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전쟁> 유태원 지음, 한빛비즈 펴냄

 

원자재 전쟁에 관한 서적들이 제법 나오고 있다. 대부분 국가와 기업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원자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들이다.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원유부터 귀금속과 비철금속, 곡물, 탄소배출권 등 자원을 둘러싼 국가와 국가, 국가와 기업, 기업과 기업 대결의 역사를 일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자재 전략 특히 최악의 위기를 탈출하는 전략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제시한다. 이 책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국내 전문가의 저술이란 점에서 그 조언에 더욱 설득력이 실린다.

기업들은 이미 원자재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사례를 보자. 2002년 1월, 포드는 자동차 핵심 부품에 사용되는 팔라듐 비축과 관련해 10억달러(약 1조1370억원)의 손실처리를 발표해 전 세계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1997년까지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던 팔라듐이 미국의 경제제재로 러시아가 공급을 중단하면서 가격이 4배 이상 폭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포드의 주가가 3분의 1로 폭락했다. 반면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영업비용의 최대 25%를 차지하고 있던 연료비의 변동성을 줄이는 투자 의사결정으로 2005년 한 해에만 9억달러(1조237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각국도 피아 구분 없이 원자재 전쟁을 벌여오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해체되기까지 발생한 자원전쟁은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 확보전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자원전쟁은 화석원료뿐만 아니라 곡물, 대체에너지 같은 다양한 자원의 개발과 금융시장 활용을 통한 경제력 확대 전쟁이다.

원자재 전쟁은 그 양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중국, 인도 등 자원 경쟁에 뒤처져 있던 자원 소비국가들이 원자재시장에 본격 뛰어들면서 소비국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과 자원부국인 중동국가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에너지시장은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었으나, 중국의 폭발적인 수요 확대와 대체에너지의 등장으로 시장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몰락은 전쟁의 생생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OPEC에서 원유가격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셰일가스 생산과 이라크 원유 수출 재개, WTI 수출 전망 등으로 한때 배럴당 140달러대까지 올랐던 원유 가격이 배럴당 30달러대까지 추락하자 재정적자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달러 연동 고정환율제, 즉 달러 페그제를 도입했던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지역 산유국들은 달러 페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국가 재정의 90%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걸프 지역 주요 산유국 입장에서는 향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자본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일본과 독일에 밀려 무역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던 시기에 자국 소비시장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금융기법을 동원해 해외 자원투자에 집중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올린 바 있다. 중국은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원자재시장에서 가격 협상력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자원전쟁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하고, 중국이나 인도처럼 거대한 소비시장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도 자원 확보를 위해 해외 광산 개발과 지분투자, 현지 농장 확보 등 다양한 실물투자를 펼쳐왔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자원전쟁을 단기적 정책으로,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급급했다. 이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키코 사태 때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전쟁에 임하는 전략의 부재다.

저자는 달러와 위안화라는 기축통화로 무장한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와 국내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고수익의 투자상품으로서가 아닌, 실물과 금융이 융합된 ‘헤지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의 전쟁은 절대 갑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이끌기보다는 상대방의 조건을 수용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을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 있는, 즉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헤지 전략’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란 주장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원자재 시장별 주요 특성과 가격 결정 요인, 리스크 관리 방안을 제시하고, 다양한 적용사례를 통해 전략의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