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대만에서 열렸던 컴퓨텍스에 다녀왔습니다. 높게 솟은 101 빌딩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온 가운데, 제 오래된 의문을 풀어낼 수 있는 약간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입니다.

 

대만은 강소기업의 특성을 바탕으로 제조업에 특화된 나라입니다. 컴퓨텍스를 주관하는 월터 예 타이트라 사장은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 점을 피력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융합해 스타트업을 내세워 글로벌 ICT 기업과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어요.

일단 대만 스타트업과 글로벌 ICT 기업과의 결합은 현실적인 경제 방법론에서 도출된 결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의 융합'이라는 점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솔직히 말은 쉽죠.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통한 융합 시너지 도출은 아이폰이라는 제품에 iOS라는 생태계를 넣어 사용자 경험을 브랜딩적 관점에서 증폭시키는 애플 정도만 거의 유일하게 성공하고 있는 영역이니까요. 자. 그렇다면 대만은?

월터 예 사장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는데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게이밍과 가상현실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썩 괜찮은 방식입니다. 컴퓨텍스는 원래 하드웨어 박람회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제조업 일변도의 행사라는 뜻인데, 이를 소프트웨어 파워와 연결해 나름의 방법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게이밍과 가상현실을 이용하는 것은 나름 훌륭한 교집합으로 보입니다. 가상현실은 게임과 관련이 깊고, 그 안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파워가 적절하게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잘 할 수 있는 제조업 인프라에 게임이라는 특수한 사업을 덧대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간극을 메우는 방식.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컴퓨텍스 2017 현장.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하드웨어가 기본, 소프트웨어는 양념
대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모바일에 앞서 우리는 제조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차까지 이어진 산업혁명이 바로 제조업의 기술적 진보를 말하고 이는 인류의 발전으로 수렴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모바일 기술이 등장하며 초연결이 화두로 부상했고, 기존 제조업 플레이어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제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야 하나'라고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의외로 간단합니다. 기존 제조업에 모바일 초연결 기술을 덧대어 생산성을 크게 끌어 올리는 방식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인간은 초연결 모바일로만 생산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앱 생태계가 발전한다고 우리는 밥을 먹지 않나요? 손에 잡히는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구입하지 않아요? 아니죠. 제조업은 사라질 수 없는 영역입니다. 정신문화가 고도로 발달했다는 스타크래프트의 포로토스 종족도 질럿으로 적진을 물리적으로 돌파합니다. 제조업, 하드웨어는 전 우주적 가치입니다.

그런 이유로 제조업에 모바일 초연결 인프라를 덧대어 제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은 고무적입니다. 중국은 이를 스마트 제조 2025, 인터넷 플러스의 가치로 설명합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미국의 엣지 컴퓨팅 등 스마트팩토리 방식도 여기에 근원을 둡니다. 물론 주체가 정부냐, 기업이냐 등에 따라 스마트팩토리에 접근하는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모바일 초연결로 제조업의 기능을 끌어올리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최근 글로벌 ICT 업계에서는 미묘한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일단 O2O 기업으로 분류되는 일련의 모바일 초연결 다크호스들의 변신이 눈에 들어와요.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로 작동하며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중간다리를 자임하고 있는데, 점점 오프라인 업의 본질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즉 오프라인 거점을 통해 온라인 사용자 경험을 더욱 효과적으로 오프라인에 뿌리기 시작하는 거에요. 왜? 실제 비즈니스는 오프라인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국내만 봐도 다방이 케어센터를 설립하고 네이버가 서울에 이어 부산에 파트너스퀘어를 설립해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 나아가 스몰 비즈니스 방법론을 키우는 이유입니다.

결국 하드웨어 제조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바일 초연결은 강렬한 양념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파괴력을 보여줍니다.

▲ 출처=월마트

월마트의 실험, 최적의 가능성이다
하드웨어 기본에 소프트웨어 파괴력을 키우는 방식은 미국 월마트가 교과서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강한 오프라인 상거래 거인이면서 다양한 소프트웨어 파워를 수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지난달 31일 월마트는 지난해 10월부터 중국과 미국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시험한 결과 음식물의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을 2.2초만에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월마트의 식품 안전성 부사장 프랭크 이아니스(Frank Yiannas)는 "약 4800만명의 미국인이 식중독과 같은 식인성 질환을 경험하고 있다"며 "우리의 방식이 자리를 잡으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어요.

참고로 월마트는 특허를 통해 블록체인 기반 드론 배송 기술을 고도화시키는 한편, 일부 직원 교육도 가상현실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퇴근하는 직원들에게 물품 배송을 실시하는 실험에 나서기도 했어요. 퇴근 배송제라고 명명된 본 서비스는 현재 실험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우버의 온디맨드 방식을 배송 서비스에 연결한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제트닷컴의 마크 로어는 과연 아마존이 무서워 할 남자네요.

▲ 제트닷컴. 출처=제트

이러한 행보는 기존 오프라인 강점에 온라인 사용자 경험을 불어넣어, 오프라인 업의 본질을 고도화시키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러한 전략에도 약점은 있어 보입니다. 모든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구축해야 하는 오프라인 거점을 쉽게 확보하는 한편, 이를 매개로 현실의 비즈니스 모델을 강하게 꾸려갈 수 있지만 중요한 핵심 전제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목표'입니다.

현재 월마트는 강력한 오프라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이 넘볼 수 없는 거점 비즈니스 전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거인이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온라인 이커머스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ICT 기술을 서비스에 연결하고 그 이상의 데이터 확장 방법론을 전개하는 등, 흥미로운 로드맵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월마트의 접근방식은 총체적 ICT 플랫폼 구축이라는 최종목표를 세워둔 경쟁자와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아마존의 맞수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지난해 알리윈 개발자 회의에서 "전자상거래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을 한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의도일까요? 전자상거래, 즉 이커머스가 정말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공기'가 될 것이라는 전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결합이 모든 생태계를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이커머스는 당연한 ICT 서비스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및 로봇기술개발이 큰 그림에 해당됩니다. 물론 드론 및 로봇, 클라우드 등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아마존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 아마존 물류창고. 출처=위키디피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월마트는 온라인 경쟁자들을 의식, 이커머스가 차지하고 있는 O2O 비즈니스에 역공을 가하는 분위기지만, 내밀하게 살피면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미 경쟁자들은 총체적 ICT 플랫폼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커머스를 조준해 아마존을 공략한다고 생각해도, 아마존은 이미 ICT 수직계열화의 바람을 타고 총체적 플랫폼 기업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총체적 ICT 플래폼을 고안하고 있는 기존 이커머스 기업과, 오프라인에서 일어나 이커머스를 도전자로 의식해 ICT 기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역공에 나선 거인. 누가 승리할 수 있을까요?

나아가 이런 질문도 던져야 합니다. 월마트는 그 이상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