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움’은 전체 인구 10명 중 한 명이 겪고 있을 정도로 흔한 증상이지만 그 양상이나 원인 질환이 매우 다양해 진단이나 치료가 어려운 질환 중 하나이다. 부정맥이나 판막질환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에서도 어지러움이 나타날 수 있으며, 빈혈이나 전해질 이상과 같은 혈액 검사상의 이상에도 어지러움은 흔하게 동반된다. 또한 약제 부작용이나 과로, 수면부족, 저혈당, 그 외에 심리적인 요인까지도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원인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몇 가지 다른 증상들을 모두 ‘어지럽다’는 공통된 한 마디로 표현하기 때문에 어지럽다고 호소하는 증상들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필자를 비롯한 모든 신경과 의사들이 환자를 문진하는 데 가장 우선시하는 점이다. 또한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환자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신경과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아보아야 할 이유라 하겠다.

그렇다면 어지러움 중에서도 ‘현훈’이라 불리는 어지러움은 무엇일까?

60대 여성 환자가 검은색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외래로 들어왔다. 환자는 “선생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요”라며 울상을 짓는다. 환자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바닥과 천장이 돌아가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환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닥이 거꾸로 솟고 온 세상이 돌아가는 듯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심한 어지러움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현훈’이다. 현훈이란 어지러움 중에서도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있으며 자세 불안과 안진이라 불리는 눈떨림이 동반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몸의 신경계 중에서 전정계의 장애에 의해 발생하는 어지럼증이다. 대개 머리의 움직임에 의해 악화되며 특정 동작에 의해 유발되기도 한다. 또한 심한 어지러움으로 인해 속이 메스꺼우며 심하면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

“너무 어지러워 눈을 감고 꼼짝도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더니, 이내 괜찮아지나 싶어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면 또 다시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서 바닥으로 기어 화장실에 겨우 가서 구토를 했어요.”

이 환자 역시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심한 현훈과 함께 구토가 동반되어 검은색 비닐봉지를 손에 꼭 쥐고 외래를 방문한 것이다. 필자는 간단한 문진과 신경학적 검사를 통해 ‘양성돌발성체위현훈(이석증)’임을 진단하고 정복술을 통해 신속하게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현훈은 앞서 말한 어지러움의 여러 가지 원인들과는 달리 전정계의 장애에서만 특징적으로 일어나는 증상이라 하겠다. 심장에 부정맥이 있다고 해서, 또한 빈혈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현훈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정계란 무엇일까? 전정계는 우리 몸의 평형 유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흔히 달팽이관이라고 알려진 귀 안쪽(내이)에 위치한 말초전정기관과, 내이의 전정기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전정신경을 통해 뇌줄기의 전정핵까지 연결되는 중추전정기관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 말초전정기관의 이상으로 발생한 어지럼증을 ‘말초성 어지럼’이라고 하며, 전정핵까지 연결되는 소뇌와 뇌간의 이상으로 발생한 어지럼증을 ‘중추성 어지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류가 왜 중요할까?

흔히 “달팽이관에 돌이 빠졌다”라고 알려진 이석증은 간단한 정복술을 통해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양성 질환이다. 그 밖에도 전정신경염, 메니에르병 등이 현훈을 동반하는 대표적인 말초성 질환이며, 이러한 질환은 어지러운 증상은 비록 심할 수 있으나 1~2일 후에는 증상이 현저히 좋아지는 양성 질환이라 하겠다.

하지만 비슷한 양상의 어지럼증이 ‘뇌줄기 및 소뇌의 경색이나 출혈’에서 흔히 발생한다. 구음장애, 편마비, 감각이상, 언어장애와 같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뇌경색의 대표적 증상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어지러움 증상 하나만으로도 뇌혈관 질환을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 이틀 뒤면 낫겠지”라고 방치하는 순간 뇌혈관 질환의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어 수개월간 혼자서 서지도 못하거나 자칫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지럼증은 신경과 의사의 문진과 신경학적 진찰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감별이 가능하며, 중추성 어지럼증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뇌 MRI 영상을 시행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만 뇌혈관 질환의 후유증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기억하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지럼증은 우리 몸의 전정계의 이상 신호이며, 뇌혈관 질환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신경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