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는 개념적으로 어렵다.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이거나 간에 이런 일의 아이디어는 인간의 인식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개념 접근 자체부터 쉽지 않다. 대부분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들로 채워진다. 얼핏 쉬워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쉽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의실에서 커뮤니케이션 분야 사람과 재무나 영업과 같은 다른 부서 사람이 대립하면 커뮤니케이션 파트가 힘을 받기는 좀처럼 힘들다. 아이디어도 선택되는 경우가 잘 없다. 기업이 어려울 때는 해결책으로 채택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어야 한다. 상식적인 해결책들일 수 밖에 없다. 제품을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고, 가격을 낮추는 길이다. 거기에 직원들의 열정과 단합된 힘을 불러 오도록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감'

사내에서 경영진들과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당위성을 좇는다. 법률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변호사를 불러 자문을 구하고 따른다. 회계문제에는 회계사 자문을 구한다. 그리고 예외 없이 그 조언에 따른다. 영업문제에서는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과 영업이 회사를 먹여살린다는 생각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문제에서는 양상이 다르게 펼쳐진다. 법률처럼 당위적이지도 않고, 재무표처럼 알아보기 힘든 것도 아니고, 회계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고객처럼 감사하지도 않는 대상을 향해 공을 들이기도 그렇다고 안 들이기도 뭣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보고서 상에 나열된 용어들 중 해석 안 되는 것도 없다. 취향의 문제도 다분하다. 인풋과 아웃풋이 딱 떨어지지도 않는다. 결과도 예측 불허다. 만만해 보이기도 하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해서 입 대기도 쉽다. 결국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자문을 실컷 구한 뒤에 최고경영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인터뷰 한번 했다고 그 다음에 생기는 이슈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예외없이 뼈아픈 기사를 써댄다. 봐 달라고 할 땐 외면하더니, 왜 보냐고 하면 더 파고 든다.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에서는 ‘감’을 따라가야 한다. 돌아가는 상황에서 여론의 분위기, 매체와 매체간, 매체와 회사간 그리고 그 밖의 매체와 독자간의 정서적인 면까지도 고려하여 틈새를 잘 파고 들어야 제대로 효과가 나온다.

잘 만들어져서 대박에 이른 영화들을 보면 이와 유사하다. 영화가 대박 나는 방법은 시대적으로 맞물려 관객의 정서적인 면을 잘 파고드는 스토리, 배우, 화면 구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적절히 녹여내는 감독의 손에 있다. 영화전문가들의 악평에 시달렸지만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도 많고, 호평 속에서도 흥행은 참패를 면치 못한 작품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감'에 모든 것을 맡긴다. 영화 만드는 방법이야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잘 만드는 ‘감'을 가진 자는 드물다. 커뮤니케이션 역시 마찬가지여서 오랜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감'을 가진 사람이 진행해 나가야 한다. 사실 그런 감은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고 이해도 잘 되지 않는다.

기업 일은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어서 시작하기 전에 결과부터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모든 사업부서들이 사전에 ‘사업 계획서'를 정밀하게 만든다. 추정이긴 하지만 결과를 먼저 보여준다. 그 결과를 보고 착수한다. 반면에 커뮤니케이션 사업계획은 구름 속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긍정의 극대화와 부정의 극소화'. 숫자로 보여줄 수도 없다. 때문에 숫자에 익숙한 기업인들에게 착 와 닿지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은 여름날 지리산 등산과 같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안개로 앞이 보이지도 않다가 낮에는 뙤약볕에 고생하고, 하필 가파른 길에서 소나기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정상을 향해 계속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오르게 되어 있다.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수도 있고, 처음 생각과 달리 다른 길을 가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상이라는 꼭지점을 바라고 한결 같이 가다 보면 이르게 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어렵다고들 한다.

전 세계 어디서나 컴퓨터나 스마트폰까지 손끝만 스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시대다. 손 안의 폰 하나로 온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손 끝에서 정보를 얻고 투자하고 이체하고 결제 한다. 전에는 기업 커뮤니케이션은 소비재 기업만 해당되고, B2B 기업은 필요 없다고도 했다.  소비자 접점이 없기 때문에 마케팅이나 광고를 따로 할 필요가 없고, 기업고객들이 알고 찾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굳이 드러내고자 하는 필요나 바람도 없었다.

근무했던 기업들도 대부분 B2B 기업이었다. 상품 광고 같은 것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식 수준은 필요할 때만 잠깐 하면 되지 하는 정도였다. 사실은 ‘할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커뮤니케이션은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수준이 바뀌었다.

2005년까지만 해도 유진그룹은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이룬 데다가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고, 또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기에 외부의 간섭에도 신경 쓸 필요가 거의 없었다. 흔치 않은 업종에 B2B 기업이었기에 대중들이 알기도 힘들었다. 돈도 잘 벌어들였기에 어쩌다가 기자가 먼저 연락 해 오더라도 최소한의 응대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2006년 초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 들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그로 인해 재무적 이슈가 크게 불거지기 시작했다. 대우건설의 글로벌 비즈니스 능력이 필요했다. 인수에 성공하면 단번에 국내 최고 건설사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다들 수면 아래서 조용히 지내오던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판이 벌어지고 나니 예닐곱 후보 기업들 중에서 가장 낮은 인지도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데다가 규모도 제일 작은 편이어서 인수 이후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툭하면 제기되곤 했다.  

큰 프로젝트에서는 기업의 평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규모가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인수하고자 할 경우나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회사가 큰 일을 겪게 될 경우에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이 같은 정성적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평판이라는 것은 회사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제 3자의 입을 통한 것이라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론이다.

여론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과하면 아니한 만 못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데, 그게 바로 ‘감’이다. 당시엔 특히 짧은 기간 동안 기업 인지도를 올려야 했기에 그야말로 빡세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닥치는 대로 만나고 부딪혀야 했다. 기업 인지도가 낮을 경우 기자들도 그 기업을 모르고, 모르는 만큼 관심도 낮기 때문에 기자들을 만나는 데 만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결국 그 인수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입찰 금액에서 3 순위였다. 하지만 회사는 평판과 인지도 상승을 발판으로 이후 다른 여러 프로젝트들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되팔긴 했지만 하이마트 인수에도 성공했다.

 

욕 먹더라도 제대로 된 디렉팅을 유지해야

대한전선도 규모는 더 컸지만 전형적인 B2B 기업이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로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밖에 나가서 회사 자랑 하지 마라'는 선대회장의 유훈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부서가 아예 없었다. 게다가 당시 ‘재계의 돈 주머니’로 불릴 정도로 회사가 보유한 자금이 넉넉했고, 잘 벌고 있었기에 여론에 신경 쓸 필요도, 답답할 것도 없었다. 용케 알고 연락하는 기자들에게 겨우 몇 마디 응대 정도가 전부였다.

기업이 본업의 핵심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많은 보유 자금이 있었음에도 더 큰 수익을 위해 수익성이 낮은 본업은 등한시하고 부동산이며 기업인수 같은 투자에만 집중하던 때가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본업이 국내 1위에서 2위로 밀렸고, 여론이 심상치 않을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국내외 여러 투자 건들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지면서 졸지에 회사는 가장 돈 많은 기업에서 ‘한 푼이 아쉬운 회사’로 전락했다. 그 전까지 언론에서 찾아 보기도 힘들었던 회사 이름이 하루도 거론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손실, 위기’와 같이 부담되는 제목 하에서 하루에만 수십 개씩 기사가 나올 때도 있었다. 기사 하나 하나가 날이 선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1957년 설립이래 60년의 오랜 세월 동안 게재된 기사 건수 보다, 2008년 금융위기부터 겨우 5년간 게재된 기사 횟수가 몇 곱절은 많았다.

상황을 반전시킬 묘책은 없었다. 실질을 무시하고 ‘뻥'치는 커뮤니케이션은 절대 금물이었다. 회사가 보유 자산을 빨리 매각하고 부채를 갚아서 개선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었지만 불경기에 그런 사안들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수백억 원 또는 수천억 원 하는 자산을 처분하는 것도 어려운데, 언론은 지켜보고 있지, 또 급한 상황이라 가격을 떨어뜨려서라도 매각해야만 했다. 오히려 부채비율은 더 높아져만 갔다. 자산을 처분하여 빚을 갚아 나가는데도 부채비율은 오히려 늘었다.   

스치는 바람도 뼈아플 시기였기에 어떻게든 여론의 물꼬를 돌려야 했다. 전 임직원들도 몇 차례에 걸쳐 증자에 참여했기에 개개인의 재산도 걸려있었다. 외부도 부담이지만 내부 임직원 분위기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여론의 칼날이 내부 직원들에게는 더 뼈아팠다.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하나 하나 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기본적인 여론부터 차근차근 공략해 나갔다. 내부 경영진들과 힘겨운 마찰이 있을 때도 많았고, 열심히 하고도 번번이 욕을 먹었다. 그렇다고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다. 1년여를 넘기면서 내부 갈등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정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회사의 상황을 해외 발주처에서도 알게 되었는지 반증할 자료를 요구했다. 뉴질랜드에서 오클랜드 지역의 ‘북섬 업그레이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 대규모 수주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는 몇 개년에 걸쳐 여러 건이 대규모로 계획되어 있었기에 첫 수주 성공이 중요했다. 기업 전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내용으로 제 3자가 작성한 자료여야 했는데, 영업담당들의 고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요청을 받고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자료를 제공했다. 언론에 비친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는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실질적인 성과와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자료를 몇 가지 추렸다. 결과적으로 수주는 성공했고,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시련의 상황에서도 웃음짓게 만든 케이스였다. 그런 뉴스들 모두가 커뮤니케이션 결과였다. 함께 고민하고 기획하고 준비해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었다.  

단체로 등산을 갈 때 앞에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선두가 있고, 그 뒤를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길잡이 선두는 산길을 아는 사람이 주로 맡게 되는데, 아는 길이라도 갈림길에서는 이쪽으로 갈지 저쪽으로 갈지 신경도 쓰고, 헷갈리는 곳에서는 먼저 가서 살펴본 뒤에 사람들을 이끌기도 한다. 당연히 뒤에서 따라만 오는 사람들 보다 훨씬 활동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먼저 지치게 된다. 그 선두가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야할 산길에 대한 브리핑이 없을 때는 더욱 지친다.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등산을 다 같이 잘 할 수 있게 하려면, 그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필수다.

사전 인지가 있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디렉팅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신뢰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은 갈등의 폭을 크게 줄여준다. 사실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일이든 회사 일이든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예측 가능할 때 갈등은 휠씬 줄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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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나 커뮤니케이션이나 전문가의 제대로 된 감이 승패를 좌우한다.

2. 실질을 무시한 채 커뮤니케이션의 과대 포장은 금물이다.

3.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예측 가능할 때 갈등이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