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미지 투데이

본 지 2017년 5월 26일 자 [빚, 터놓고 얘기합시다]“공증사무실에 사채업자가 버젓이..” 사람 잡는 공정증서 편에 신 모씨는 사채업자 정 모씨로부터 250만원을 빌리고 2000만원의 공정증서를 작성한 사채업자를 상대로 영등포 경찰서에 형사 고소했다. 고소 이후 경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사채업자 정 모씨는 채무자 신 모씨에게 합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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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씨처럼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사채업자 정씨를 대상으로 형사고소를 한 상태다. 서울남부지검은 정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본지가 입수한 정씨의 공소장에 의하면, 정씨는 사기죄 등 전과가 수차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채업자 정씨는 피해자들에게 현금으로 돈을 빌려주고 약속어음 또는 금전소비대차계약서에 금액을 부풀린 뒤 공증을 받았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준 돈은 평균 100만~500만원인데, 공증서류에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숫자를 부풀려놓았다. 정씨는 이 공증서류를 가지고 피해자들의 급여를 수년동안 압류해 갔다.

정씨는 이러한 수법으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총 17억 500만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했다. 증거가 없어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을 감안하면 실제는 이 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게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송태경사무처장의 주장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시민연대`는 이처럼 불법사채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법적으로 지원하는 시민단체다.   

서울시 양천구 사는 이모씨(51세)도 유사한 경로를 거치면서 고통을 당했다. 

이 씨는 공기업의 정규직 직원이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 모두 암에 걸리면서 병원비가 계속 부족했다. 

이씨는 정씨에게 두차례에 걸쳐 500만원을 빌렸다. 2008년 6월과 2009년 12월의 일이다. 당시 이씨는 정씨가 내민 여러 종류의 서류에 이름을 쓰고 인감도장을 찍었다. 통장내역을 보면, 이 씨는 정씨에 빌린 돈을 모두 갚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정씨는 이씨에게 3억원을 청구하고 그의 급여를 압류했다.

정씨가 이씨 몰래 3억원의 공증서류를 작성한 것. 이씨는 정씨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했지만 번번히 패소했다.

이씨가 현금으로 받은 돈이 얼마인지 재판과정에서 소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만져보지도 못한 돈 3억원으로 인해 평생 급여를 압류당할 상황에 처했다.

최근 이씨의 아버지가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그는 여전히 두 명의 암환자를 돌보고 있는 처지다. 

공소장에는 정씨가 2014. 9. 11. 의정부 소재 모 법무법인에서 무등록 대부업을 영위했다고 도 적시됐다. 법무법인이 불법사채업자와 손을 잡은 셈이다.

▲ 이름과 인감도장만 찍힌 약속어음 위임장, 사채업자는 채무자로부터 이름과 도장만 받은 후 자신의 필요에 따라 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을 사용한다.  사진=민생연대 제공

사채업자 맘대로 악용하는 공정증서

정씨가 이처럼 피해자들의 고혈을 짜낼 수 있었던 것은 사채업자가 백지위임장을 교묘히 이용했기 때문이다. 백지위임장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위임장이다. 사채업자는 이 위임장에 채무자로부터 이름을 적고 인감도장만 찍어둔다.

이 때 이들은 인감도장임을 증명하는 인감증명서도 같이 받아 둔다. 사채업자는 이 위임장에 금액과 날짜를 맘대로 적은 뒤 공증인에게 공증을 받는다.

서초동에서 공증업무를 하는 한 변호사는 "공증변호사로서는 인감도장이 찍힌 위임장이 확인되면, 채권자가 대리인 자격으로 공증의뢰하는 것을 거절하기 어렵다"며 "공증인 변호사는 서류가 문제가 없는 것임을 확인하는 사람일 뿐, 두 사람 간에 실제로 오고 간 돈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정증서의 제도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부 서류의 경우 공증을 거치면, 채권자는 재판 없이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할 수 있는 강력한 법률적 효력이 있다. 재판을 안해도 됨으로, 채무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압류통보를 받게 된다.

▲ 이름과 인감도장만 찍힌 금전소비대차 백지위임장, 사진=민생연대 제공

강력한 법적효력을 무기로 불법 사채업자들이 이를 악용하는데도 법무부와 공증업계가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법무부는 공증업무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다.

송태경 처장은 이러한 공증업계의 밥그릇 싸움 관행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공증사무실의 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증업계가 사채시장에서 발생되는 공정증서 업무를 무리하게 수주하면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공증업계가 제도 개선보다는 피해자 양산을 0묵인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인데,  송 처장은 "감독청인 법무부가 공증변호사 업계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관리 감독청인 법무부는 이러한 공정증서제도의 문제점에 관해 기자가 질의했으나 답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송 처장은 공증인 변호사로서 사채업자가 제출한 채무자의 위임장이 실제거래와 일치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권자가 특히 채무자를 대신해서 공정증서를 작성하는 경우 실제로 오간 돈의 내역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법원의 법해석 잘못을 지적하고 입법을 촉구하는 의견도 있다.

장재형 법무부 공증제도 개선위원회장(연수원 19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대법원이 금전소비대차계약이나 약속어음 발행과 같은 공증제도에 자기계약를 허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자기계약은 채권자가 한편으로는 채무자를 대리하여 자신과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민법과 소송법에서는 이와 같은 자기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증인법을 해석하면서 돈을 빌릴 때 계약서나 약속어음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이미 완성하고, 채권자는공정증서를 작성할 때만 채무자를 대리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의 이런 해석은 사채업자가 열악한 채무자의 지위를 악용하는 문제를 잘 알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장 위원회장은 “금전소비대차계약이나 약속어음의 공정증서 제도는 바로 압류를 할 수 있는 강력한 효력이 있는 만큼 자기계약을 허락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오래된 대법원의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입법적으로 명문의 규정을 두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