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이라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가치투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그레이엄의 제자다. 그레이엄은 현대 재무분석의 기틀을 닦았고 그의 저서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는 투자의 바이블로 불린다.

한편, 그레이엄의 또 다른 제자이자 버핏의 친구이기도 한 빌 루안도 투자의 대가지만 국내에서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루안과 버핏은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그레이엄의 수업을 듣게 되면서 서로를 알게 됐다.

버핏은 자신의 투자조합을 해체한 1969년 기존 고객들에게 루안을 펀드매니저로 추천했고 루안은 1970년부터 고객들의 자금으로 운용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펀드가 그 유명한 세쿼이어다.

세쿼이어펀드의 출범 10년 수익률은 289%로 같은 기간 S&P500가 105% 상승한 것에 비해 단연 압도적이다. 1990년까지는 누적수익률 2145%, 지난 2000년까지는 무려 1만3000%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지수 수익률을 크게 웃돌았다. 또 2012년까지의 누적 수익률은 2만%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핏은 투자조합을 제외하곤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투자했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로 불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레이엄의 제자 중 펀드매니저로서 가장 뛰어난 가치투자자는 바로 루안이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그는 지난 2005년 7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한편, 루안이 운영한 투자회사인 Ruane, Cunniff & Goldfarb LCC는 과거 농심, 남양유업 등 한국 기업들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여전히 관심을 갖고 지분을 보유한 한국 기업이 있어 눈에 띈다. 바로 신영증권이다.

지난 2007년 10월 신영증권은 Ruane, Cunniff & Goldfarb LCC가 보통주 59만2669주(지분율 6.31%)를 보유했다고 밝혔다. 이후 Ruane, Cunniff & Goldfarb LCC는 보통주는 물론 우선주 지분도 확보해 각각 71만2754주(7.59%), 71만6982주(10.16%)로 늘렸으며 현재는 보통주 71만4609주(7.61%)만 확인된다. Ruane, Cunniff & Goldfarb LCC는 약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신영증권에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Ruane, Cunniff & Goldfarb LCC가 처음으로 신영증권에 5% 이상 주주로 이름을 알리기 전, Neuberger & Berman LCC가 보통주와 우선주를 각각 59만2999주(6.32%), 49만3106주(6.99%)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Neuberger & Berman LCC는 2002년 신영증권의 주요주주로 이름을 드러냈는데 Neuberger & Berman LCC의 대주주가 바로 Ruane, Cunniff & Goldfarb LCC라는 점에서 사실상 루안의 신영증권과의 인연은 무려 15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치투자의 대가인 루안은 왜 신영증권을 선택한 것일까.

지난 2002년 3월말 기준 신영증권의 총자본은 4457억원에서 2016년 3월 말 1조676억원으로 이 기간 동안 약 2.5배 증가했다. 총자본의 연평균 성장률은 6.9%로 이는 기업가치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업가치가 증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연 이익잉여금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이익잉여금이란 기업의 영업활동에서 생긴 순이익으로 배당 등의 형태로 사외에 유출되지 않고 사내에 유보한 부분을 말한다.

▲ 신영증권 누적 이익잉여금 추이(단위:억원) [출처:와이즈에프앤]

지난 2002년 3월 기준 신영증권의 이익잉여금은 2888억원에서 2016년 3월 8299억원으로 늘었다. 물론 신영증권의 당기순이익은 이 기간 동안 시황변동에 따라 큰 폭으로 증감했으나 단 한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 기업의 가치를 증가시키는데 일조한 것이다. 이에 신영증권의 주가도 같은 기간 1만8150원에서 5만9800원으로 오르며 화답했다.

Neuberger & Berman LCC와 Ruane, Cunniff & Goldfarb LCC를 하나의 펀드로 본다면 이 기간 동안 빌 루안의 투자수익률은 229.5%다. 이 기간 동안 코스피지수는 122.9% 상승했으니 루안의 가치투자 실력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건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빼놓은 것이 있다. 바로 배당금이다. 두 펀드의 총보유 기간 동안 보통주 기준 100만주(우선주 포함 보수적 관점)라고 가정해도 최소 237억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한다.

빌 루안은 강한 비즈니즈모델을 가진 기업을 가장 잘 선별하는 투자의 대가로 꼽힌다. 신영증권은 지난 1971년 원국희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현재까지 무려 46년간 단 한 번의 적자도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경제적 해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영증권의 경제적 해자, ‘고무줄’ 포트폴리오

일반적으로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주 수익원이다. 이에 과도한 브로커리지 수수료 의존도 탓에 증시 동향에 수익성이 크게 흔들리고, 투자자들의 손익 여부에 관계없이 증권사들은 수익을 챙긴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최근 증권사들은 브로커지리 수익 의존도를 줄이고 자산관리, 투자금융(IB)으로 수익 포트폴리오를 확대 중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증권사는 중개업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브로커리지 수익 의존도를 갑작스럽게 줄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자산관리, IB에서도 중개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신영증권은 예전부터 브로커리지 의존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지난 2002년(이하 3월 결산일 기준) 신영증권의 영업수익 대비 수수료수익 비중은 44.6%, 증권매매이익(주식, 채권 등) 26.3%, 금융수익(이자수익 등)이 25.7%다. 당시 대부분의 증권사들의 수수료수익 의존도가 100%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만큼 신영증권의 영업수익 구성은 분명 달랐다.

2004년에는 금융수익이 35.5%, 수수료수익 32.07%, 증권매매이익 및 평가이익이 30.29%를 차지하는 등 고른 수익을 보여줬다.

한편, 2004년 하반기부터 전세계 증시의 대세 상승과 함께 코스피 증시도  이러한 분위기를 타시 시작했는데 이후 신영증권의 수익 구성도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2006년에는 수수료수익과 금융수익이 각각 33.55%, 21.84%, 단기매매증권매매이익이 15.18%를 차지한 가운데 신종증권거래이익(ELS 등)과 파생상품거래이익 외 항목이 각각 15.18%, 14.27%를 기록하는 등 수익구조가 확대됐다.

2007년 대세상승장이 끝나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설이 대두된 시기에는 유가증권 평가 및 처분이익이 무려 59.45%를 차지하는 등 시장의 분위기를 적극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해 수수료 수익은 불과 16.79%에 불과했던 한편, 기타영업수익이 13.56%를 차지한 점이 눈에 띄는데 이는 대손충당금환입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손충당금이란 회수불능채권을 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외상값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손실’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을 뜻한다.

하지만 대손충당금 대비 실제 손실이 적게 발생하면 반대로 이익이 발생하게 되며 이는 대손충당금환입이라는 계정항목으로 수익 계상된다. 신영증권은 과도한 증시 상승을 경계하며 이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 신영증권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단위:억원) [출처:와이즈에프앤]

이러한 분위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지 직전에도 계속 이어갔다. 2008년 신영증권의 유가증권평가 및 처분이익 비중은 60.7%, 기타영업수익은 15.81%(항목 변경으로 배당, 파생상품거래이익 등)를 기록했으며 수수료수익 비중은 13.52%로 더욱 낮아졌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후 2009년에는 수수료 수익이 무려 5.48%로 쪼그라든 반면, 유가증권평가 및 처분이익은 56.15%, 파생상품거래이익은 28.51%를 기록했다. 이는 마치 ‘고무줄’과 같은 포트폴리오라 할 수 있다.

2015년 이후에는 파생결합증권 관련 헤지손실 발생 등으로 상품관련 손익의 변동이 크고 자기매매이익은 낮게 나타나고 있으나 동종업계 대비 변동성은 낮은 편으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투자의 대가는 투자의 대가를 알아본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빌 루안은 신영증권의 무엇을 보았을까’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힌트는 2002년 Neuberger & Berman LCC가 신영증권의 지분을 매입하기 전 30년 동안 신영증권은 흑자였다는 것이다. 특히,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여파로 국내 기업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신영증권의 ‘흑자행진’은 이미 리스크관리 능력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루안이 그레이엄의 제자인 만큼 ‘경제적 해자’를 중시했다는 것이다. 금융산업에서 경제적 해자는 단연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 능력이다. 이는 첫 번째 힌트와 이어진다. `경제적 해자` 용어설명 아래 ☞

마지막은 신영증권 수익구조가 ‘고무줄’ 같은 탄력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증권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도 빠르게 시장 트렌드를 쫓아갈 수 있는 업종이다. 신영증권은 ‘고무줄’ 수익구조로 증권업의 특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이는 두 번째 힌트와 이어진다.

결국 루안은 신영증권의 과거 흑자가 미래에도 반드시 이어질 것이란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레이엄은 그의 제자들에게 기업의 과거 기록은 본질적 측면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가르친 바 있다. 버핏 또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투자철학을 더해 최고의 투자자가 됐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버핏, 루안과 같은 가치투자의 대가들은 투자대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판단, 즉 사람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 신영증권 주당배당금(DPS, 좌) 및 배당성향(우) (단위: %,원) [출처:와이즈에프앤]

신영증권은 원국희 회장이 인수한 이후 현재까지 46년이라는 기간 동안 흑자기록을 이어가는 동시에 배당 또한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배당은 주식투자자들이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 동안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현금흐름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원 회장은 신영증권 인수 전 본인이 배당주를 통해 종잣돈을 모았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 결국 신영증권을 인수하게 됐다. 원 회장은 배당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며 그 만큼 주주들의 입장을 잘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밸류고배당펀드’(2003년 출시)는 국내 배당주펀드의 원조이자 원 회장의 특별한 관심 하에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신영증권의 46년 연속 배당에 있어서도 원 회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신영증권과 그 자회사인 신영자산운용도 가치투자의 명가로 불린다. 버핏이 루안을 인정했던 것처럼 루안도  신영증권을 알아본 것이다.

경제적 해자란 경쟁사가 쉽게 넘볼수 있도록 하는 진입장벽을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따라 파놓은 못)에 비유한 말이다. 워렌 버핏이 1980년대에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처츰 주창한 투자 아이디어다. 한마디로 진입장벽과 구조적 경쟁우위를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