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금융은 어떤 모습일까. 점포가 사라지고 인터넷을 넘어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기술발전에 힘입어 금융사와 고객 간 접촉이 더 활발하고 이를 통해 금융산업이 더욱 발전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것이 금융의 ‘근본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은행 등 금융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가야 했다. 이후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인터넷, 그리고 현재 모바일 기기의 등장은 금융을 이용하는 데 ‘편리함’을 제공했다.

이러한 ‘편리함’은 금융사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금융사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 측면도 있다. ATM, 인터넷, 모바일의 등장은 ‘금융’의 기본 메커니즘 변화에 영향을 주기보단 고객을 끌어들이는 수단, 즉 금융사의 수직계열화를 도와 고객을 ‘대면’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전개되는 가운데 최근 금융업계에 ‘비대면’이란 단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금융업은 사람이 전부’라며 ‘사람 간 신뢰’를 강조했던 상황이 무색해지고 이는 역으로 ‘금융 수직계열화’를 파괴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수직’의 반의어는 ‘수평’이다. 미래의 금융은 평평한 곳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될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과 초연결성이다. 증기기관 기반 기계화의 1차 산업혁명, 전기 에너지 기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 정보화 및 자동화 시대라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을 거쳐 이제는 모든 것이 연결되고 지능적인 사회로의 진화를 앞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는 기존의 1~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 간 네트워크가 극대화되는 초연결사회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그 자체가 인프라다. 산업혁명은 단연 금융업의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금융산업의 미래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일까.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3차 산업혁명의 사회적 특징은 중앙집권화, 타율성 및 통일성, 수직적 지배와 통제, 단순 노동에서 복잡한 노동으로 변화되는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분권화, 자율성 및 다양성, 수평적 연대와 보충, 노동 단순화의 종말로 함축된다”고 설명했다.

 

‘중개’의 금융, 그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현대의 금융은 소비자가 금융회사를 통해 예금, 대출, 투자자문 등의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미래의 금융은 예금은 은행, 대출은 P2P 플랫폼, 투자자문은 로보어드바이저 등으로 전부 ‘분권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이 기능별로 분화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중앙집권화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서도 엿볼 수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통해 움직이는 데 주지하다시피 가상화폐는 중앙은행과 같은 제3의 신뢰기관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급결제 시스템은 최근 모바일, 간편결제는 사용의 편의성과 휴대성 등으로 확산 추세에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미 우리는 디지털로 표기된 숫자를 통해 통장잔고를 확인하고, 결제하는 것에 익숙한 만큼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에 바짝 다가선 상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은 그 역할이 필요 없게 된다는 점이다. 아울러 블록체인은 P2P 자금이체 서비스를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먼 미래에는 은행의 존재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보험업은 그간 쌓아 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향후 컴퓨터나 AI가 활용될 부분이 많다. 보험 상품 개발의 경우 성별·연령별 보험료 산출이나 위험률 분석 등은 AI로 처리가 가능하며 가입 성향 분석이나 안내장 발송도 컴퓨터로 일부 대체가 가능하다.

또 보험업은 고객 맞춤형 상품 개발과 다양한 채널을 통한 신규 고객확보, 자동화된 언더라이팅 시스템을 통한 비용 효율성 제고 등 디지털 기술 혁신으로 가치사슬(Value Chain)이 재정립되고 있다.

실제로 기존 계약 인수심사 기능을 IT기술로 대체하는 ‘보험계약 자동심사 시스템’을 활용하는 보험사가 늘고 있으며 자동화 시스템을 통한 개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AI 기술은 계약심사뿐만 아니라 상품판매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초 핀테크 보험비교사이트인 마이플랜은 자체 조사를 통해 자사 서비스 이용 시,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약 10%의 보험료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서비스는 보험을 직접 판매하지 않고 정확한 시스템의 분석을 통해 보험을 비교하기 때문에 각종 보험에 불필요한 특약을 제거하고 합리적인 보험상품과 설계안을 도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험료 절약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보험업이 보험사가 주도의 상품 판매가 아닌 기술의 발전과 소비자 선택의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말한다. 한편, 무인자동차 개발에 따라 보험사들은 충돌 사고에 대한 보험을 만들 필요가 없어지고 자동차 소유자가 적어짐에 따라 많은 고객을 잃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투자 및 증권 산업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의 보편화로 많은 사람들이 시공간을 초월, 고객 맞춤형 자산운용 서비스 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특히 금융투자업계에서 블록체인이 가장 먼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은 비상장주식 거래 부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주식 거래에서는 매수자와 매도자의 디지털 서명과 체결, 대금정산이 모두 동시에 이뤄질 수 있어 거래시간이 감소되며 위·변조도 불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증권사의 역할은 무엇일지 다시 한 번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기 연구위원은 “중앙집중형 서비스 제공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될 것”이라면서도 “단기적으로 분산원장기술 기반의 서비스 도입이 은행시장 인프라의 전 영역으로 확산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중개기관의 역할은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나 혁신적 거래 플랫폼 사업자의 등장으로 인한 금융업 모델 분화는 전통적 수익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이 연구위원은 “은행이 소비자의 금융생활에서 중심적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며 “핀테크 산업의 성장은 기존 은행의 중심적 역할을 위협하기보다는 수익성 악화와 서비스 공급 철학의 변화를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금융이 ‘평평’해진다

금융사들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금융업이 중앙집권화에서 분산화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버틸 수 있는지 말이다. 그간 금융사들은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패키지 형태로 제공하는 한편, 핀테크 업체들은 이를 해체해 경쟁력 있는 개별서비스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탈중개화가 서비스 공급자의 수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기존 금융중개기관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사실 소비자에 있다. 기존 금융사들이 대형화, 종합서비스를 추진하는 과정이 소비자를 생각한 것인지 여부를 생각하면 그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겉으로는 고객을 위한다지만 실질적으로는 과도한 금융상품에 대한 과도한 수수료 체계,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아닌 금융사에 실질적 이익 높은 상품 등을 판매해왔던 관행은 핀테크를 만나 철저히 무너지고 있다.

 

그만큼 소비자들은 금융사들의 이러한 관행에 지친 한편, IT기술 발전과 이러한 환경에 익숙해짐에 따라 스스로 금융서비스를 찾아 나서게 됐다. 이러한 상황이 결국 금융사의 ‘수직 계열화’를 무너뜨리고 금융서비스의 수평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쉽게 말해, 소비자들은 금융 ‘서비스’ 수준에 집중 및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짐과 동시에 ‘중개인’에 대한 ‘신뢰’를 P2P 네트워크로 옮겨가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사들은 서비스 개발 시 금융상품 위주의 사고에서 소비자 중심 사고로 전환해야만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핀테크 기업들을 단순 ‘하청업체’ 수준으로 생각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융업은 금융당국, 금융사 그리고 핀테크 산업이 평등한 관계에서 논의가 이뤄져야만 더 빠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