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방식이 더욱 세밀하고 다양화되고 있다. 특히 지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취급 제품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유통사와 제조사가 전략적으로 맞손을 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통 경쟁사로 생각되는 곳을 견제하고 멀리하기 마련이지만, 요즘은 이와 같은 영업 방식은 시대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통한다. ‘공유 경제 시대’라는 말이 유통가에도 적용되는 듯, 기업들은 파트너십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살아갈 방향을 도모하고 있는 모습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대형마트가 제조업체와 손잡고 자사 브랜드인 PB(Private Brand) 또는 PL(Private Label)을 선보이면서, 가격과 품질 면에서 모두 앞선 자사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차별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통채널과 제조사가 협력해 점점 까다로운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붙잡기 위한 유통가 전략이기도 하다.

대형마트 PB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은 2007년 신세계 이마트가 ‘가격혁명’을 전면에 내세워 PL상품 사업에 전략을 쏟으면서부터다. 이후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가 합세해 PB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편의점에서 도시락 등 간편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PB제품을 선보이면서, 최근 몇 년 사이 편의점 역시 가장 활발하게 PB 관련 제품을 선보이는 유통채널로 급부상했다.

PB에서 조금 더 진화된 개념으로 ‘회사 대 회사’가 소비자의 욕구를 분석해 기획과 유통, 판매와 같은 전략을 처음부터 함께 실행하는 기업 제휴 파트너십인 JBP(Joint Business Plan) 역시 주목된다.

JBP가 PB와 다른 것은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개발단계부터 협력해 제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협력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기존 PB의 경우 개별 상품단위의 협력이라면, JBP는 유통사와 제조사가 처음부터 파악한 소비자 취향 등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에 활용하는 것이다.

JBP는 상품 경쟁력 강화는 물론 제조업체에 다양한 상품의 유통구조를 만들어 주고 소비자에게는 좋은 상품을 공급한다. 이를 통해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거품 비용을 최소화하고 상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강점 역시 가졌다.

기업들의 공동 전략 JBP로 세분화

▲ 이베이코리아는 밀 인터내셔널과 JBP 업무제휴를 통해 다양한 가전을 보다 저렴하게 단독으로 선보인 바 있다. 출처: 이베이코리아
▲ 11번가와 남양유업은 JBP 협약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보다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출처: 11번가
▲ 이마트 자체 브랜드인 피코크가 AK플라자에 입점해서 판매되고 있다. 출처: 이마트

과거 유통사가 제조사와 협력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유통사 브랜드 이름을 딴 PB제품을 판매했다면, 이제는 기업과 기업이 만나 다양한 제품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제품과 이에 맞는 이벤트 등을 활용하는 JBP 사례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JBP가 성립된 사례는 2008년 1월 이마트와 풀무원이 손을 잡으면서부터다. 대형할인점 이마트가 제조사인 풀무원과 상품개발에서 판매 단계까지 제휴를 확대키로 협의, 제조사는 제품을 제조·공급하고 유통사는 판매하는 단순한 구조에서 이마트와 풀무원이 제품화 초기 단계부터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객의 취향 같은 회사의 중요한 정보를 두 회사가 서로 공유하는 것이 당시 유통환경의 큰 변화로 꼽혔다.

JBP는 유통사와 제조사가 회사 차원의 포괄적인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새로운 상생의 모델로, 2000년대 후반부터 오프라인 대형 유통사들 중심으로 확대됐고 최근에는 온라인 기반 유통사들이 이 같은 제휴에 집중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베이코리아의 경우 2015년 옥션이 한국존슨앤드존슨과 JBP를 체결하고, 유아상품군을 대폭 강화했다. 두 기업 간의 JBP 체결을 통해 한국존슨앤드존슨의 육아정보 사이트인 ‘베이비센터 코리아’를 활용, 옥션 육아 전용 멤버십 서비스인 베이비플러스(Baby+)와 연동해 다양한 육아 콘텐츠 및 프로모션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해외 브랜드 가전과의 전략적 제휴도 눈에 띈다. 이베이코리아는 2016년 11월 노르웨이 대표 가전 브랜드인 ‘밀 인터내셔널’(MILL INTERNATIONAL)과 JBP를 체결했다. 양사는 협약을 통해 밀(MILL) 브랜드의 신제품 국내 출시, 한국형 개량상품 개발과 생산을 위한 상호 협력, 고객 중심의 마케팅 인프라 구축 및 활성화 등을 추진하기로 협의했다. 이를 통해 G마켓·옥션·G9에서는 밀의 기존 인기 제품은 물론 한국형 맞춤 상품을 새로 개발하는 등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10월에 선보였던 밀의 주력 모델 2종 단독 패키지는 물론 이를 기념해 모든 제품을 20%할인된 가격에 선보여 고객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실제로 G마켓과 옥션에서 판매된 밀 전기컨벡터의 경우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5개월 동안 18억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

G마켓과 옥션은 2016년 아모레퍼시픽과 JBP체결,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제품을 폭넓고 다양하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아모레퍼시픽의 단독 구성 상품, 묶음배송 서비스 스마트배송 등 공동 마케팅에도 주력하며, 실제로 온라인 전용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 예로 이베이코리아가 운영 중인 큐레이션 종합쇼핑몰 G9는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뷰티박스’를 마련해 준비한 수량을 모두 완판하기도 했다.

백민석 이베이코리아 마트실 실장은 “온라인을 통해 생필품은 물론 식품 등 다양한 제품들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조사와 마케팅 제휴를 통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날로 까다로워지는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JPB 제품 개발에 힘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SK플래닛은 남양유업과의 JBP 체결을 통해 올해 ‘공동 마케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첫 번째 프로모션으로 남양유업 인기상품들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남양유업 브랜드위크’를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스틱분유 신상품 체험팩을 온·오프라인 통틀어 11번가에서 제일 먼저 론칭하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상반기 내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분유와 커피 등을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로열티 고객층을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여, 보다 탄탄한 충성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5월에는 롯데푸드와의 JBP 체결을 맺었다. 이를 통해 분유, HMR, 우유, 선물세트 등 롯데푸드의 전용상품 및 차별화된 프로모션을 11번가 채널을 통해서만 고객들이 만나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11번가 측은 이와 같은 유력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단독상품 확보, 특가상품 개발, 신제품 선론칭, 정기 프로모션 등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제조사 역시 온라인 판매채널 확보를 통해 매출 견인에 힘을 보탤 수 있어,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박준영 SK플래닛 MP사업부문 MD본부장은 “유통업계 내 치열한 가격·상품 경쟁 속에서 11번가는 지난해부터 제조사와의 직접적 제휴를 통해 상품 측면에서의 리더십을 확보해 왔다”면서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신규상품 출시와 단독 프로모션 등을 통해 고객감동을 위한 차별화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위메프는 제조업체 하림과 JBP를 체결해, 기존에 취급하던 하림의 상품 종류 20여개에서 협력 이후 100여개로 5배나 늘렸다. 그 결과 지난 3월 기준 하림 취급고는 작년 12월 대비 574%(6배) 증가했다.

냉장냉동 닭고기 외에도 추가적인 가공식품인 용가리 너겟, 텐더, 핫도그, 닭만두, 핫도그, 볶음밥 등으로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하림 신제품 개발 시 상품 테스트, 품평회 등 실시하고 있어 소비자의 기호에도 적절히 잘 맞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JBP는 PB를 보완하는 형태라고 하지만, 유통사와 특정 제조업체 간 결속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제휴사가 아닌 나머지 업체들은 판매 채널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유통사가 대부분 리딩 업체와 JBP를 맺기 때문에 하위 업체들에게는 기회가 덜 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소비자, 제조, 유통이 상생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략적 제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언이다.

경쟁사 채널에 자리 까는 기업들

경쟁사로 볼 수 있는 동종업계 채널 입점도 마다하지 않는 게 불황에 대처하는 유통가의 또 다른 전략 중 하나다. 이마트의 경우 2016년부터 대표 PL상품인 피코크를 타 유통사와 협력해 외부 유통채널에 공급하고 있다. 2016년 3월 쿠팡을 시작으로 16년 상반기에는 SK플래닛 시럽, 카카오, 롯데홈쇼핑, 하반기에는 옥션, G마켓, 11번가, NS홈쇼핑에 피코크를 선보인 바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이마트가 롯데홈쇼핑에서 판매한 ‘피코크 조선호텔김치(9㎏/4만9900원)’의 경우 방송 1시간 만에 준비 물량인 5000개가 완판돼 약 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7년 3월에는 업계 최초로 신세계 이외 오프라인 매장인 AK플라자에서도 피코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AK플라자 관계자는 “간편 가공식품도 하나의 종류로서 고객들이 제품을 구매할 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라면서 “현재 분당점에서 판매하는 피코크 매출은 기존 목표 대비 100% 달성하는 등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마트 측은 “통상 기존 PL상품은 다른 유통업체와의 차별성을 위해 경쟁사에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국내 간판 식품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방침에 따라 이를 깼다”고 설명했다.

기존 유통 대기업들의 오픈마켓 입점도 주목된다. 대체로 백화점들이 입점에 적극적인데, 롯데백화점은 2011년 7월 G마켓과 옥션을 시작으로 오픈마켓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인터파크, 11번가, 네이버 쇼핑에 순차적으로 입점했다. 위메프와 티몬에서도 롯데백화점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2012년 4월 11번가를 시작으로 네이버쇼핑, G마켓, 옥션, 등에 입점해 있으며, 신세계백화점은 2015년 후반기부터 주요 오픈마켓 입점에 들어갔다. 대형마트 중에서는 홈플러스가 2014년 11번가와 손을 잡은 이후 G마켓, 옥션 등에서도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이 경쟁을 해야 할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이유는 온라인몰 방문 고객을 늘리기 위해서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몰의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이용자가 많은 오픈마켓과 손을 잡아 단기간 내 방문객 수를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존 오프라인 강자들에게 온라인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유통채널이자 오픈마켓 입점으로 단기간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고객을 자사의 온라온몰로 유입하는 것에는 큰 강점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온라인 시장의 강자인 오픈마켓의 지위만 더욱 상승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 유통 관계자는 “이미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소비 환경에서 자사의 온라인몰이 방문객 유입을 위해 오픈마켓 입점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오프라인 업체들도 당장은 오픈마켓 입점을 통해 효과를 보고 있지만, 향후를 위해 외부 입점과 자체 채널 경쟁력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채널 경계가 허물어진 개방의 시대에서 유통 기업들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기업 간의 ‘투명한 목표’와 ‘진정한 협의’가 이루어져야 적과의 동침에서도 둘 다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다. 중요한 전략은 경쟁사에게 들키지 않고 자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폐쇄형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유통사와 제조사가 협력을 통해 노하우 공유는 물론 두 회사가 원하는 목표 설정과 이에 대한 진정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모두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열린 협업’으로 신 성장 동력을 모색하는 게, 해외 대형 유통사들과의 경쟁까지 예고되는 무한경쟁 시대에서 최대한 많은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으로 보인다.

 

[미니박스] 월마트와 P&G의 JBP 성공 사례

월마트는 헤어, 면도기, 칫솔, 생리대 등 전 세계 어디에서도 잘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를 가진 P&G를 전략적 파트너로 삼았다. 두 회사는 상호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기업 간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교환하기 위한 표준화 시스템인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 등을 이용해 상호간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고객의 동향을 쉽게 파악하고 물류를 개선함에 따라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능률을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월마트는 납품물량을 선점할 수 있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받았으며, 지속적인 소비자 마케팅 연구를 통한 P&G의 마케팅 역량을 활용해 더 많은 소비자를 마트로 유입할 수 있게 했다. P&G는 월마트와의 전략적 계약을 통해 글로벌 납품물량 규모를 미리 확정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월마트 내에서 경쟁사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아울러 두 회사의 전략적인 동맹 관계를 통해 월마트는 배송센터를 재고 담당 물류센터에서 수송기지로 변모시켰고, 연간 재고 회전수가 2배 이상 증가하는 효과를 얻었다. P&G는 이를 통해 세일즈맨의 영업 활동을 줄일 수 있었고 모든 매장에서 동일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해 소비자의 신뢰도 역시 높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