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지난 15일 서울회생법원에서 열린 파산관재인 세미나, 파산관재인은 법원이 뽑은 파산 탐정(?) 이다. 판사를 대신해 파산 신청지 또는 면책 신청자의 신청 서류를 토대로 자산의 실제유무와 은닉재산, 편파변제한 재산들을 찾아내고 환가(현금으로 바꾸는 일) 등을 하는 탐정이다. 원래 직업은 변호사. 채권자 입장이지만 딱한 채무자를 만나면 어느틈에 채무자의 응원군이 되기도 한다.

이번 세미나에선 박범진 파산관재인(변호사)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사채업자와 함께 소규모 마트를 양도양수 하는 과정에서 대출을 끌어당긴후 현금을 은닉하고  대출채무를 면책받으려 파산신청한 채무자의 사례다.

마트 인수후 매출 급증...상호 바꾼뒤 다시 매각

채무자 조 모씨는 2016년 초에 서울회생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그녀의 파산신청은 한 마트를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2008년부터 마트 판매원으로 일했다. 조씨의 진술서에 의하면 2014년 6월경, 조씨는 김 모씨의 부탁을 받고 J마트를 인수하는데 명의를 빌려줬다고 한다.

인수에 필요한 마트 임대차보증금은 최 모씨로부터 빌렸다고 진술했다. 이 때문인지 임대차계약서에는 최씨가 공동 임차인으로 기재되었다. 또 ‘계약기간 만료 시 최씨의 입회하에 보증금을 반환한다’고 기재됐다. 채무자 조씨는 J마트 인수 후 약 6개월 후 L마트로 상호를 변경했다.

마트를 인수한 2014년 6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달간 매출액은 약 1억 4000만원이었고, 이후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무려 약 13억원에 이르렀다. 다음 해인 2015년 1월부터 3월까지 매출도 약 1억원을 넘었다.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조씨는 L마트를 양도했다.

조씨는 L마트를 양도한 후 마트를 운영하면서 생긴 금융권 대출 채무금과 물품을 공급한 도매업자들의 상품대금 채무를 면책해 달라며 법원에 파산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무렵 조씨의 남편은 서울시 영등포 대림동에 D청과물마트를 설립하고 L마트와 같은 업종 영업을 했다.

잘 되는 마트 왜 넘겼을까

진술서를 받아든 박 관재인의 의심은 `마트를 왜 또 팔았지?`에서 시작됐다.

파산 신청인 조씨가 면담을 하러 왔을 때 그녀는 말이 없었다. 신청서에 기재된 거주지와 실제로 사는 곳도 달랐다. 박 관재인은 이때 직감적으로 뭔가 숨기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가 제출한 파산신청서에는 수많은 도매상이 채권자로 기재되어 있다. 체납된 세금도 수천만원이다.

"마트 인수하고서 바로 대출받으셨는데, 사용처도 말씀 못 하시고..."고 박 관재인이 캐묻자, 조씨 대신 그녀의 남편이 나섰다.

그녀는 처음부터 항상 남편을 대동해서 관재인 면담에 응했다. 그가 회계에 꽤 밝은 사람 같았다. 

박 관재인은 L마트(변경 전 상호 J마트)의 주거래 통장 거래내역서도 살폈다. 거래 내역 여기저기에서 빈번하게 조씨의 남편 이름으로 출금이 됐다. 특히 고객이 카드로 결제한 후 입금되는 돈은 그 즉시로 인출됐다.

이 부분을 수상히 여겨 캐물으니, 일수 사채를 썼으며 즉시 결제된 돈들은 사채 상환금이었다는 답을 얻어냈다. 

조씨는 임대차 계약서에 나와있는 최모씨라는 공동 임차인이 누구인지를 물어도 도통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박 관재인은 공동 임차인으로 기재된 최모씨라는 사람이 마트 보증금을 대준 사채업자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마트 인수 사례는 전 마트 주인으로부터 임차권을 승계한 후 대출을 받아 최대한 현금을 융통라고 이를 다시 팔고 나가는 것을 반복합니다” 박 관재인의 말에 다른 관재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매출이 급증한 것은 대출을 가급적 많이 받기 위한 것이었다. 파산 관재인들은 이를 ‘마트 떳다방’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공동 임차인에 사채업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처럼 수상한 마트에는 사채업자의 자금이 들어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마트를 인수한 후 물건을 대량으로 입고하고, 곧바로 세일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일 판매를 통해 현금을 융통하고 그 일부를 사채업자에게 상환하는 구조인거죠.”  물건을 대량으로 납품해 준 도매업자들은 나중에 물품대금을 받을 길이 없다.

“매출은 갑자기 늘어나고 외형상으로 세일 물건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많은 고객을 보여주면서 사정을 모르는 또다른 인수자에게 다시 마트를 팝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마트는 많은 물품대금 채무와 체납된 세금이 있는 깡통 마트입니다”

관재인들의 눈에 이같은 마트의 처분이 사기죄 구성요건이 될 수 있다.  사실은 가치가 없는 사업장을 가치가 있는 것처럼 속여 양도했다는 것.

세미나 주재가인 홍현필 파산관재인은 “그럼 이 사안에서 채무자는 무엇을 감춘 것이고 이익을 본 사람이 누굽니까”라며 주제를 던졌다.

“우선 마트를 수단으로 대출받은 현금과 물품의 판매대금을 은닉했고, 이후 마트를 팔면서 받은 양도대금을 은닉했습니다.” 박 관재인은 답한다. 박 관재인은 채무자가 매출에 대한 세금도 내지 않아서 세금 상당의 이익도 얻었다고 덧붙였다.

마트를 운영한 채무자 부부의 수상한 점은 또 있었다.

“L마트의 자금 내역을 살펴보면 남편 명의의 입출금이 빈번한 점, 남편이 인근에 D청과물 마트를 운영하는 점 등으로 보아 L마트의 실질적인 운영자는 남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관재인은 “인근에 남편이 운영하는 D청과물 마트에는 처음에 조씨에게 이름을 빌려 달라고 했던 사람 김씨와 그의 아들이 근무하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의심이 가는 상황은 많았으나, 파산신청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남편의 설명은 조리와 근거가 없었다. 박 관재인은 채무자의 이런 사정을 고려해 면책을 허가하지 말라고 재판부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때론 재량으로 면책해 달라고 재판부에 의견 개진

박 관재인은 사안은 유사하지만, 면책을 허가하도록 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한 사례도 설명했다. 이명호 씨(가명)는 마트를 누군가와 공동으로 인수한 후 대출을 받은 다음 세금을 내지 않고 폐업처리를 한 채무자로 앞의 사례와 유사했다. 

박 관재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씨는 과거 마트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는데, 당시 마트를 운영하는 박애영 씨(가명)의 부탁으로 문제가 된 P마트를 인수했다.

박 관재인는 이씨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뇌병변 4급 장애인으로서 박씨에게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재판부에 면책을 허가해달라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박 관재인은 마트 운영을 하다가 악의적으로 파산한 신청인들의 특징을 몇 가지 나열했다.

우선, 신청인들 대부분이 마트 종업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청인들은 대부분 실질적으로 조종하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사업자등록 명의를 빌려준다. 여기에 마트 보증금을 마련할 때 사채업자가 개입해 사채를 빌려준후 나중에 마트 보증금은 사채업자가 받아간다.

두번째는, 마트를 인수할 때 실제로 마트 양도인에게 돈을 지급한 사실이 없고 기존 마트의 채무를 떠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마트의 운영 기간은 6개월 또는 1년 정도 매우 짧고, 영업 기간에 외상으로 물건을 산 다음 파산신청 때 물건을 대준 도매상들의 채권을 면책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뒤에서 실제로 조종한 이들은 이후 마트를 다시 팔기도 하는데, 이들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민형사 고소도 쉽지 않다고 박 관재인은 덧붙였다.

박 관재인은 다른 관재인들에게 “마트 운영자 중 파산을 신청한 자가 있는 경우에는 양도, 양수 경위 및 양도대금의 실제 수령 여부 , 마트 운영 기간을 면밀히 검토해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산, 빚 많다고 무조건 면책해 주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돼

파산신청의 목적은 채무를 면책받기 위한 것이지만, 채권자로선 재산상 손해를 보는 것이다. 채권자를 희생시키면서 채무자를 구제하는 것은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를 정상화시키는 공익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채무자의 진실한 설명과 법률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박 관재인은 “채무자가 신청 과정에서 파산절차의 업무경험이 없는 변호사사무실에서 마치 `이런 경우도 파산 후 면책이 된다`는 식으로 설명을 듣는 경우가 있다”라며 파산신청에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무엇보다 신청에 앞서 대리인에게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관재인은 신청인들이 파산신청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위해 서울회생법원 뉴스타트 상담센터를 이용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박 관재인은 또 “앞에 설명한 마트 파산의 사례에서 실제로 자신이 마트를 운영하지 않았지만, 이름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았다면 채권자 피해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라며 “이런 경우는 최악의 경우 채권자의 고소로 형사처분까지 받을 수 있는데, 이때에는 채무가 면책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