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와 민첩성을 연결하라> 데이비드 버틀러·린다 티슬러 지음, 윤태경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펴냄

 

언뜻 보기에 이 책은 온통 코카콜라의 자화자찬 같다. 그렇지만, 코카콜라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 국면이다. 131년 코카콜라 아성이 바닥부터 흔들린다. 매출은 2012년 480억달러에서 2016년 418억달러대로 급감했다. 북미와 유럽은 물론이고 신흥시장에서도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다급해진 경영진이 지난 4월 미국 애틀랜타 본사 인력의 20%(1200명) 감축안을 내놓았을 정도다. 본디 '비용 절감책'이란 경영진의 손에 ‘회심의 카드’ 한 장 없을 때 내미는 궁여지책이다.

코카콜라의 위기는 환경에 적응 못한 탓이다. 안이한 경영진의 잘못이다. 2000년 들어 ‘웰빙’ 바람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 이 거대 기업 경영진은 바람의 의미를 읽지 못했다. 미디어는 500㎖짜리 탄산음료에 3g짜리 각설탕 18개 분량인 54g의 당(糖)이 함유돼 비만의 원인이라고 고발했다. WHO가 권고한 가공식품을 통한 성인의 당류 하루 섭취량(50g)보다 많은 양이다. 또 탄산음료 속 인산이 칼슘 흡수를 막아 청소년 뼈 약화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 탄산소프트음료(CSDs : Carbonated Soft Drinks) 코카콜라는 졸지에 ‘건강의 적(敵)’이 됐다. 각국이 도입하고 있는 ‘설탕세’ ‘소다세’는 미국의 경우 음료 1온스(약 29㎖)에 1~2센트로, 2ℓ짜리 페트병 코카콜라에는 1.02달러(약 1153원)나 부과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콜라 퇴출 바람까지 분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이 책은 코카콜라의 빛나던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되짚는데 의미를 둬야할 것 같다. 1886년 탄산수에 설탕 시럽을 넣어 탄산음료를 만들기 시작한 코카콜라가 어떻게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해 끝없이 규모를 키워왔는지 말이다.

저자들이 정리한 코카콜라 성장요소는 규모(Scale)와 민첩성(Agility)이다. 규모와 민첩성은 ‘디자인’을 통해 확보됐다. 여기서 디자인이란 ‘문제 해결을 위해 의도적으로 각 요소들을 연결하기’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코카콜라는 음료수 뿐 아니라 광고, 포장 용기, 음료 판매용 냉장고등 모든 요소들이 매출신장이란 목표와 상호 연결되도록 디자인을 해왔다는 것이다.

모든 초창기 기업은 ‘규모’에 집중해야 살아남는다. 규모는 ‘제품 판매량’과 ‘비즈니스 모델’로 구성된다. 1886년 설립된 코카콜라는 첫 2년간 동네 약국 수준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코카콜라는 단순화, 표준화라는 통합 시스템을 디자인해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코카콜라임을 알아볼 수 있고 똑같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콜라의 제조법, 로고, 병, 간판을 단순화‧표준화했다.

코카콜라는 지금도 미국 애틀랜타 은행 비밀 금고에 보관 중인 코카콜라 성분 배합 공식 문서에 의해 제조된다. 그 덕분에 모든 국가에서 코카콜라 맛은 동일하다. 로고는 1923년 표준화했다. 콜라병은 1915년 코코아콩 꼬투리 그림을 반영해 만들었다. 콜라음료는 섭씨 2.2도에서 최상의 맛이 나도록 디자인돼 유통 과정에서도 온도 체크가 이뤄지도록 관리했다. 코카콜라는 1886년 이래 무려 70년간 가격을 5센트로 고정하기도 했다. 고정가격 정책은 사업을 매우 단순화했다.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부터 브랜드 마케팅을 했다. 마케팅 캠페인의 디자인도 통일했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 선택한 비즈니스 모델은 프랜차이즈였다. 코카콜라 미국 본사는 세계 각국의 250여개 보틀링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세계화와 지역 밀착형 로컬리즘이 프랜차이즈 방식을 통해 달성됐다.

코카콜라가 덩치를 급격히 키우면서 디자인 전략은 민첩성을 지향하는 쪽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이 과정에서 레고를 조립하는 듯한 모듈 시스템이 개발됐다.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별 조건을 반영한 다양한 종류의 보틀, 냉장고, 매대, 광고, 유통망이 디자인됐다. 중남미의 비좁은 상점들을 위해 가구 전문기업 이케아의 도움을 받아 좁은 공간에서도 코카콜라가 돋보이는 매대를 만들었다.

확연히 기는 꺾였으나 코카콜라는 아직 세계 음료시장의 최강자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브랜드 가치 순위'(2016년 기준)에서 코카콜라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4위 자리를 지킨다. 페이스북, 도요타, IBM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다. 펩시는 29위로 아직멀찍이 뒤처져 있다.

과연 코카콜라의 호시절은 다시 올까. 지난 5월 '구원투수'로 나선 제임스 퀸시 신임 코카콜라 CEO는 작금의 부진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131년의 역사를 가진 코카콜라가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여야 한다는 데 집착하다 보니, 경영진들이 변화가 이뤄질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규모'는 키웠으되 '민첩성'을 잃었다는 반성문처럼 들린다. 지금으로서는 제임스 퀸시의 ‘뉴 코카콜라’ 정책이란 것도 인드라 누이 펩시코 CEO의 전략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단이 옳으면 미래는 어둡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