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로 태어나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손에 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힘들게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지금도 여유 없는 삶은 여전하고 노후에 대한 걱정이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몇 해 전 출근길에 들은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족장이라 불리는 황정민 아나운서가 ‘오늘의 주제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라면서 사연을 소개했다. ‘아침 출근길이 너무 피곤한데, 어제 저녁으로 돌아가 일찍 잠들고 싶다’는 사연부터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으로 가서 많이 안아드리고 싶다’거나 ‘배우자와 결혼하기 전으로 되돌아가 더 멋진 프로포즈를 하고 싶다’는 등 다양한 사연들이 소개됐다.

타임머신 얘기면 당연히 복권이 제일 먼저 나오겠거니 했다.  주제를 듣는 순간 ‘로또 번호를 확인하고 딱 일주일 전으로 되돌아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방송국도 그런 사연은 걸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방송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는 것이 좋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 고등학교, 대학교, 첫 직장, 두 번째, 세 번째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어느 시점을 꼬집어 낼 수가 없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달라질 것이 있을까?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잠깐씩 멍 때린 적은 있지만 치열하게 살지 않은 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답을 결국 찾지 못했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되돌아간다고 한들 처음 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잘 할 자신은 없다.

 

회사는 소송 중, 나도 소송 중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세녹스가 판매금지 되고 소송이 계속되던 2004년쯤이었다. 월급도 많이 밀려 생활이 말이 아니었는데 구입한 집 앞에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심각한 일조권 침해가 우려됐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집 앞에 있던 기와집 4채를 허물고 9층짜리 나홀로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진행됐다. 대출 받아 어렵사리 빌라를 장만했는데, 5층이었다. 그 빌라의 다른 집들은 거실이 서쪽으로 앉혀져 있었는데, 우리 집만 동쪽이라 하루 종일 볕이 좋았다. 그런데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서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공사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며칠에 한 층씩 쑥쑥 올라갔다. 대번에 햇빛 한 자락 들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

회사일로 법정에 자주 가고 변호사도 만났지만, 송사는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 건축 전문가나 법률 전문가에게 어렵사리 자문을 구한 결과 승소해도 보상은 집값의 10% 이하였다. 변호사와 일조권 시뮬레이션 비용을 지불하면 남을 것도 없었다. 그래도 소송은 해야 했다.

순전히 비용 때문에 ‘건축공사 중지 가처분신청’ 소장을 혼자 작성했다. 관련 자료, 각종 법조문과 판례를 모았다. 구청에서 서류도 떼고, 헌법, 소방법, 건축관련법 등등 공부도 필요했다. 내 재산이 직접적으로 침해된 일이어서 틈을 쪼개가며 몰두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많은 분량의 소장을 작성했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방법상 진입로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로 너비 조건에서 실제 도로 너비가 좀 모자랐다. 이런 점들을 포함시켜 소장은 작성 했는데, 일조권 시뮬레이션이 문제였다.

최소 3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일조권연구기관 도움 없이도 인정될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하는 그 며칠 사이에도 두어 층이나 더 올라갔다. 모 대학부설연구소에서 싸게 해 준다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해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애 업은 엄마’ 사진으로 소송서 유리한 고지에

‘법에도 인정이 있다’는 말을 믿었다. 당시 큰 애가 첫 돌 전이어서 업고 다녔다. 도로 너비를 잴 때 애 업은 집사람의 모습까지 사진에 담았다. 빌라 담과 아파트 펜스까지 거리를 잴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장에 첨부할 사진들이었다. 가까이에서도 찍고 멀리서도 찍었다.

이웃 건물 옥상에서 아파트에 가려진 빌라사진도 찍고, 너비나 거리감 그리고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료도 사진으로 만들었다. 각 사진에는 애 업은 집사람이 보이도록 했다. 구구절절 글 보다 사진 몇 장이 더 큰 의미를 전달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완성한 소장을 마포에 있는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에 제출 했다. 떨려서 며칠 동안 잠도 못 잤다. 소장이 법적 요건은 갖췄는지, 판사는 읽어 보기나 할지, 변호사나 공인연구기관 참여 없이도 인정될 것인지 고민의 밤이 계속됐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등기우편이 배달됐다. ‘출두 명령서’였다. 나와 아파트 건축소장, 양측에게 송달됐다. 출두 명령서를 받고 보니 잘은 몰라도 소장 내용과 사진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이 받아들여진 데는 한시름 놓았으나 그 이후가 더 걱정이었다. 상대가 변호인을 대동하여 싸우자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불안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출두 명령서가 배달된 다음날 오전에 아파트 건축소장이 헐레벌떡 집으로 찾아왔다. 거실이며 방을 살펴보더니 ‘소장 요구대로 배상할테니 취하해 달라’고 사정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옆에 있던 집사람이 은근히 존경스런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배상한다는 마음이 바뀔까 싶어 단박에 오케이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잠깐 동안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배상 받는다 한들 집 공사를 전부 하기엔 부족했고, 그 방면엔 문외한이었다. 일단 찾아온 건축소장에게 커피를 한잔 대접하면서 속내를 털어놨다.

“소송을 제기한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 배상금을 받기 위해 소장을 내셨잖아요?”

“젖먹이 애도 있고, 햇빛이 들지않아 어두워진 내부 환경을 바꾸는 것이 목적입니다.”

건축에 방해하려는 생각은 없으며, 침해되는 문제점만 개선되면 배상금은 필요도 없다는 바람을 전했다.

“소장님께 개인적으로 찾아가 문제를 제기 했다면 아마 대화가 힘들 거라는 생각에 법의 힘을 빌렸습니다.”

 

적이 된 상황에서도 진심은 통한다

집 공사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는데, 그럴 바에는 ‘그쪽 아파트 공사를 하다가 짬 날 때 우리집도 공사를 해 준다면 비용도 줄이고 여러 모로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했다. 어차피 아파트 건축을 위해 대량으로 자재를 구입했을 것이니 작은 빌라 벽면 공사 추가 정도야 자재비, 인건비 해봐야 배상금보다 훨씬 적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건축소장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송은 다음날 취하됐다. 집 구조변경 공사도 말끔하게 진행됐다. 거실 반대쪽인 서쪽 벽을 뚫고, ‘ㄴ’ 형태의 부엌을 ‘l l’ 모양으로 구조변경을 했다. 모든 것을 새 자재로 설치했다.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이며 수납장 몇 개까지 더 만들어 줬다. 덕분에 그 빌라에서 앞 뒤로 베란다가 있는 유일한 집이 되었고 집값도 올랐다. 또, 뜯어낸 기존의 주방 가구들은 모두 동생네로 보냈다. 김해에서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던 동생네도 주방전체를 바꾸면서 집값이 올라간 것도 추가적인 이득이었다.  

살면서 뜻하지 않게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생긴다. 송사란게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한계에 다다랐기에 법적 판단에 기대는 것이다. 잘 모르고 고생도 덜기 위해 전문가에게 맡기게 된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얻은 것이 많았다. 당시 판사가 자료를 얼마나 봤는지 모르지만 법에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최소한의 눈과 귀는 있다고 믿게 됐다. 또 건축을 일부러 방해하고 상대 심기를 건드려 불편한 관계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서로 윈윈하는 방법으로 진심을 전달하면 적이 된 상황에서도 통할 것은 통한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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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멀게만 느껴지던 법도 알고 보면 멀리 있지 않다.

2. 궁하면 통한다. 고민하고 연구하고 방법을 찾아라.

3. 아무리 적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