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셔터스톡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그 대가로 자연스럽게 ‘화폐’를 지불한다. 누가 이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비트코인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시기다.

경제학계에서 주류로 통하는 케인즈학파와 통화주의학파는 경제 기사, 보고서 혹은 논문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비주류로 분류되는 오스트리아학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오스트리아학파의 얘기가 최근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이유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경기부양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이 좀처럼 빠르게 개선되지 않고 있음이 지목된다.

사실 오스트리아학파가 주장하는 내용은 세부적으로 볼 때, 학파 내에서도 많은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가 주장하는 주된 내용은 정부의 개입이 또 다른 위기를 낳을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좁혀진다. 정부의 노력으로도 경기회복이 더디다면 이 또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에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009년 발표한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금융제도’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경기변동이론으로 설명해야 할 의문 또는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경기변동의 특징은 경영상의 오류가 왜 한꺼번에 발생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부분의 기업이 경영을 잘해 적절한 이윤을 내고 있는 상태에서 경고도 없이 왜 갑자기 많은 기업이 손실을 입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많은 기업이 왜 갑자기 그들의 예측이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결론지어지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예를 들면 소비자의 기호가 바뀌더라도 모든 산업의 모든 기호가 동시에 변하는 경우는 없고 일부 산업의 변화마저도 갑자기 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따라서 거의 동일한 시점에서의 실패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본재산업의 변동성이 소비재산업의 변동성보다 크다는 점이다. 자본재산업은 소비재산업의 경우보다 경기활황기간에는 더 크게 확장하고 침체기간에는 더 크게 축소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경기활황기간에 언제나 화폐공급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침체기간에는 화폐공급이 감소한다. 물론 침체기간에 화폐공급이 감소하는 것은 언제나 발생하는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신용팽창, 경기변동 초래… 중앙은행 때문?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오스트리아학파인 머레이 라스바드는 경기변동의 원인을 재계(Business World)로 대출된 ‘신용팽창’(Credit Expansion)으로 정의한다. 신용팽창 개념은 화폐제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화폐제도는 크게 상품화폐제도와 지폐제도 또는 불환화폐제도로 나뉜다.

 

가짜 화폐증서로 이뤄진 자금을 순환신용(Circulating Credit)이라 부르며 이는 순수한 저축에서 오는 ‘저축된 자금’(Saved Fund)과 구별한다. 즉 신용팽창이란 신용수단의 증가 또는 순환신용의 증가를 지칭한다.이 중 상품화폐제도는 표준화폐제도이며 금과 은 등이 대표적이다. 상품화폐의 실제가치 또는 무게와 일치하는 정도까지 은행이 예금증서나 은행권을 발행하면 이는 진짜화폐증서(True Money Certifications)다. 만약 은행이 상품화폐의 실제 가치 또는 무게를 넘어서서 예금증서나 은행권을 발행한다면 그 초과분은 가짜화폐증서 또는 신용수단(Fiduciary Media)다.

여기서 한국경제원은 표준화폐(상품화폐)의 증가는 아무 문제가 없는지 여부에 의문을 제기한다. 라스바드 등은 상품화폐라도 금속류의 사용 목적이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그 상품화폐는 다른 용도의 쓰임새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경제가 성숙되고 그에 따라 상품화폐가 충분히 발달하고 나면 상품화폐 공급량은 더 이상의 증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물론 금속류의 산업용 목적을 위한 증가는 사회에 바람직한 것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러나 바네트와 블락(2004)은 상품화폐의 경우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결정되는 양이 적정화폐량이라고 주장했다. 화폐의 수요에 따라 화폐가치가 변하고, 그 결과 화폐의 공급이 증가 혹은 감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 시장원리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민간기업(금속 생산자)이 상품화폐의 발행자며 중앙은행은 없다.

그런데 상품화폐의 경우 적정한 상품화폐량을 초과해 발행된 신용수단을 신용팽창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상품화폐량의 증감은 경기변동과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바네트와 블락의 주장은 신용팽창이 경기변동을 초래한다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과 잘 일치한다.

따라서 지폐제도의 경우 상품화폐제도하에서와 같은 시장 자동조절 기능이 없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의 양에 대해 얼마를 적정한 공급량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적정한 공급량’은 알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오스트리아학파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 출처:셔터스톡

오스트리아학파의 입장에서 볼 때, 비트코인은 그들이 거부하는 중앙은행 그리고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차단하는 존재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기구는 없다. 각 사용자가 ‘채굴’(Mining)이라는 방식을 통해 마치 민간기업의 금속의 생산을 조절하는 방식과 유사성을 지닌다.

이러한 점에서 비트코인은 오스트리아학파를 계승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트코인 시스템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기구, 즉 중앙은행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 금융시스템은 각국 정부에 의해 화폐가 인정되고 중앙은행이 지대한 역할을 미친다. 따라서 이에 반하는 시스템을 지닌 비트코인을 하나의 화폐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누가 ‘화폐’를 결정했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가. 과거 금본위제를 떠나 현 신용본위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화폐 제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