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벤처 기업 테슬라는 언제부터인가 자동차 업계에서 ‘혁신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습니다. 진입 장벽이 높기로 소문난 자동차 산업에 신생 기업이 뛰어들어 ‘시가총액 1위’ 자리까지 올라가 봤으니 당연한 일이죠.

전기차 시장 발전을 견인한 회사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1회 충전으로 100km를 겨우 주행하는 전기차를 양산할 때 테슬라는 300km까지 달릴 수 있는 차를 선보였습니다. 전기차의 약점으로 꼽힌 ‘주행 가능 거리’에서 압도적 실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다만 테슬라의 진짜 성공요인은 따로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1회 충전으로 멀리 달리는 전기차가 아니라 ‘멋진 전기차’를 만든 것이죠. 폭발적 가속 성능과 운전의 재미를 강조해 구매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충전 후 몇 km를 달릴 수 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첫 양산 모델이 스포츠카인 ‘로드스터’였고 이후 출시돼 지금까지 주력으로 판매되는 차가 스포츠 세단인 ‘모델 S’라는 점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차량 디자인 고급화와 가속 성능 향상을 위해 대부분 시간을 투자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합니다. 물론 이 때문에 차량 출시가 엄청나게 지연되긴 했지만요.

테슬라가 뜨면서 곳곳에서 ‘대항마’를 자처하는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패러데이퓨처, 루시드모터스 등 다양합니다. 문제는 대부분 업체들이 스타트업인지라, 형체 없이 기술력만 과시하고 있거나 차량 양산 가능성이 낮은 경우가 상당수라는 것입니다. 테슬라와 경쟁은커녕 실제 차량을 판매할 수는 있을지 걱정해야 할 수준이에요.

테슬라의 ‘대항마’ 수식어가 붙는 업체들은 주행거리가 긴 것이 아닌 ‘역동적인 주행성능’을 강점으로 내세운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에 업계의 이목이 모이고 있습니다. 인제니움 엔진으로 유명한 회사지만 수년전부터 전기차 관련 내공을 꾸준히 쌓아왔거든요. 내년 출시 예정인 ‘I-페이스(I-PACE)’의 제원이 하나씩 베일을 벗고 있습니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테슬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재규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운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요.

▲ 재규어가 내년 출시할 예정인 전기차 I-페이스(I-PAC E). 재규어는 최근 이 차의 도로 주행 영상과 주요 제원을 공개했다. / 출처 = 재규어코리아

재규어는 이미 포뮬러E 레이스에 전기 레이스카 ‘I-타입(I-TYPE)을 출전 시키며 경험치를 쌓았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I-페이스에는 90kWh급 배터리가 장착됩니다. 완충 시 500km(유럽 기준)를 주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00마력대의 힘, 제로백 4초(유럽 기준)라는 수치는 바로 테슬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테슬라 모델 S 90D의 제로백은 4.4초입니다.

전기차는 페달을 밟으면 항상 최대토크가 발휘돼 초기 가속감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변속기가 대부분 1단에 머물러 있어 60km/h 이상 구간에서는 한계가 있죠. 재규어 측은 이 같은 약점을 뛰어넘는 기술력을 I-페이스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세계 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이안 칼럼(Ian Callum)이 직접 손댄 미래 지향적 디자인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오래 차를 만들어온 회사다보니 제품과 생산의 안전성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죠. 신생 기업 테슬라와 전통적 자동차 회사 재규어가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서 디자인과 주행거리를 놓고 한 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환경 오염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터진이후 전기차 시대가 가속 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대부분 브랜드들이 내년에는 1회 충전으로 300~500km를 달리는 모델을 양산해낼 예정입니다. 큰 용량의 배터리를 장착할 수 있는 기술력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쉐보레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볼트EV를 판매 중입니다. 60kWh 배터리를 장착해 국내 기준 383km를 달릴 수 있습니다. 모터는 204마력의 힘을 발휘하고, 제로백은 7초입니다. 프랑스의 르노가 팔고 있는 조에(ZOE)의 경우 41kWh 배터리를 달아 400km(유럽 기준)를 달립니다. 동력계는 90마력의 힘을 냅니다.

현대차는 내년 소형 SUV 기반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60kWh 정도 크기의 배터리를 얹어 1회 충전으로 390km를 달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모터는 120마력 가량의 동력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전해집니다.

▲ 2세대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주요 모델의 특징. 주행 거리 기준은 국내가 더욱 까다로운 편이다. 테슬라 모델 S와 재규어 I-페이스는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하고 동력 성능을 극대화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반면 다른 차종들은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역동적인 주행은 포기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재규어가 시판 중인 테슬라(모델 3 제외) 모델들의 강력한 경쟁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 출처 = 각 사

대부분 폭발적 가속 성능보다는 높은 전비와 긴 주행거리에 초점을 뒀어요.

폭스바겐이 600km를 달리고 369마력에 제로백 5초를 구현하는 ‘I.D. 버즈’를 내놓을 예정이지만 2020년은 돼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벤츠 역시 첫 전기차를 2019년은 돼야 출시할 계획입니다. 테슬라와 결별을 선언한 토요타는 2020년이 돼야 순수 전기차를 양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먼 얘기라 비교 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테슬라도 올해부터 보급형 전기차 ‘모델 3’를 선보이니까요.

어느덧 전기차 시장에서 ‘1회 충전으로 더 멀리 가는 모델’을 만드는 경쟁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연료 탱크 크기 싸움을 지나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고객들에게 강조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테슬라는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달리고 있고, 기존 완성차 제조업체 가운데에선 발빠르게 재규어도 이정표를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2세대 전기차 경쟁에 뛰어드는 다른 완성차 브랜드들은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