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어요. 오늘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이들이 있는데도 말이죠. 저는 단지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의 결말이라며 외면한다. 불법 사채로 인한 고통과 피해 말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의 송태경 사무처장은 불법 사채업자들과 싸우는 전사다. 툭하면 협박전화가 걸려오지만, 그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지켜볼 수 없었다”는 이유로 오늘도 싸운다. 그는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책국장이었다. 상가임대차 보호, 파산자의 차별, 사채이자의 제한 등 일련의 문제에 대해 그는 화두를 던졌고 끝내 입법화를 이끌었다. 민노당이 해체되면서 그는 정치적 터전을 잃었다.

이후 송 처장은 세상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불법 사채시장에서 고통받는 채무자들을 위해 나섰다. 

▲ 지난 5월 31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실에서 송태경 사무처장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사람은 누구나 삶의 빛깔이 있다

그가 하는 가치 있는 일에 비해 그의 사무실은 후미지다. 왜소한 그는 혼자 일한다. 사채업자들의 협박 전화는 수시로 걸려온다. 왜 하필 불법 사채와 싸우기로 결심했을까.

송 처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영역이 두 가지가 있다”며 “비정규직 문제와 불법 사채 문제인데, 비정규직 노동 문제는 조직화된 운동세력이 있어 싸울 수 있지만, 불법 사채 문제는 매일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연신 울리는 전화, 그 전화를 받고 있을 때 다른 전화는 또 울린다. 그 전화를 받는 사이사이 송 처장은 책상 앞에 있는 사채 피해자에게 사채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의 안내는 단순히 상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송 처장은 협박을 받았던 채무자를 사채업자를 압박하는 협상가로 변모케 한다. 우선 그는 채무자가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을 표로 정리해준다. 그가 정리한 표에는 원금과 채무자가 지급한 이자, 그 이자가 법령이자를 초과했는지 여부, 초과했다면 오히려 채무자가 받을 돈은 얼마인지 나타나도록 만든다.

그는 “사채업자가 돈을 빌려줄 때 반드시 통장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령이자를 초과해 과다하게 이자를 받더라도 증거가 없게 된다”며 “이런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사채업자와의 통화를 녹음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송 처장의 지침에 따라 불법 사채 피해자들이 녹음파일을 푼다. 녹음파일에는 온갖 협박과 욕설이 난무한다. 떨고 있는 피해자의 목소리도 들린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송 처장에게도 사채업자의 협박이 이어진다. 그는 무덤덤하다.

송 처장이 자료를 정리해 주면, 본격적으로 사채 피해자에게 사채업자와 협상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채 피해자가 이제껏 법률이자를 초과해 준 돈을 정리해 오히려 받을 돈이 있다고 통지하면서, 사채업자의 그간의 행위가 대부업법을 위반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됨을 알려주도록 한다.” 그의 첫 번째 조언이다.

두 번째로 그는 상대방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니 이제는 채무자가 협상의 우위를 점하도록 알려준다. 이것은 그동안 사채업자의 무자비한 억압 상태에 있던 채무자에게 피해의식을 떨쳐 버리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과정은 차라리 ‘의식화’ 교육에 가깝고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 보였다.

세 번째로 그는 “합의가 이루어지면 사채업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서류를 원본 그대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서류는 차용증, 위임장, 공증원본 서류 등 대출관계 서류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송 처장은 피해자에게 형사고소와 함께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하도록 안내한다. 송 처장이 만들어 피해자들이 사채업자들에게 보내는 문자에는 지금껏 조언한 그 모든 과정이 녹아 있다.

“경찰, 금융감독원, 민생연대 모두 (사채업자인 당신의 행동이) 불법이랍니다. 민생연대에서는 형사절차 민사절차 신고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주며 법적 절차를 밟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당신이) 불법적으로 받은 초과 지급 이자를 받으려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합의서를 작성해 주고 끝내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합의가 안 되면 민생연대에서 하라는 대로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네요.” 이게 그 문자 내용이다.

▲ 지난 5월 31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실에서 송태경 사무처장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상담하는 과정에서 송 처장은 불법 사채 피해자들에게 ‘삶의 빛깔’을 강조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빛깔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빛깔을 잊지 말고 본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철학을 피해자들에게 조언한다. 그는 “피해자들의 삶 속에 죽음이 보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살아가야 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최재천 전 국회의원의 보좌관 생활도 했다. 당시 일화. 한 가족의 구성원이 서로 대출 보증을 서줘 보증관계가 얽힌 가족이 있었다. 이를 해결해줬는데, 한밤에 그 가족의 가장이 문자가 왔다. “처장님 잘 갑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낸 그 가장은 목숨을 끊었다.

송 처장은 “대부분 사람들이 불법 사채 빚이 정리되더라도 그동안 감당해야 했던 공포감, 죄책감, 고립감 등으로 우울증에 빠진다”며 “사채 피해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만 아니라 돈을 돌려 막는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와 친, 인척들에게 피해를 주게 돼 이들로부터도 고립된다”고 설명했다.

그 고독감이 우울증으로 악화되고 삶을 포기하게 한다는 것. 사실 불법 사채 시장에서는 이처럼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일상화된 죽음 앞에 송 처장마저 무관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

그는 정책을 펴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게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송 처장은 “가장 큰 문제는 사채업체가 난립하는 것인데, 순자산 기준 3억원 이상을 가진 업체들만 등록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불법업체로 규정해 단속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이면 불법 사채 피해자를 위해 시민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다. 내년에도 계속 시민운동을 해나가고 싶지만,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 운영자로선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개인의 힘으로 버텨온 데 한계를 느끼는 게 사실. 불법 사채를 근절하는 데 사회와 정부가 지속적이고 행정력 있는 조치를 취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