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는 경영과 투자의 교집합이다. 투자시장에서 단 한 가지의 진리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것이지만 M&A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닌 비싸지도록 키우는, 즉 성장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M&A는 경영과 투자의 ‘싸게 산다’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법정관리는 당사자 기업에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업을 인수하려는 주체들에게는 그 대상이 일단 ‘싸다’는 조건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하림·삼라그룹, 법정관리 기업 M&A의 표본

STX그룹의 계열사였던 팬오션은 산업 호황기에 계약한 장기용선 선박에 대한 비용지불이 어려워지면서 지난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2015년 하림그룹에 인수되면서 모회사의 곡물유통업을 담당, 같은 해 7월 법정관리를 공식 종결했다.

놀라운 것은 바로 팬오션의 재무비율 변화에서 드러난다. 팬오션의 2013년 부채비율(부채/자본×100)은 무려 1925.7%였으나 이듬해 220.4%, 하림그룹에 편입된 2015년 말에는 회생채무 조기 변제 및 증자를 통해 77.4%로 급감해 해운업계에서 부채부담이 가장 적은 기업으로 거듭났다.

한편, 하림그룹이 팬오션을 인수한 후 ‘승자의 저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홍국 하림 회장은 ‘2015년 전경련 CEO 하계포럼’ 강연에 앞서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당시 팬오션 인수에 대해 자신했던 이유는 바로 ‘싼 가격’에 있었다. 여타 해운사들은 호황일 때, 비싼 값에 배를 빌려와 그 선박을 다 갖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이지만 법정관리를 통해 이를 전부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승자의 저주를 주장한 주체들은 하림그룹이 팬오션을 인수하는 데 쏟아 부은 1조원대의 자금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울러 하림그룹이 이 자금을 대부분 외부에서 충당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려가 우려를 낳았다. 이뿐만 아니라 하림그룹의 주력사인 하림(닭고기 가공업)이 2014년 전년 대비 적자전환하면서 팬오션과의 시너지효과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 회장이 바라보는 팬오션의 포인트는 여기서도 갈렸다. 김 회장은 당시 낮은 벌크운임지수(BDI)를 지적하며 곡물사업에 초점을 맞춘 반면, 승자의 저주를 언급하는 주체들은 닭고기 사업과 낮은 BDI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림의 국내 매출 가운데 35%는 곡물을 주원료로 하는 배합사료이며 주력사업인 축산분야도 곡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하림의 주력사업은 다름 아닌 곡물이다. 일반적으로 축산물의 생산원가는 가축비, 사료비, 사육비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사료비는 평균 50%를 상회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사료곡물 가격에서 해상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0~40%로 사료곡물 수입의존도가 90%가 넘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경우 해상운동비의 변동성을 통제할 수 있다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팬오션 인수 전 하림의 매출총이익률(매출총이익/매출액×100)은 2014년 15.4%에서 2015년 16.6%로 상승했으며 작년 말에는 19.0%까지 올랐다.

한편, 팬오션은 지난해 최악의 벌크업황을 경험한 이후 최근에는 시황이 바닥을 통과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오는 2019년부터 공급 완화에 기인한 운임상승이 기대되고 있다. 이에 반응하듯 최근 팬오션의 주가도 상승하면서 시장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팬오션은 벌크선 사선 58척과 용선 109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선 58척 중 27척은 향후 10~15년 동안 고정운임으로 계약을 수행하는 장기간연속항해계약(CVC)에 투입되고 있다. 이는 연간 4600억원 규모로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해 안정적인 수익창출에 기여 중이다. 31척의 사선과 용선은 CVC보다는 비교적 계약기간이 짧고 물량 톤수 기준으로 운임을 수취하는 장기물량운송계약(COA)과 화물 수송 수요가 있을 당시 운임이 정해지는 계약에 투입되고 있다.

팬오션 인수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 있다. 바로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이다. SM그룹은 팬오션 인수전 후보로 떠올랐으나 팬오션의 몸값이 오르자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SM그룹은 법정관리 기업을 대상으로 한 M&A에서 가장 선두에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라그룹은 지난 2004년 진덕산업(현 우방산업) 인수를 시작으로 그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건설업 외의 업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성장성은 있지만 자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던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M&A를 시도, 현재는 화학, 제조가공, 해운업체 등 다양한 산업에 진출해 그룹 전체의 시너지효과를 이뤄내고 있다.

SM그룹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남선알미늄, 티케이케미칼, 대한해운, 동아건설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기업들이 현재 SM그룹의 계열사들이다.

SM그룹이 놀라운 이유는 다양한 업종의 수많은 인수합병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100)을 꾸준히 높여왔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SM그룹의 영업이익률은 5.1%였으나 이듬해인 2006년에는 -3.7%로 반전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오히려 1%대를 회복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10%를 기록하는 등 가파른 성장을 했다.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와 SM그룹의 다양한 기업들에 대한 인수의 공통점은 법정관리 기업을 대상으로 ‘싸게 산다’는 투자의 진리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또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등 성공적인 M&A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투자와 경영을 동시에 충족했다.

법정관리 대상 기업이라 하면 ‘위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림과 SM그룹은 ‘위기’의 기업을 M&A의 대상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향후 이들의 행보를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