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 5월 노키아와의 특허 분쟁을 종료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7년 6월 첫 번째 아이폰이 출시된 후 노키아는 2009년 애플을 상대로 10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2년간의 법정 소송이 흘렀고 양사는 2011년 특허 사용 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했다. 하지만 노키아가 애플을 상대로 작년 말 만료 예정이었던 특허 사용 계약을 연장하는 한편, 특허 계약을 추가할 것을 요구했으나 애플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며 전선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노키아는 애플을 상대로 미국과 독일에서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갈등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였다. 하지만 애플과 노키아는 지난 5월 특허 사용계약을 맺으며 사태를 급하게 일단락시켰다. 노키아는 애플에 네트워크 인프라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며, 애플은 애플스토어에서 다시 노키아 헬스케어 자회사 위딩스의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 출처=플리커

퀄컴, 애플의 세상과 싸우기 시작하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과 퀄컴의 격돌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퀄컴은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의 조사를 받고 있다. 퀄컴이 공정경쟁을 저해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삼성전자와 인텔도 보란 듯이 애플의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서를 FTC에 제출했으며, 이제 퀄컴은 세계와 싸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일까. 현재 애플은 아이폰에 전 세계 200여개가 넘는 협력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있으며, 특히 모뎀 칩은 지난 2011년 이래 퀄컴과 독점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퀄컴은 독점 공급 조건으로 애플에 막대한 리베이트를 지불했으며, 이에 따라 모뎀 칩을 제품당 생산 단가 이하에 공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애플은 갑자기 돌변했다. 2016년 아이폰7 시리즈 일부에 인텔 모뎀 칩을 탑재해 독점 계약을 위반한 상태에서 급기야 “당사가 한국 공정위의 반독점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퀄컴이 10억달러에 이르는 리베이트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며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왜 돌변했을까. 간단하다. 특허 로열티에 소요되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선망의 대상인 애플의 약점이 선명하게 묻어난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를 충실하게 아이폰에 담아내며 삼성 카피캣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가운데, 점점 ‘애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작은 시장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갑질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중국에 매달리며 울고 있는 애플은 모바일 시대에서 초연결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의 경계에서 헤매는 한편, 자신의 강력한 지위가 박살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애플과 퀄컴의 싸움을 보면, 더욱 불편한 진실이 엿보인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테크 저널인 <FUTURUM>의 올리버 블랜차드(Olivier Blanchard)는 이를 권모술수라(Clever as it is insidious) 정의하기도 했다.

▲ 출처=픽사베이

먼저 대리전략이다. 애플은 퀄컴과 소송전을 벌이는 한편 하청업체인 폭스콘, 페가트론 등을 움직여 이들이 퀄컴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을 중단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퀄컴 특허에 대한 특허사용자(Patent Licensee)는 애플이 아닌 아이폰 생산을 담당하는 이들 하청업체이기 때문에, 이들을 압박해 퀄컴의 돈줄을 마르게 하려는 전략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애플이 하청업체에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청업체들은 애플의 뜻에 따른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애플의 전략은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다. 퀄컴과 하청업체와의 라이선싱 계약은 원천적으로 애플과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스콘과 페가트론 등은 애플과 계약을 맺기 전 이미 퀄컴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 바 있다.

일단 퀄컴은 지난 5월 애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하청업체들을 제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애플을 상대로 해당 하청업체와의 라이선스 협약을 불법적으로 침해한 데 대해 별도의 소를 제기한 상태다.

기본적인 특허가치를 모두 무시한 애플의 교묘한 언론전도 논란이다. 애플은 FTC에 퀄컴을 제소한 직후 곧장 중국과 영국에서 전격적인 손해배상 청구를 단행했다. 그림으로 보면 FTC에 제소하고, 이를 이론적 배경으로 삼아 손해배상을 거는 모양새다.

그러나 애플이 주도하는 FTC의 퀄컴 제소는 어떤 혐의나 주장을 입증할 근거로 활용되기에는 상당히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FTC가 주장하는 반독점법 위반 혐의의 대부분이 법정에서 입증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미 FTC 의장인 마우린 올하우센(Maureen Ohlhausen) 위원이 제소 당시 이례적 성명을 통해 해당 제소의 오류를 강력히 지적한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올하우센 위원은 “퀄컴에 대한 제소는 경제적으로나 증거 입증 능력에서나 모두 결함이 있는 조치로, 전체 FTC 위원 5명 중 2명이 공석인 상태에서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2대 1 찬성으로 서둘러 진행됐다”고 폭로했다. 올하우센 위원은 나아가 “이번 퀄컴에 대한 제소는 미국의 지적재산권 가치를 아시아 지역 및 세계적으로 크게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피력한 바 있다.

▲ 출처=플리커

이 문제는 애플의 욕심만 채우고 끝나지 않는다

애플과 퀄컴의 소송전이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것은 확실하다. 전선도 넓어졌고 보는 눈도 많다. 이 지점에서 애플은 강력한 브랜드 효과로 퀄컴을 왕따시키고 있다. 물론 퀄컴도 잘못이 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허에 있어 용인되기 어려운 갑질을 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이번 분쟁은 기술개발에 의한 인간의 진화적 측면으로 분석할 때, 단순히 애플의 욕심만 채우고 끝날 문제는 아니다. 이번 제소가 퀄컴을 넘어 미국 지적재산권 전체의 가치를 흔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전은 향후 수많은 제조사들이 경쟁사나 공급업체들의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해 애플과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길 전망이다. 열심히 자금을 투입해 연구개발에 나서도 그 과실을 간단히 탈취할 수 있다는 나쁜 사례를 남겼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스티브 잡스가 지난 2010년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HTC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데 대해 “애플의 특허와 혁신을 대가 없이 사용하는 경쟁사를 좌시하고 않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애플은 건강한 경쟁을 지향하나, 경쟁사들은 자사의 기술을 훔쳐 쓰기보다는 자체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발언한 부분이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