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밀리미터의 혁신> 모리야마 히사코, 닛케이디자인 지음, 김윤경 옮김, 다산 4.0 펴냄

 

2003년 창업한 일본기업 ‘발뮤다’는 컴퓨터 주변기기 제조업체였다. 그런데, 금융위기로 도산 위기에 처한 이후 무명의 발뮤다는 가전업계에서 주목받는 혁신기업으로 탈바꿈했다. 2010년 4월 소비전력은 낮고 디자인은 뛰어난 선풍기 ‘그린팬’ 시리즈를 출시해 돌풍을 일으켰고,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해 난방이 가동되기까지의 시간을 크게 단축한 난방기 ‘스마트히터’와 성능이 압도적인 공기청정기 ‘에어엔진’을 내놓으며 일약 일본 유수의 가전제품 업체로 발돋움했다. 이 책은 발뮤다의 테라오 겐 대표를 집중조명한다. 그는 개발과 디자인을 직접 하는 경영자다.

책에는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될 내용들이 적지 않다. 이런 대목이 있다. ‘2003년 창업 후 그린팬을 만들기 전까지는 단순히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인지 아닌지가 제품 생산의 판단 기준이었다. 2008년 말 불황이 닥쳤을 때 깨달았다. 내가 이상적이라 여기며 만든 제품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결코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탁상용 스탠드 ‘에어라인’은 개발에 공을 많이 들였고, 디자인 완성도가 높았다. 그러나 비싼 개발비 때문에 사장인 나도 맘 편히 사기 힘든 비싼 제품이 돼버렸다. 이후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제품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정하는 대목도 의미가 있다. ‘전자제품 개발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생활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제품 개발은 1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편이 이미 해소된 선진국에서는 1단계 제조업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다음 단계로서 사용자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그런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애플이 성공한 이유도 바로 이 점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이 자기네 제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강조할 때, 애플은 ‘제품을 사용하며 느낄 수 있는 가치’를 내세우는 데 집중했다. 발뮤다 역시 애플과 마찬가지로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만족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기능이나 성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도구 같은 것이다.’

물론 제품의 디테일은 매우 중요하다. 사장이 직접 기획부터 생산과 출시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꼼꼼하게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테라오 겐 대표는 ‘에어엔진’을 만들 때 가장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 LED 라이트 불빛을 찾기 위해 0.1밀리미터 단위로 플라스틱 두께를 조절하며 실험했다. 전기 코드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만든 ‘그린팬 미니’는 제품 특성상 사용자의 피부에 맞닿을 일이 매우 많다. 디자인을 점검하면서 이 사실을 파악한 테라오 겐 대표는 공정을 한 단계 더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제품 전면의 덮개뿐만 아니라 배터리팩을 장착하는 바닥에 이르기까지 표면에 노출되는 모든 검정색 부품에 고무처럼 보들보들한 촉감이 느껴지도록 코팅하기로 한 것이다. 테라오 겐 대표는 “최종적인 품질 향상을 위한 점검이야말로 본래 경영자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단언한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일독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