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계수. 가계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다른 분야의 소비 여력이 줄어 삶의 질이 떨어진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가구 엥겔계수가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소득하위 10%에서는 역대 2분기 중 최고치를 찍었다. 식료품 물가가 급등한 탓이다. 고단해지는 살림살이로 등골 휘어진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려운 때일수록 잘 먹어야 극복할 힘도 나는 법이다. 한국인은 뭐니 뭐니 해도 ‘밥심’으로 산다. 우리 조상들도 그 밥심 하나로 5000년 역사를 이어왔다.
<이코노믹리뷰>는 이 땅의 민초들을 위한 건강하고 불끈불끈 힘이 솟는 밥상 차리기를 들여다봤다.

요즘 식사는 ‘빵심’으로 사는 이가 많다. 하지만 빵만으론 부대낀다. 왜냐고? 빵이나 떡은 먹어도 어쩐지 허전하고 갓 지은 뜨끈한 밥을 먹어야 든든한 것 같은 느낌은 한국인의 본능이 아닐까. 한식의 주인공은 밥, 다시 말해 쌀이다. 쌀은 주곡이면서 식생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밥심’은 한국인의 오랜 쌀밥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 같다면 쌀밥은 서운하겠다. 한국인에게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면서도 지천에 널린 다양한 먹을거리들과 젊은층의 경우엔 서구화된 식생활로 고마움을 충분히 인정받지도, 보살핌을 받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쌀은 남아도는데 안 먹는 세태다.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72.8kg. 99.2kg이던 1998년보다 30%가량 감소했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올해는 역대 최저치 71kg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쌀 소비 촉진에 나섰다. 농가를 살리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7월 밥상용 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쌀 가공 제품, 쌀을 활용한 요리법 등 쌀과 관련한 식생활 정보를 담은 온라인 ‘사이버 쌀박물관’(www.rice-museum.com)을 개설했다. 쌀 활용 레시피, 쌀 체험담을 공유하는 ‘투데이 米수다’ 게시판, 아침밥 먹기 서명운동 및 결식아동 돕기까지 연계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쌀다이어트 체험관’ 코너는 의학 전문가들이 마련한 밥 중심의 건강한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사이트 오픈 이후 방문자 수가 월 평균 2만3000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10~15%씩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사이버쌀박물관을 통해 올해는 5월부터 ‘대한민국 쌀 요리왕 선발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식량정책과 김선범 주무관은 “신세대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쌀 요리 레시피 개발로 젊은층의 쌀에 대한 인식 개선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장 완벽한 먹을거리는 ‘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이 입증한 ‘밥이 보약’

쌀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함유하고 있다. 밀가루와 같은 탄수화물 식품과 달리 혈당을 서서히 올렸다가 내려주며 섬유질이 풍부해 적게 먹어도 포만감이 오래 유지된다. 비만,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이유다. 또 한국인의 DNA(유전자)에는 조상 대대로 먹어온 쌀에 대한 기억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쌀은 내장에 부담을 주지 않을 뿐더러 알레르기 등의 거부 반응도 없다.

게다가 쌀 한 톨에는 3000톨의 생명이 응축돼 있고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섭취할 수 있다. 그야말로 몸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식재료인 셈이다. 밥을 잘 챙겨 먹는 것만으로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니 ‘밥이 보약’이란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빵에 비해 운동수행 능력을 증가시키고 고지혈을 억제하는 효능이 우수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국식품연구원 ‘쌀소비촉진 가공기술 산업화 연구단’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밥을 먹었을 때 운동 지속시간은 456±58.3초였으나 빵을 먹었을 경우 311±41.9초였다. 고지혈증이 걸린 햄스터에게 밥과 빵을 각각 8주간 먹인 후 혈중 지질 함량 등을 분석했더니 밥 섭취군에서 혈중 중성지방 및 총콜레스테롤, 저밀도 콜레스테롤 농도가 의미 있게 감소해 밥의 항고지혈 효과가 확인됐다.

하지만 이러한 쌀이 오히려 비만의 주범, 다이어트의 적으로 미움 받아온 게 현실. ‘밥이 부족해 살이 쪘다’ ‘살을 빼려면 배불리 먹는 밥 다이어트를 하라’는 의학전문가들의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릴 리 없다. 쌀의 놀라운 반전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됐다. 듀크대 의대는 70년째 ‘쌀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참가자들을 살펴보면 4주 만에 여성이 8.6kg, 남성이 13.6kg을 감량했다. 1년 뒤에도 참가자 중 68%가 감량한 체중을 유지했다.

일본의 동양의학 전문가 쓰지노 마사유키가 고안한 ‘쌀 다이어트 프로그램’. 쌀밥 중심으로 하루 세 끼를 식사하고 꼭꼭 씹어 먹기를 역설한다. 단순한 규칙만으로 살이 빠지고 만성피로 해소, 성인병 치료 등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 늘면서 일본에는 쌀 다이어트 열풍이 일어났다. 이에 힘입어 최근에는 기능성 쌀이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변형(GMO)이 아닌, 품종 개량으로 특수 성분을 강화시켰거나 기능 성분을 코팅한 쌀이다. 일반 쌀에 비해 섬유질을 3배 이상 함유한 다이어트 쌀, 칼슘과 철분·미네랄 함량이 높은 미네랄 쌀, 성장 및 대사 작용에 꼭 필요한 라이신을 다량 포함한 키 크고 머리 좋아지는 쌀 등이 나왔다.

맞벌이·싱글족 급증 즉석밥시장 폭발적 신장

# 언제부턴가 집에서 밥을 짓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남편과 자녀들의 야근과 저녁식사 약속이 잦아지면서다. 전업주부인 김인애(61)씨는 집에서 혼자 있을 때가 많아 굳이 밥을 하지 않는다. 괜히 식구 수대로 맞춰 해놓았다가 찬밥으로 남기 십상이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을 즉석밥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다.

#등산객에게 즉석밥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회사원 조수현(43)씨는 주말마다 떠나는 등산 여행에 꼭 즉석밥을 챙긴다. 끓는 물에 10분만 푹 담가 주면 갓 지은 따뜻한 밥맛을 볼 수 있어서다. 코펠에 밥을 하려면 아래는 타고 위는 설익고 참 난처한 경우가 많아 주로 라면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를 한방에 해결해 줬다.

즉석밥 마니아를 자청하는 기자.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거다. 따뜻하긴 하지만 구수한 밥 냄새를 느낄 수 없고 맛이 없어서다. 기존에는 밥 하면 전기밥솥으로 한 밥만 생각했었다. 이런 인식이 바뀐 계기는 1996년 즉석밥 제품인 CJ제일제당의 ‘햇반’이 처음 나오면서다.

위에 덮인 포장지를 약간 떼어 숨구멍을 만들고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되는 ‘초간단’ 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2005년 오뚜기가 ‘오뚜기밥’을, 2007년 동원F&B가 ‘쎈쿡’을 출시하면서 삼국지 대전이 펼쳐지고 있다.

올해 15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국내 즉석밥 시장이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즉석밥이 인기를 끄는 건 1~2인 가구·맞벌이 가정, 캠핑·등산족 등 아웃도어 인구 증가와 간편식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어릴 때부터 이용해 즉석밥에 대한 거부감 및 편견이 적어지면서 젊은 세대의 편입이 증가한 점도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장바구니 물가 인상으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점도 한 몫 한다. 즉석밥 1개 가격은 대략 1200~1300원 선. 대형마트에서 묶음으로 구입하면 1000원 안짝으로 더 싸다. 언제 어디서든 꺼내 2분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즉석밥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개성적인 이미지와 마케팅 전략을 앞세운 업체 간 차별화 경쟁이 두드러진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AC닐슨에 따르면 2010년 7월 기준 즉석밥 시장 점유율(판매량 기준)은 1위 CJ제일제당 59.3%, 2위 오뚜기 20.6%, 동원F&B 6.4% 순이다.


CJ제일제당은 당일 도정(현미의 껍질을 깎아 백미로 만드는 과정), 무균진공포장으로 ‘맛’있는 밥을 내세운다. 햇반 전담 연구팀, 쌀 관련 연구를 담당하는 CJ쌀가공센터 등 18년 간 투자한 연구개발(R&D)이 경쟁력이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정효영 선임연구원은 “당일 도정한 쌀로 신선도가 최상의 상태일 때 지은 게 차별화 된 밥맛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햇반은 올해 연간 매출 800억원에서 훌쩍 뛰어오른 10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오뚜기는 청정지역의 150m 지하 암반수를 사용해 훨씬 깨끗하고 맛있다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오뚜기밥은 2008년 1월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씨의 우주식으로 선정돼 맛과 품질, 기술의 우월성 등에서 소비자로부터 신뢰성을 인정받았다. 순수밥 제품 외에 자사의 노하우와 기술을 결합해 만든 다양한 소스와 짝을 이룬 덮밥, 리조또 제품을 선보이며 타사와 차별성을 두고 있다.

동원F&B의 쎈쿡은 3000기압 초고압 공법으로 찰기를 높여 밥맛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한다. 100% 쌀과 물로만 지었기 때문에 밥의 영양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집밥과 같은 구수한 밥 냄새를 구현했다. 역시 초고압 공법을 적용한 100% 발아현미밥을 개발했으며 업계 첫 간식용 즉석밥 ‘쎈쿡 맛있는 찰진약밥’도 선보였다. 쎈쿡의 올 예상 매출액은 지난해 대비 25% 성장한 110억원이다.

업계에 의하면 한국과 밥 문화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만 해도 즉석밥 시장 규모 600억엔 이상이 추정되는 만큼 국내외 성장 여력은 충분하다. 최근에는 햇반이 북미에 이어 중남미 시장의 중심교역국인 멕시코에도 진출, 올 한해 600만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층 전망이 밝다.쭦

가공식품 즉석밥 유해 논란은 기우

일반적으로 즉석밥은 물과 쌀로 밥을 짓고 장기 보존이 가능하도록 산소를 없애는 제습제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 자체로 밀봉해 버리는 것이다. 유통기한은 상온에서 6개월 정도. 쌀미강추출물을 넣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한때 유해 첨가물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쌀미강은 쌀을 찧을 때 나오는 가장 고운 속겨를 말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쌀미강추출물은 나쁜 미생물 발생을 방지하고 쌀을 더 하얗고 맛있게 보이는 역할을 한다”며 “쌀겨에서 나온 천연 추출물이므로 첨가물로 보기 어렵고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승현씨는 “즉석밥은 도정 후 바로 밥을 짓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가정밥보다 영양분이 살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며 “단지 포장 용기가 가열되면서 인체에 해를 주진 않는지에 대한 우려는 있다. 폴리프로필렌 재질이라면 플라스틱 용기와는 달리 60도에서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만들어져 해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쌀 다이어트’ 초 간단가이드 10계명

1. 하루 세 끼 식사는 반드시 밥을 먹는다.
2. 식사의 시작은 무조건 맨 먼저 밥을 한 술 뜨는 것이다.
3. 아침식사는 잠깐이라도 움직인 후에 한다.
4. 반찬은 한식 위주로 먹되, 밥을 더 많이 먹는다.
5. 치킨, 피자, 케이크 등 살찌는 음식은 밥을 먼저 조금 먹은 후에 손을 댄다.
6. 식사는 천천히. 한 입에 50~60번 정도 꼭꼭 씹어서 넘긴다.
7. 젓가락은 반찬을 집을 때만 들고 그 외에는 내려놓는다.
8. 술은 밥을 조금이라도 먹은 후 마신다.
9. 가급적 갓 찧은 쌀을 고집할 것. 양도 한 달 안에 다 소비할 수 있는 만큼 산다.
10. 백미보다는 현미를, 밀가루보다는 백미를 먹는다.

똑똑하게 쌀 고르기 Tip : 잘 여문 쌀은 쥐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든다. 윤기가 흐르고 투명하며 가루가 묻어나지 않는 것이 신선한 쌀이다. 부서진 쌀로 밥을 하면 단면에서 녹말이 흘러 나와 밥맛이 떨어지고 씻을 때 영양분이 많이 빠져나간다. 쌀을 고를 때는 싸라기가 많이 섞이지 않은 것을 고른다.

전희진 기자 h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