회장은 “시장이 깨끗하게 정돈되고 손님들이 오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행사 같은 것도 효과가 있을 텐데, 지저분한 환경 개선은 뒷전이고 다른 시장에서 반응이 괜찮았던 행사들을 똑같이 적용하는 건 대체 시장의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시장마다 다른 제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정책의 적용은 전형적인 전시(展示)행정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행정 절차가 원래 그런 면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영세한 시장 상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장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 추진은 결국 혈세의 낭비, 그리고 상인들에게는 안타까운 패배감만 안긴 셈이었다. 

정책 수행의 선결 조건은 제대로 된 현상의 파악이다. 이것이 간과되는 순간, 혜택을 입는 이는 없고 누군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비록 이번 일은 작은 시장의 사례지만, 이와 같은 식의 행정 처리라면 다른 어딘가에서는 또 현실과 유리된 행정으로 애먼 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많은 부분에서 개선의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인 전시 행정도 이제는 없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