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고심하는 커제 9단. 출처=구글

세계 랭킹 1위 커제 9단이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커제 9단은 27일(현지시간) 중국 저장성 우전 인터넷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알파고와 가진 마지막 대국에서 209수만에 불계패했다.

커제 9단은 대국 도중 눈물을 흘렸다. 제한시간을 1시간가량 남겼을 때 눈가를 훔치며 자리를 떴다. 커제 9단의 아버지 커궈판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전날 잠을 거의 못 잤고, 바둑 형세도 좋지 않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3번기 중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커제 9단은 "알파고와 바둑을 두는 것은 고통"이라고 밝혔다. 그는 "알파고는 지나치게 냉정했다. 그와 바둑을 두는 것은 고통이었다"며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 작은 희망도 갖기 어려웠다"며 절망적인 심정을 표했다. 그는 이어 "사람과 바둑을 둘 때 더 즐거운 것 같다"며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은 그동안 인류가 두었던 어느 시합보다 의미있다"고 평했다.

이번 시합을 마지막으로 알파고는 은퇴한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이 됐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바둑의 미래 서밋'이 알파고 참가하는 마지막 바둑 대국"이라고 밝혔다. 그는 알파고의 기보 50개를 선물로 공개한다며, 알파고를 이용해 바둑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을 겪은 알파고 1.0은 전보다 더 단단해진 2.0 버전으로 커제 9단을 상대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이세돌 9단과 5번기에서 4승 1패로 우위를 보였다. 연초 인터넷 대국, 커제 9단과 3번기, 단체 상담기 등 총 68승 1패를 기록했다.

▲ 왼쪽부터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커제 9단, 에릭 슈미트 구글 CEO. 이들이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개최한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만났다. 출처=구글

◇​구글, 이제 어떤 수 둘까?

구글은 왜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바둑대결을 시작했을까? 구글과 커제 9단의 대결이 중국에 재진출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커제 9단과의 대국에서 알파고의 승리는 이미 예견됐었다. 지난해 알파고는 '마스터'란 아이디로 온라인 대국 사이트에 등장해 전 세계 바둑기사들과 대적한 총 60번의 대국에서 60 전승했다. 인간이 둘 수 있는 바둑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글은 승리를 예감하고도 커제 9단과의 대결을 추진한 셈이다. 중국 재진출을 위한 '사전 마케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직접 '바둑의 미래 서밋'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AI 시대, 중대한 일이 일어나는 시점을 목격하게 돼 영광"이라며 "이세돌 9단과 1년 전 대국처럼 이번에도 결과와 상관없이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아시아의 리더 국가로서 각 기업, 대학, 기관에서 AI 기술의 진보가 일어나고 있다"고 칭찬하며 "빅데이터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보보안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는 국가마다 다른 체계가 있어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 당국이 요구하는 검열 정책 수용 가능성을 수용하는 발언도 했다.

구글은 지난 2005년 중국시장에 진출했으나 검열 문제로 갈등을 빚어 철수했다.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서비스 접속을 차단했다. 그 사이 텐센트, 알리바바 등 거대 인터넷 기업이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에겐 7억명이 넘는 인터넷 인구가 있는 중국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중국 당국은 여전히 강경하다.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대결도 중국 당국의 중계 불허 결정으로 중국인들은 시청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CNN은 “알파고가 커제를 상대로 2승을 거뒀지만 중국에는 이기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구글의 선다 피차이 CEO는 경영자 자리에 오른 지난 2015년부터 중국 재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최근 구글은 자사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을 중국에서 검열망을 피하는 소프트웨어 없이도 내려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바둑 마스터 '알파고'. 출처=구글

◇TPU 2세대, 구글의 미래

이세돌 9단과 겨뤘던 알파고 1.0이 프로였다면 알파고 2.0은 원숙한 마스터다. 알파고 1.0은 구글 클라우드 상 50개의 TPU(Tensor Processing Unit)를 사용했다. TPU는 구글이 머신러닝을 위해 직접 설계한 장치다. 현존하는 최고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세돌 9단과 겨룬 알파고가 1세대 TPU고, 2세대는 커제 9단과 대국을 벌인 알파고 마스터다. TPU는 기존 시스템반도체와 달리 빠른 연산능력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AI과 머신러닝 등 신사업 분야를 위해 특별히 제작됐다. 1초에 50개의 수와 10만개의 형태를 탐색한다. 구글은 직접 반도체 설계에 뛰어들었고 지난해 최초로 자체 TPU를 공개했다.

구글이 커제 9단과 대국을 한 이유 중 하나가 자체 설계한 반도체 기술인 TPU 2세대를 공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머신러닝 반도체 분야 선두기업은 엔비디아다. 포브스는 "구글이 엔비디아의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라며 "구글은 자체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고객사에 TPU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자체 생태계에 붙잡아두며 확장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개최한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연설중인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출처=구글

바둑계에서 은퇴하는 알파고의 목표는 '메타 설루션'이다. 딥마인드의 본래 목적도 '바둑 프로'로 인간을 재패하는 데 있지 않았다. 이들은 추후 의료, IT, 과학 분야 등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갈 예정이다.

허사비스 CEO는 27일(현지시간) "앞으로 AI는 인류가 새로운 지시영역을 개척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이라며 “특히 범용 AI가 의학·공학 등 이공계 연구자들에게 최적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딥마인드는 이미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인 NHS와 협약을 맺고 AI로 환자의 치료와 진단 속도를 단축하는 기술을 시험 중이다. 입원한 환자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AI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료진에게 바로 알려주는 앱인 '스트림스'도 출시했다.

딥마인드는 "스트림스 덕분에 병원 간호사들이 매일 2시간 이상의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글은 자사 데이터센터 발열을 줄이는 냉방 전력을 AI를 써서 40%나 아끼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