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모씨(47세, 강원도 홍천 거주)가 사채업자 정씨에게 돈을 빌린 건 지난 2014년 12월 초의 일이다. 신 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해서 상환중에 있었다. 그는 “내일모레면 나이가 쉰인데, 홀어머니와 형님 집에 사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고 말했다.

조그만 한 집이라도 마련하려고 돈을 융통하려 했지만 개인회생으로 채무조정 중인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 줄 곳은 없었다.

신씨는 같은 처지에 있는 유 모씨의 소개로 정 모씨를 알게 됐다. 개인회생 중에 있는 유씨도 급할 때 정 씨에게 돈을 빌렸다고 했다.

정 씨를 찾아갔을 때, 그는 공증인가 법률사무소 안에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신씨는 기억했다.  그에게 빌리려 했던 돈은 250만원이었다. 빌리려는 돈에 대해 합의를 하고 그가 실제로 건네 받은 돈은 230만원이었다. 20만원은 공증수수료라며 정씨가 뺐다.

신씨는 공증수수료가 과다하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정 씨는 원래 그렇다고만 할 뿐 `싫으면 그만 두자`고 말하며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실제 공증증서의 수수료는 200만원까지는 1만1000원이고, 500만원까지는 2만2000원에 불과하다.

아쉬운 쪽은 신씨였다. 정씨는 통장으로 송금해 달라는 신씨의 요청에도 부득불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이자는 매월 20만원씩 지급하고 원금 상환기간은 1년이었다. 현금을 받는 자리에서 신씨는 정씨에게 인감증명서를 건넸고, 정씨가 내미는 서류에 인감도장을 찍었다.

정씨가 계속 무엇인가를 쓰라고 강요할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정씨가 불러주는 대로 썼다. 신씨가 쓴 것은 별도의 지불각서였다. 이 각서는 신씨가 빌린 돈이 550만원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빌린 돈만 갚으면 된다고 신씨는 생각했다.

▲ 신씨가 정씨의 요구대로 작성한 지불각서,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신씨는 정씨를 소개해 준 유씨로부터 한 곳을 더 소개받아 또 250만원 빌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의 집을 얻었다.

집을 얻어 독립한 후, 신씨는 첫 달 이자 20만원을 갚았지만, 그 다음 달부터 이자를 내지 못했다. 개인회생 상환금과 월세 그리고 생활비를 쓰고 나니 이자 낼 돈이 부족했던 것.

며칠후 다니던 직장의 인사과 여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직장으로 급여압류통지서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압류된 금액이 2000만원이었다. 

실제로 빌린 돈 250만원, 아니 수수료 명목으로 공제하면 235만원을 받았을 뿐인데, 압류된 금액이 2000만원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신씨는 압류통지서를 통해 정씨가 금전소비대차 공정증서라는 것을 이용해 압류 신청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신씨는 압류을 결정한 법원에 문의했지만, 법원 직원은 돈을 다 갚았다는 사실을 서류로 증빙하지 않으면 압류는 풀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2000만원을 갚지 않으면 압류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신씨는 이렇게 압류가 된 채로 2년 동안 돈이 생길 때마다 이자를 갚아왔다. 신씨가 정씨에게 돈을 빌릴 때만 해도 신씨의 급여는 150만원이었다. 그 사이 신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급여도 호봉제로 바뀌면서 약 250만원의 급여를 받지만 15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압류돼 정씨가 챙겨가는 상황이다.

신씨는 민생연대에 찾아와 상황을 털어놓고서야 정씨가 아주 유명한 사채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 잡는 공정증서

정씨가 신씨의 급여를 압류하면서 사용한 공정증서란 무엇일까. 신씨는 정씨에게 돈을 빌리면서 공정증서를 쓴 적은 없다고 말했지만, 신씨가 정씨에게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주는 바람에 사실상 공정증서를 대리로 작성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채권자가 내미는 백지 위임장에 인감도장을 찍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면, 채권자는 금전소비대차계약이나 약속어음에 마음대로 금액을 넣을 수 있다. 이 증서를 공증받으면 이른바 ‘공정(한) 증서’로서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 정씨가 부풀려 작성한 금전소비대차 공정증서, 사진=이코노믹 리뷰 양인정 기자

판결이 확정되면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소송을 하는 이유는 판결을 받아 강제집행을 하기 위한 것이다. 

신씨처럼 돈을 빌리면서 공정증서를 작성하면 별도로 번잡한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급여압류와 같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법원은 채권자가 제출한 압류신청서에 약속어음 또는 금전소비대차 공정증서만 첨부되어 있으면 곧바로 압류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공정증서가 정씨와 같은 사채업자들에게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행 공정증서 제도는 채무자가 인감증명서와 도장을 주면 채권자가 실제로 빌려간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과다한 금액을 기재한 후 압류를 진행하면 구제방법이 없다.

물론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절차가 매우 복잡해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윤준석 변호사(김박 법률사무소)는 "이런 공증서류에 이의를 하는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이미 압류가 들어온 상태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채무자가 매우 당황스러워한다"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압류를 풀어 달라고 해야 하는데, 이 경우 채권자가 청구한 금액만큼 법원에 현금을 맡겨놔야(공탁)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불법 사채를 쓴 바람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채무자들을 돕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의 송태경 사무처장은 “정씨는 공정증서의 이런 허점을 악용, 급전이 필요한 채무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공정증서를 이용해 압류를 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라며 “정씨로 인해 자살한 채무자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공정증서 제도 개선시급해...일본은 입금내역 첨부시켜

불법사채업자들이 악용하는 공정증서에 근거한 압류는 그 문제점이 크지만 변호사업계의 주 수입원이라는 점 때문에 제도 개선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공정증서를 작성할 때, 실제로 빌린 돈을 입금한 내역을 첨부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채권자 공정증서로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할 때, 법원은 결정을 내리기 앞서 채권자와 채무자를 불러 권리관계를 살펴볼 기회를 준다. 채권자가 공정증서만 첨부되어 있으면 무조건 압류 결정을 내려주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더욱이 신씨의 경우처럼 우리나라는 법적 허가를 받아 공증 업무를 하는 공증사무소에 사채업자가 책상을 내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옆자리에서 변호사가 금전소비대차계약서에 공증을 해준다. 신씨가 내민 공증사무실 명함에는 `서울검찰청소속 임명공증인 OO 공증합동사무소`라는 곳이었다. 서울 중구 무교동에 번듯하게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급여가 압류된후 신씨의 노모는 아들걱정을 하다 돌아가셨다며 신씨는 눈시울을 적셨다.

사채업자 정씨는 명백히 대부업법을 위반한 범죄인이다. 현행 대부업법은 등록한 대부업자의 경우 이자가 연27.9%를 넘을 수 없고, 미등록업자인 경우 연25%를 넘을 수 없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이하의 벌금형이다. 또한 정씨가 대부업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개인 간의 금전거래는 이자제한법상 연 30%를 초과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1년이하 징역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정씨의 경우 지난 2014년 12월 1에 235만원을 신씨에게 빌려주고 월 20만원을 이자로 받았기에, 연 102%의 이자로 폭리를 취하려 했다.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윤 변호사는 정씨가 소송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정씨가 실제로 빌려준 돈 보다 많은 금액으로 법원을 속여 압류결정을 받아냈다는 것.

하지만 정씨는 노회하고 음흉한 인물이라고 송 처장은 기억해냈다. 처음부터 신씨에게 각서를 부풀려 쓰게 하고 현금거래를 함으로써, 실제 오간 내역을 증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송 처장은 정씨에게 당한 채무자가 정씨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했다가 오히려 무고로 처벌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정씨를 상대로 노량진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정 씨에게 돈을 빌리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이를 증언해주겠다고 한데 용기를 얻었다. 신씨는 정씨와 자신간 통화 내용도 녹음해 증거로 제출했다.  일본처럼 입금내역을 첨부하도록 하는 등 공증 제도의 문제점을 바로 잡는 노력은 관계당국이 나서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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