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는 원래 아이누 족의 땅이다.

그들은 사할린 전역과 쿠릴열도와 홋카이도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살면서 농경생활은 물론 수렵과 어로를 생활수단으로 구축하는 한편 캄차카 반도 남부에도 일부 존재하며 러시아와의 교역을 주도하였고, 일본 혼슈와도 교역을 하는 등 일찍부터 깨어있던 선진 문명을 갖고 있는 민족이었다.

그들은 원래 낙천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고,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민족이다 보니 소유의 개념이 없었다. 평화로운 삶을 살면서 넓은 자연을 즐기고 풍부한 자원을 고마워하면서 모든 것을 주어진 그대로 살아가는 민족이었다.

그들을 아이누 족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아이누'가 아이누어로 '인간'이라는 의미의 단어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자신은 사람이라는 존재를 말하기 위해서 ‘아이누’라고 스스로 지칭한 것이 아이누 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일본어로는 '에조(蝦夷)'라고 했는데, 이것은 홋카이도에 살면서 언어나 풍습이 다르고 일본의 중앙정권에 복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이민족을 차별하는 의미로 불렀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땅을 '에조치(蝦夷地)'라고 했으니 일본과는 완전히 별개 민족이고 다른 나라라는 것을 명시하는 말이다.

아이누 족은 별도의 문자는 없었지만 자신들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는 고유한 민족으로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는 물론 사할린의 주인이었다.

일본이 처음 아이누족의 땅인 에조치 즉, 홋카이도에 발을 붙인 것은 일본 열도가 다이묘(大名 :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영주 ; 일본 번의 번주)들의 군웅할거에 의해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소위 일본의 전국시대라고 부르는 센고쿠 시대(戦国時代)다. 그 당시 일본열도는 힘만 있으면 소나 개나 대장이 되던 시대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도 없이 그저 힘만 있으면 자신의 주군인 다이묘를 몰아내고 소위 센고쿠 다이묘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주군을 모시는 무사도는 사라진지 오래고 어느 놈이 힘이 센가가 중요한 시대였다.

열도에서의 그러한 권력 투쟁을 피해서 홋카이도 남부에 둥지를 튼 것이 바로 카키자키 가문이다. 자신들은 도저히 열도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기에 아직은 소유욕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는 아이누족과 일본 열도 사이에서 교역을 하다가 때를 보아서 그곳에 번이라도 하나 세울 수 있으면 번이라도 만들어서 다이묘로 성장해 보고 싶어서였다.

카키자키 가문은 자신들이 처음에 계획한 대로 15세기 중반 이후에 홋카이도의 남부인 에조치의 '도난(島南)'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누 족과 일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교역을 했다. 그러나 열도에서 전란을 피해서 홋카이도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아이누족과의 충돌을 야기할 소지도 그만큼 늘어갔으나, 대신 일본인들의 머릿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열도의 피난민들을 열심히 거둬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교역 도중에 발생한 아이누족과의 대립이 일어나고 다께다 노부히로가 아이누의 지도자 코샤마인을 죽임으로써 그 대립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로인해서 카키자키 가문은 에조치에서의 일정한 소유권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 소유권이라는 것이 아이누 족과의 교역권을 인정받는데 불과한 것으로 실제 차지한 영역은, 홋카이도 전체로 본다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오시마 반도의 남단을 차지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