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업계는 ‘비대면’이 화두다. 이에 금융권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기술이 이를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물론 이러한 전망이 새롭지는 않다. 1990년대 ATM의 도입으로 시작된 ‘비대면’은 인터넷·모바일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대면’이 주가 됐던 금융업에 ‘비대면’이 주를 이룬다는 것은 금융업의 근본적 변화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금융의 4차산업 혁명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금융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심스레 내다본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들어 정치·사회적 안정을 점차 회복했다. 이와 함께 경제적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주도하에 적극적인 경제개발전략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 ‘자본부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족한 자본을 동원, 이를 전략산업에 집중적으로 배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 역할은 금융산업이 담당했다.

이렇듯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출발은 현재의 부가가치 창출 산업이 아닌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수단으로써 그 신호탄을 쐈다.

1970년대에는 금융산업의 정책수단으로써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고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중화학 공업 등의 육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1972년 당시 악화된 기업의 경영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8.3 긴급경제조치’를 실시했다.

이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던 고리의 사채를 동결하는 것이었으며 아울러 신용보증제도를 확충하고 산업합리화자금을 조성했다. 또 대폭적인 금리인하 및 환율안정화 조치가 시행됐다.

한편, ‘8.3 긴급경제조치’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다양한 형태의 비은행 금융기관이 설립되는 계기가 됐다. 은행 중심의 금융산업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는 금융자율화 및 개방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동시에 과거 정책수단으로서 이용됐던 금융이 자원배분 왜곡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방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세계화’라는 명분하에 외국으로부터의 금융자율화 및 개방화 압력을 받은 영향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금리가 자유화된 CP, CD, RP, CMA 등 신종금융상품이 등장하고 외국인과의 합작은행 설립, 보험시장 개방 확대, 외국인 국내 증권 간접투자 등이 허용됐다. 또 외환 및 자본거래에 관련된 규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이런 흐름은 상당히 느리고 단편적으로 진행됐다.

국내 금융산업이 본격적인 자율화 및 개방화의 물결을 맞이한 것은 1990년대다. 현대의 금융업 환경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이 시기는 금융업이 정책수단에서 부가가치 산업으로 그 명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ATM, 금융 ‘비대면’·‘24시간’ 서비스 시작…그리고 ‘사망선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1990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의 명동지점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이전까지 현금자동지급기(CD)만 있던 상황에서 ATM의 등장은 금융업 진일보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은행 입출금에 있어서 ‘비대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흥은행은 ATM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했으나 이듬해 씨티은행이 ATM을 24시간 운영하면서 금융업은 비대면을 넘어 24시간 접할 수 있는 존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물론 ATM이 처음부터 ‘신뢰’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금융거래에 익숙했던 고객들이 기계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객들은 차츰 ATM 사용에 익숙해졌고 은행들은 ATM 이용 시 각종 수수료 혜택을 제공하는 등 유인책을 펼쳤다.

1992년 CD는 9659대, ATM은 61대에서 1997년에는 각각 3만5470대, 7204대로 증가했다. 한편,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은 지점을 축소하기 시작하는 한편, 1998년 CD는 3만2223대로 전년 대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ATM은 9174대로 오히려 늘어났다.

은행에 있어서 ATM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최고의 ‘영업사원’과 같은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ATM의 증가추이는 CD의 그것을 능가하기 시작했고 2007년 ATM이 4만7499대를 기록하며 CD 4만6229대를 추월했다. 지난 2015년 말 기준 ATM은 8만6802대로 CD 3만4542대의 2배를 넘어섰다.

한편, ‘승승장구’하는 ATM에 위협적인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인터넷뱅킹이다. ATM이 CD의 대수를 추월한 2007년 말, 입출금거래 기준 업무처리 비중은 대면거래가 20.4%, 텔레뱅킹은 11.4%, 인터넷뱅킹은 23.7%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CD·ATM의 업무처리 비중은 44.5%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이후 CD·ATM의 비중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올해 1분기 기준 CD·ATM의 비중은 37.4%, 대면거래는 11.3%, 텔레뱅킹은 10.6%로 모두 줄어든 반면, 오로지 인터넷뱅킹(스마트폰 뱅킹 포함)만 40.7%로 크게 확대됐다.

한편, 지난 2014년 말 현재 십만명당 ATM 설치대수는 한국이 291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는 미국 173대, 영국 129대, 일본 128대, 호주 118대 대비 월등히 높은 수준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치인 99.3대의 무려 세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러한 ATM 과잉공급과 함께 인터넷뱅킹과 카드 사용이 늘어나자 현금 입출금거래 수요 자체가 줄면서 ATM은 결국 ‘디지털 금융’에 잠식돼 ‘사망선고’를 당한 셈이다.

 

인터넷·모바일, 금융업 ‘비대면’의 보편화

ATM은 1990년대 한국의 금융산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어 2000년대에는 인터넷 기술이 인터넷뱅킹 물론 증권사들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온라인 다이렉트 보험 등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금융의 전자화는 신용카드 사용을 보편화하고 이어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금융의 디지털화는 더욱 가속화됐다.

마치 새로운 금융의 시대가 열린 듯한 모습이었다. 예금과 적금 외에 여타 상품들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펀드의 등장은 가히 폭발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고 이어 금융공학의 발전과 함께 각종 파생 및 파생결합상품이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에 한몫한 주체는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금융사들은 인터넷을 이용한 마케팅을 본격화했고 고객들은 새로운 금융환경 속에서 이전과 다른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비대면’이 보편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업은 ‘신뢰의 산업’이라 불린다. 무형의 상품을 거래하기 때문에 금융사와 고객 간 혹은 직원과 고객 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모바일 환경의 발전은 그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대면’을 통한 ‘만남’이 없이도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환경이 조성되는 데 일조한 셈이다.

비대면 활성화의 긍정적 측면이었을까. 2000년대 초 우리나라 전체 금융사들의 당기순이익은 10조원대에서 2005년 23조원대,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에는 28조원대를 기록하는 등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금융사들의 당기순이익은 하락 혹은 정체돼 있다.

 
 

눈여겨볼 점은 이 기간 동안 국내 전체 금융사들의 임직원 수는 오히려 늘거나 줄어도 그 폭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업의 1인당 생산성이 그만큼 급감하는 환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들어 금융권 인력축소에 대한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기술의 발전은 ‘비대면’ 환경에서 금융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줬다. 물론 과거에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으나 컴퓨터·모바일 등의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들이 점차 성장하면서 ‘대면’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인터넷과 SNS 그리고 ‘비대면’의 당연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표주자인 페이스북을 생각해보자. A와 B가 지인이고 C는 A만 알고 있다고 하자. 이때, A가 B와 C에 각각 페이스북 친구를 맺으면 B와 C는 서로를 모르지만 A를 통해 간접적인 신뢰를 쌓을 수 있다. B와 C는 서로 지인의 지인이라는 점에서 각자 여타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현상은 상당히 중요하다. 현 세대들은 과거 오프라인을 통해 모임을 갖고 기술의 발전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관계를 맺는다. 그 비중이 50대 50이라고 한다면 후세대들은 온라인상에서 관계를 맺는 비중이 더욱 높아질 확률이 높다.

 

미국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는 2001년 논문을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환경을 접한 세대들을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라 명명했다. 반면 이전 세대는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이라 했다.

디지털 이주민은 과거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지만 디지털 원주민은 디지털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한다. 시대가 흐를수록 디지털 원주민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결국 이는 금융업의 ‘비대면’이 100%에 도달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융업의 비대면 환경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비대면’이 금융업의 화두로 떠올랐다는 것은 금융업의 근본적 변화를 암시한다. 이는 단순히 대면과 비대면의 문제가 아니다. 비대면 환경이 초래할 수 있는 금융업의 미래는 기존 금융 메커니즘을 파괴하는 형태로 가히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