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치른 중간고사 결과는 참혹했다. 고교 시절까지 공부라면 나도 한가락 했다. 하지만 서울대에 들어온 수재들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아무리 벼락치기로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내 성적은 바닥을 깔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 당시는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이라 서울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학 내에는 ‘백골단(시위 진압시 하얀 헬멧을 써서 이렇게 불렸다)’이라 불리던 건장한 사복경찰이 캠퍼스 안에 좍 깔려 있었다. 학생들과 사복경찰이 진입로를 나란히 걸어 등교하고, 강의실에 함께 앉아 강의를 듣고(교수와 학생의 불온한 발언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하교할 때면 또 섞여서 교문 밖을 나서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범생이 서울대생들은 체격과 체력에 있어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백골단이 멀리서 달려오면 우리는 혼비백산해 도망가기에 바빴다. 주동자나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잡힌 사람은 무참히 밟히고 두들겨 맞고 끌려 갔다. 데모다운 데모 한번 못하니 그 분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내 시위에서 선후배들이 개 끌려 가듯 ‘달려가면(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들은 근처의 ‘녹두집’이나 ‘할미집’ 같은 학사주점에 모여 숫가락을 책상에 두들기며 ‘타는 목마름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을 목 터져라 부르곤 했다. 일종의 한풀이였다.

매일 같이 상황이 반복되니 제대로 공부했을 리가 없었다. 대충 고등학교 시절의 가락으로 전 날 밤을 새우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기숙사인 ‘관악사’에 살던 나는 중간고사 직전 불안한 마음에 주변 친구들에게 공부했는지 물어 보았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아니야, 공부 전혀 못 했어. 기본 실력으로 보아야 할 거 같아 걱정이야. F 나오면 어떡하냐?"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방 출신인 나는 순진하게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가 당한 것이었다. 하기야 내가 공부를 안 했으니 ‘당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하고 같이 ‘당한’ 친구가 옆 방에 있었다. 대구 출신인 수학과 친구도 역시 순진하게 친구들의 허풍에 당했다. 그 친구는 술 마시며 한탄했다.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

둘이서 만취 상태로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을 때 그 친구가 말했다.

"야, 갤러그나 한판 때리자"

▲ 출처=위키미디어

친구 따라 강남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 따라 갤러그였던 것이다. 갤러그는 1981년 남코에서 발매된 아케이드 게임이다. 한국에서는 갤러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원래는 '갤러가'라는 일본 게임이다. 은하계를 의미하는 '갤럭시'와 나방이란 뜻의 '蛾(가)'를 조합한 단어다.

오락실에서 처음 조우한 갤러그는 캠퍼스의 백골단에 당한 이상의 굴욕감과 패배감을 맛보게 했다. 우주 공간에 매달려 있다가 떼로 몰려와 미사일을 떨어뜨리거나, 가미카제식으로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 벌레들은 정말이지 나를 열 받게 했다. 때로 화면 아래로 사라질 듯 하다가 다시 솟구쳐 올라 나의 무기를 파괴하는 데는 할말을 잃을 정도였다. 벌레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벌의 모습인 자코, 나비인 고에이, 딱정벌레인 보스 갤러가가 차례로 하강해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당시 갤러그 한판 하는데 50원이었다. 그 때 자장면 가격이 400원이었으니 지금으로 계산하면 50원의 가치는 800원 정도된다. 1분, 2분에 800원이 사라지는 셈이다. 50원짜리 동전을 바꿔 넣고 또 넣다가 나중에는 아예 오락기 옆에 무더기로 쌓아 두고 오직 하늘에서 떨어지는 벌레들을 ‘제거’하는 데 몰두했다.

벌레들은 나에게 이미 백골단으로 투영돼 있었다. 그들을 물리치는 것이 나의 시대적 소명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오락실 주인이 빗자루를 들고 와서 나에게 나지막이 말을 던졌다.

"학생, 이제 문닫을 시간이야."

주인은 문 닫을 시간이 한참 넘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돈 쓰는 좋은 고객이라 오락실 주인이 내버려 두고 있었는지, 아니면 눈이 벌겋게 충혈될 정도로 몰두하는 것이 불쌍해 보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시간은 밤 12시를 넘고 있었고, 옆에 있어야 할 친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에게 갤러그는 한국의 민주화와 동격이 되었다. 갤러그 속 파리와의 전투는 백골단과의 전투를 의미했다. 나는 강의실이 아닌 오락실로 출근했다. 마치 고3 수험생 시절처럼 갤러그를 연구하고 벌레들의 움직임을 분석해 노트에 정리했다. 마치 소림사에서 수련하는 동자승 실력이 오르는 것처럼 클리어 하는 스테이지 숫자가 늘어갔다.

그로부터 3개월, 어느 날 여유롭게 갤러그 버튼을 두들기고 있는데 오락실 주인이 슬그머니 와서 한마디 했다.

"학생, 이제 그만 와도 되는 거 아닌가"

이제 더 이상 오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는 오락기 한 대를 오래 차지하고 앉아 돈은 투입하지 않고 계속 스테이지를 넘어가는 소위 ‘민폐’ 고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락실 밖으로 나오니 한여름의 햇살이 뜨거웠다. 매미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들려왔다.

"아, 이것으로 벌레와의 싸움은 막을 내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