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전쟁의 영웅이자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반대한 올곧은 장군, 채명신 장군이 참여정부 출범의 주역인 이광재 前강원지사와 나눈 대화 중 한 대목이다(이광재 저,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나>에서).

“베트남전쟁 당시 장병들이 김치를 먹고 싶어 했다. 그런데 조국에서 온 김치 깡통 뚜껑을 따자 붉은 녹물이 나왔다. 기술이 없어서 녹이 슬었던 거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걸 안 먹으면 2주 뒤 일본 김치가 도착할 것이고, 김치 값은 일본 사람 손에 간다”고 했다. 그러자 장병들이 “녹물이라도 먹겠다. 고국의 부모형제에게 돈이 가게 해달라”고 했다. 장병도 나도 다 울었다. 박 대통령에게 이 사연을 적어 보냈다. 그러자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질 좋은 김치 통조림과 군화, 군복이 공수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애국심으로 일어선 민족이다.”

채 장군의 말씀처럼, 우리 민족에게 애국심은 각별한 감정이다. 항상 얻어터지면서 평화를 사랑한다고 자위했던 만큼, 애국심은 우리 내부의 상호비난을 피하기 위한 미덕이었을지 모른다. 우리 역사에서 흔치 않은 외국 원정 전쟁인 월남 전쟁. 당시의 애국심은 전쟁의 공포심을 덮기 위한 위장 심리전술이었을까. 남의 민족전쟁에 용병으로 출전, 목숨과 바꿔가며 달러를 챙겨야 했던 눈물 많은 민족의 자강론이기도 했을까.

월남전 한국군 초대사령관으로 용맹을 떨쳤던 채 장군이 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2017년의 애국심은 그때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민족 북한과의 대화 기록이 빛바래고 있는 상황, 이를 파고드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노림수를 최고 긴장감으로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채 장군의 간절했던 마음이 이 시대에도 통할 것 같다.

외부의 긴장은 고조되는데, 정작 챙겨야 할 것은 우리나라 지도자, 또는 오피니언 리더들 내부의 애국심이다. 국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라는 마음이 지역, 핏줄과 만나면서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지는 않은가. 애국심과 같은 연속선상에 있어야 할 애사심과 애향심, 애교심이 경력, 지연, 학연이라는 연줄 아래에 짓밟히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는 것이다.

수년 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권 도전을 하기 전에, 기자와 대화를 나눴다. 그때 기자는 “정치인들이 가장 애국적이며, 애국적이어야 하며, 그리고 앞으로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애국심을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추 의원이 크게 공감한 기억이 새롭다.

특히 정치권의 갈등도 애국심이라는 기준에서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나라보다 계파, 자신의 당을 앞세우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국가 공동체를 위한다는 마음 앞에, 계파의 이익을 버리고, 정파의 예봉도 깎아 타협과 협치의 정치로 나아가야 할 때다.

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월남 전쟁 중의 채명신 부대가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애국적인 정부가 되어주길 바란다.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국수주의를 강조하자는 뜻이 아니다. 새 정부에 참여하는 인사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자신의 출신지나 출신 학교를 위하는 것이나, 출신 신분을 위하려는 이들이 똬리를 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민간인 출신으로 정부에 들어가는 이들은 특히 더 신경 써야 한다. 정치인들이야 적어도 수십년 동안 나라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고민했고, 그 비전을 주민들로부터 표로 확인받으려 노력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민간인 출신들 중 이런 애국심에 기초해 국가 비전을 다듬어온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무조건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에 들어가기보다는, 스스로 국가관을 어떻게 무장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본 후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애국적인 정부가 되길 바란다. 더 이상 태극기가 국론을 가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정치 지도자가 애국심을 오해받기 때문이다. 이 정부에서는 그런 오해가 없도록 철저히 애국적인 결정을 내리는 정부이기를 바란다. 경제정책에서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서두를 게 아니라, 외교에서 남들이 내놓으니 우리도 내놓아야 한다고 하는 정부가 아니라, 우리 민족 공동체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선택하는 판단이 능사인 정부를 원한다.

어느 구호와 주장이라도 국가라는 공동체 앞에서 겸손해지는 그런 정부와 정치를 만드는 계기가 이 정부의 탄생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