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에조치 남쪽 오시마 반도의 한 귀퉁이에 빌붙어서 시작된 마쓰마에 번은 에조치에 대한 영역을 넓혀나가려고 여러 가지 술수를 쓴다. 처음에는 일본의 문물과 쌀을 아이누족에게 소개하고 판매하면서 물물교환의 조건을 후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아이누족으로 하여금 문명과 식생활을 일본식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비록 자신들 고유의 문화를 간직한 민족일지라도 일본에 비해서 생활의 편의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뒤져있던 아니누족은 마쓰마에 번에 대해 고마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들을 반겼다. 하지만 일본의 원래 수법이 일단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을 때까지는 친절하기 그지없다가도 상대가 자신들의 수법에 휘말렸다 싶으면 가차 없이 내리치는 것으로 아이누족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일본식 생활에 젖어 들어간 아이누족들은 마쓰마에 번이 점점 교역조건을 까다롭게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 덕분에 마쓰마에 번은 점점 그 부를 축적하면서, 에조치에서 영역을 넓힐 방안을 모색하며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 때가 도래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반대하며 에도막부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던 막부파와, 메이지 유신만이 일본을 근대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 왕정복고파가 1868년에 일본 전토에서 소위 보신전쟁이라고 불리는 내전으로 충돌한다. 왕정복고를 주장하며 메이지 유신에 적극 동참했던 반막부 세력은 참모총장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지휘아래 근대적인 무기를 앞세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막부 세력에게 승리를 거둔다. 결국 막부의 최고 지도자로 에도까지 후퇴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개인적인 항복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기울었고 쇼군의 항복으로 막부세력의 패배가 확실하게 결정 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가문으로부터 얻은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아등바등 하는 잔당들과 북부 혼슈 세력은 홋카이도까지 후퇴하여 에조 공화국을 건국하며 버틸 것을 결의한다.

그것은 비단 막부세력의 잔당들만의 결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무렵 다테 성을 새로 짓고 거점을 이동한 뒤 다테 번으로 불리게 된 마쓰마에 번의 14대 번주인 마쓰마에 가네히로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에조치에 발을 디디고 그곳의 영토를 야금야금 넓혀가면서,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아이누 족과의 무역 독점권을 일본으로부터 승인 받음으로써 교역 조건을 자신들 마음대로 조절하여 부를 쌓았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엄청났다. 솔직히 막부시대의 쇼군은 물론 일왕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재산과 자신이 거느리는 사병들도 상당수 있었다. 게다가 왕정복고를 반대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열도에서 이곳까지 건너온 무사들도 있으니 이제는 에조치 전체를 정벌하고 정말 왕으로 군림할 수도 있는 시점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는데, 무조건 메이지 유신에 동참하여 일본 신정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에조치에서 영토를 점유하고 있었다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에조치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오시마반도의 남부에 해당하는 작은 영토가 전부였다. 갑자기 늘어난 무사들과 자신이 거느린 병력의 힘을 모아 아이누족을 멸족하는 일이 있어도 이 넓은 섬 전체를 차지하는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통치하고 살면서 일본과는 조공을 통해서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 본토에서 쫓겨 온 무사들을 기꺼이 거둬 주고 그들과 함께 에조 공화국을 건국한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에조치에 세운 왕국으로 아이누 족을 지배할 것이라는 의미를 두어 이름도 에조 공화국으로 지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꿈을 품고 세운 에조 공화국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