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가 양규준.  이번 전시작품를 준비하는 동안의 심경을 물어보았다. “긴 밤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온 여명처럼, 내 삶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희망 그리고 꿈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오늘도 작은 존재들이 일궈내고 있는 삶 속에서 이상사회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미물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창을 열어놓아 무한우주섭리의 광대한 빛살세계를 응축한 ‘바람(Wind)’시리즈의 양규준(GYU JOON YANG)작가를 서울 북촌 한 카페서 만났다. 6월6일부터 12일까지 1주일간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가나인사아트센터 6층,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JMA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작품화면 오른쪽은 검은색으로 보이나 시간의 흐름에 순응한 저마다 계절의 색채감 이를테면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빨강과 파랑, 누런빛들이 이따금씩 반짝인다. 퇴적의 지층처럼 마침내 켜켜이 쌓여 우러난 검은 빛을 띠는 단색화다. 여름날 속까지 차갑게 씻어주는 청청한 깊은 샘물의 맛, 뉴질랜드 태평양바다 직사광선을 유연하게 품은 심연의 보드라운 물결처럼 깊디깊다.

왼편은 내면을 흐르는 회환과 감회의 옥타브를 넘나드는 중후한 첼로선율의 리듬처럼 기억과 대화가 창공에 드러나다 사라지며 어느새 가슴 한구석 아련한 운율로 자리하는 흔적리듬으로 풀어내고 있다. 짧거나 긴, 가늘고 굵은 붓질은 서로 대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자신을 드러내며 컨템퍼러리를 부여한다.

 

▲ 바람(Wind) 116.8×91㎝(each) Acrylic on canvas, 2017

 

작품모티브들은 화백의 일상생활과도 연관 있다. 반려견 ‘심바‘와 강둑이나 숲길을 걷는다.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눈에 담고 주변 생명들의 기척을 감지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하며 소리치노라면 대자연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된다고 했다.

“소리는 허공을 맴돌고 주변은 적막하다. 그러나 그것은 빈 공간이 아니다. 흐르는 물, 치솟은 산,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들은 부단히 음기와 양기를 부딪치면서 기운을 전개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기운이 삼라만상을 있도록 한다. 나의 그림 그리는 일은 이처럼 내 주변 환경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징후를 헤아리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 중도(Middle way), 45.5×27.3(each), 2016

 

그리고 남태평양 긴 화산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저물어가는 저녁 빛을 응시하며 사색에 잠겼던 기억을 전했다. 그러면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정갈하게 또박또박 써내려간 2006년 뉴질랜드 마이랑이 베이 해변가에서 지었다는 자작시 한 편 이었다.

 

“저녁햇살 랑기토토섬 한쪽 편에 걸려있네.

수평선 너머 까만 섬들 노스탤지어 부르고

희미한 어둠속을 달려드는 보랏빛 파도.

           동쪽하늘 쾌청한데 습한 기운 북쪽을 뒤덮었네.

고개 돌려 오렌지 빛 가득한 서쪽을 보니

내일 날씨는 어떨까.

내 마음은 벌써 먼 고향 시골농부가 되어있네.”

 

▲ 바람, 53×53㎝(each), 2017

 

원(圓)에서 출발하는 한 지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것이 순리다. 화백이 10여년이 넘는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지 5년여가 지났다.

“한창 나이였던 40대, 나는 한국에서의 삶 속에서 느꼈던 희망과 즐거움, 고뇌를 뒤로 하고 신세계를 갈망하며 뉴질랜드로 떠났다. 과연 그 곳은 이상적인 세계였다. 단지 내가 그 나라에 소속감이 별로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더 이상 자존심을 지킨다는 사실이 허세라는 걸 알고 절망감을 맞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라고 토로했다.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학교, 일, 인간관계, 소소한 일까지. 모국에서 가졌던 교육, 혈연, 지연, 학연까지를 포함한 관계의 소중함이 얼마나 귀중했던가를 실감했다고 한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장점을 망각하고, 정체성을 해체하고 싶어 한다. 돌아보면 외국생활에서 결과적으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주변 많은 것들의 소중함을 음미하며 지내고 있다.”

 

▲ 바람, 60.6×60.6㎝(each), 2017

 

그의 그림엔 눈부신 대자연의 순수가 스며있다. 남태평양 뉴질랜드 바닷가, 작은 섬들이 쪽빛 하늘의 기운을 담은 푸른 물결 위에 떠 있다. 주변 나무들은 온통 눈부신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는 꽃봉오리로 가득하다.

“어느 날 나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삼삼오오 앉아서 수다를 떨고 깔깔거리며 웃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해맑았다. 가족, 친구들 혹은 직장동료들이리라. 한쪽 귀퉁이에 앉아 나는 한참동안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얼마나 평범한 삶이 있는 광경인가. 거기에 삶의 환희가 있고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려야하는 가치인 행복이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