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학생들과 게임을 한다. RPG(역할수행게임)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주로 FPS(1인칭 슈팅게임)나 보드게임을 하곤 한다. PC방에 들어가면 먼저 학생을 두 팀으로 나눈다. 대략 게임 경력이나 FPS 경력 등을 평가해 비슷하게 두 팀을 나눈다. 그리고 나는 그 중 한 팀에 들어간다.

FPS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주의사항이라고는 하지만 별다른 것은 아니다.

“오늘 나(교수)를 죽이는 학생은 다음 학기에 또 내 얼굴을 볼지 모른다.”

일종의 경고다. 학생들 중에는 FPS 달인이 가끔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시달린 경험이 많기 때문의 나름 자구책이다.

▲ 인기 FPS 중 하나인 '서든어택'. 출처=넥슨

PC방에서 학생들과 내가 마주보고 자리에 앉는다. 그럴 때 상대편으로 배치된 학생들은 내 자리를 뒤로 지나치면서 슬며시 나의 PC 화면을 보고 간다. 그들이 왜 내 화면을 확인하는 지는 게임을 시작하고 나면 안다. 학생들은 적군인 내 아이디를 확인하는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나는 용감하게 뛰쳐나가 적을 찾아 돌진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나가자마자 나는 누군가에 의해 저격당해 땅에 쓰러져 있다. 나를 죽인 학생의 아이디를 확인하는 것도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 모두가 신속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또 학생들이 다른 사람은 놔두고 나만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내 편 학생은 이렇게 조언한다.

“교수님, 차라리 저희가 앞에서 전투할 테니 뒤에 대기하고 계시면 어떨까요?”

말인즉슨 내가 민폐니 조용히 어디 구석에 박혀 있으라는 이야기다. 풀이 죽어 건물 은폐물에 숨어 있다가 밖이 궁금해 살짝 머리를 내밀면 다시 스나이퍼가 저격한다. 그리고 다시 사망. 때로는 숨어 있는 나를 등뒤에서 칼로 공격하는 ‘적(학생?)’도 있다.

아무리 세상에 믿을 놈 없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나를 죽이거나 저격하는 학생은 다음 학기에 또 얼굴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엄중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을 공격한다.

때로 FPS를 해본 적이 없는, 아니 온라인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학생도 가끔 있다. 의외로 대학생 중에는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꽤 있다. 그들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대단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짜 괜찮을까요? 저는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하곤 한다.

어떤 여학생도 그런 케이스였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그 학생은 자신은 FPS는 물론 온라인게임을 해 본적이 없다 했다. 그래서 자신이 민폐라며 구경이나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왠걸 게임을 몇 판 하고 나자 그녀는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했다. 특히 교수를 ‘살해’하는데 있어 천부적이었다. 영화 레옹에 나오는 소녀 킬러 마틸다의 화신이라고나 할까? 내가 숨어있을 만한 장소에 매복하고 있다가 발견 즉시 공격하는 데에는 당해낼 재주가 없었다.

그리고 PC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캬!! 교수님을 죽이다니 정말 최고군요."

아니 최고라니? 학생이 교수를 죽이는 하극상이 대학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게임 세계는 교수와 학생이라는 신분 차이도 없고, 오직 존재하는 것은 레벨이라는 평등한 세상이다. PC방을 나오면서 그녀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외쳤다.

“교수님! 너무 재미있네요. 다음에 또 해요”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 다시 오기는 할 텐데 자네하고는 오지 않을 거야.’

그날 나는 죽고 또 죽고 한없이 죽었다. 우리 편은 나 때문에 지고 또 지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 평소 강의실에서 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이고 학생들은 배우는 제자들이지만 지금 PC방에서 학생들은 ‘위대한 전사’이고 나는 그들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민폐 유저가 되어 있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게임이 끝나면 학생들과 함께 주변의 생맥주 집에 들어간다. 학생들과 함께 PC방을 나서면 이긴 팀이나 진 팀 모두 하나라는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민폐 유저’에서 정상적인 교수가 되어 학생들의 고민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을 해준다. 이제는 김영란 법이 있어 학생들과 맥주 마시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기는 했다. 학생이 돈을 내서 교수에게 맥주 한 잔 사도, 반대로 교수가 학생들에게 맥주를 사도 문제가 된다.

교수가 학생에게 강의평가를 받기 때문에 학생에게 맥주를 사면 ‘부정청탁’에 걸린다고 한다. 학생들은 학점을 받기 때문에 또한 교수에게 카네이션 하나도 달아주어서는 안 된다. 유일한 방법은 교수건 학생이건 자신이 먹은 것은 자신이 내는 것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라는 성서의 법칙이 통하는 세상이다. 다만 그렇게 않아도 날로 삭막해지고 있는 대학에서 이제는 교수와 학생이 밤새 떠들고 대화하는 ‘학외 교육’ 역시 소멸해 가고 있다.

나를 죽이고 그토록 즐거워하던 그 여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혹시나 그 여학생, 지금은 게임 내에서 자신의 상사를 죽이고 있지 않을까….’ 

▶겜알못&기계치도 꿀잼! [플레이G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