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寅일은 장군에게 偏官용신이 寅(목)偏財를 대동하여 寅午戌로 偏官을 삼합으로 키운 날이기에 매우 좋은 날입니다.”

“그렇다. 用神날에 가덕에서 안골포로 향하는 적선 40여 척이 있다는 탐망선의 보고가 왔다. 아마 이 적선은 필연코 구귀의륭이 달포 전에 패망한 뒤에 새로 조직하여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뒤를 이어 오는 함대인 듯하였다. 이 보고를 받고 장군은 곧 이억기와 원균이하 여러 장수를 불러 40여 척의 적선을 공격해 깨뜨릴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날은 거슬러 오는 역풍이 크게 불어 도저히 행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간신히 배를 저어 거제 칠천도 일명 온천도에서 밤을 지냈다.”

“네, 칠월 초열흘, 丁卯일, 이날은 丁(화)正官과 癸(수)상관의 전투가 벌어지는 날이어서 상황이 안 좋은 날인데도, 새벽에 온천도를 떠났습니다. 장군은 우수사 이억기에게 이곳을 떠나지 말고 가덕 쪽으로 진을 치고 기다리다가 접전이 되거든, 숨어서 달려오라고 약속하고 장군이 몸소 주사를 거느리고 학익진으로 안골포를 향하였고, 원균도 차차로 군비의 질서가 잡혀 대소 20척의 병선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오라는 명령을 장군에게 받았습니다.”

“장군은 적이 한산도에서 패전한 뒤로는 응당 우리 병선을 겁내어 험하고 단단한 항만에 깊이 숨어 산을 등지고 나오지 않을 줄을 미리 짐작하고 짐짓 억기의 병선을 떼어 숨어있게 하고 외롭고 약한 형세를 적에게 보이게 하여 적으로 하여금 쉽게 싸우게 함이었다. 장군이 안골포에 다다라보니, 선창에는 적의 대선 21척, 중선 15척, 소선 6척 합42척이 줄지어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3층각을 지은 대선 1척과 2층각을 지은 대선 2척이 있어 외양을 향하여 포구에 떠 있고, 다른 배들은 고기비늘 달린 듯이 포구 안에서 연립하여 있다. 안골포는 지세가 좁고 또 수심이 얕고 조수가 빠지면 땅이 들어나는 곳이어서 도저히 판옥 대맹선을 가지고 자유로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네, 장군은 배를 보내 적선을 큰 바다로 끌어내라고 재차 삼차 도전하였으나 그저께 한산도 큰 싸움에 패망한 겁이 남아 이순신장군의 병선이라면 호랑이나 이리떼 같아 적군은 포구 밖에 나오려고 하지 않고, 아마 여의치 않으면 육지로 내려 달아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장군은 부득이 제장으로 하여금 번갈아 포구 안에 들어가 치고 물러나고, 치고 물러나는 전술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음! 일본 놈들은 비겁한 데가 많아 강자에게 약한 면이 있고, 약자하게 강한 놈들이기에 그런 짓을 하였으리라! 혹은 5척씩 혹은 10척씩 경쾌한 배와 거북선을 놓아 3층각선과 2층각선을 엄습하여 천, 지, 현자의 각종 대포와 장편전을 빗발같이 퍼부으니 적도 사력을 다하여 응전하였으나 3층각선과 2층각선의 적병이 점점 맞아 죽어 거의 다 죽어 없어질 만하면 적의 소선이 다른 배에 있는 적병을 실어다가 보충하고 시체는 싣고 나가는 것을 몇 차례 하였다. 접전이 되는 포성을 듣고 이억기의 함대가 약속한대로 달려와 합세하여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거북선이 포구 안에 들어가 좌충우돌하는 바람에 적의 중, 소선은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고 대선들도 감히 대들지를 못하였다.”

“네, 3층각선과 2층각선은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어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배 몸이 무거워 육지 가까이 들어갈 수는 없고, 또 장군의 주사가 포구를 막았으니 바다 밖으로 도망해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3층각선과 2층각선은 심히 견고하여 대포를 맞고도 쉽게 깨어지지를 않았으며, 적도 이런 것을 직감하고 이 층각선 3척을 근거로 하여 대항하려는 것이었고, 또 아군의 전술로 보더라도 이 층각선 3척을 깨뜨리는 것이 금일 싸움의 중점이었습니다.”

“음! 이렇게 싸우기를 날이 저물도록 계속하여 층각선 3척에 사람을 갈아 실은 것이 몇 십번인지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이러는 동안에 적의 대선, 중선, 소선들은 거북선과 대포와 화전에 맞아 불에 타 40여 척 중에서 남은 것이 층각선과 아울러 10척이 못되고, 적군도 태반이상 죽었다. 그래도 적군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고야 말리라는 듯이 층각선에 갈아들어 조총과 화살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