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는 문재인 후보의 보기 드문 완승·압승, 홍준표 후보의 선전, 안철수의 졸전으로 요약 정리할 수 있다.

문재인의 기록적인 완승

문재인 후보는 꼼꼼하고 차분한 선거전 준비로 완승을 이끌어냈다. 호남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본인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극복하고 진보 진영의 대동 단결을 이끌어내 선거전 내내 1위를 유지하며 압승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선거 구도에 지난 2012년 대선의 경험을 갖추고, 당과 외곽 지원 조직을 체계화해 일찌감치 선두로 치고 나갔다. 선거전 초기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고 경선 상대방들이 승복하지 않는 어려움도 겪었다.

두어 차례 분열·대립·갈등형 메시지 전략을 취했다가 지지율이 정체되는 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실기하지 않고 통합·화해·협력의 메시지로 전략을 수정해 지지율을 다시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진보 진영은 공격형 선거에는 능하지만 수비형 선거전에는 익숙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추미애 당 대표와 송영길 선대본부장을 중심으로 캠프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짜임새 있게 잘 움직여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실수 없는 체계적 캠프, 다른 후보에게는 매우 당황스런 장면이었다.

사전투표로 청년층이 투표에 대거 참여한 것도 승인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청년층의 절반 이상이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와 같은 지역 몰표에 가담하지 않은 것이다.

운도 좋았다. 보수 대표 주자로 꼽히던 반기문, 황교안이 차례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가 떠오르기까지는 시간적 공백이 있었고 보수표는 정처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보수표를 받은 안철수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시점이 가장 큰 위기였다. 언론도 안철수와의 양강 구도를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사드(THAAD) 배치로 선거 구도가 안보 정국으로 급변하고, 안철수가 TV토론에서 치명상을 입으면서 위기는 끝났다. 안철수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보수 표를 놓고 안철수와 홍준표가 제로섬 게임을 벌였고 최종적으로도 2, 3위는 완전히 보수표를 황금 분할했다.

이후로는 위기다운 위기도 없었다고 할 수 있는 완승이고 압승이었다. 득표율은 41%에 그쳤지만, 2위와 557만 표 차이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래 최대 차이였다. 진보 진영은 2007년 정동영의 531 표 차이 참패를 10년만에 설욕한 셈이다.

권역별로도 압도적인 승리다. 단독 과반 득표를 한 2012년 박근혜 후보도 서울, 광주, 전남·북 4개 시도에서 문재인 후보에 졌다. 2007년 MB는 광주, 전남·북 3개 시도에서 졌고, 과반 달성에도 실패했다. 문재인은 대구, 경남·북 세 시도를 제외한 전 권역 1위다.

결과적으로 문재인은 특정 지역의 몰표에 의존하지 않고 승리했다. 뿌리깊은 지역 정서를 허문 최초의 대통령인 셈이다. 그동안 문재인은 ‘노무현 비서실장’에 머물러 있었지만, 앞으로 진보 정권의 새로운 창업자로서 재평가될 것이다.

홍준표 전 지사의 선전

이번 대선의 구도는 크게 보면 <탄핵 찬성 vs. 탄핵 반대>다.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등 진보 후보는 물론 보수 후보인 유승민조차 탄핵 소추에 참여했다. 홍준표만 유일하게 탄핵 소추에 참여하지 않았고, 구여권 출신이다.

선거 바로 넉달 전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2%이상이 정권 교체에 찬성했고, ‘정권 교체에 공감 않는다’는 응답은 15.7%에 불과했다.(1월 15~16일,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조사) 구도 자체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선거였다. 게다가 바른정당의 창당과 조원진의 출마로 보수는 4분 5열된 상태였다.

홍준표는 성완종 사건 재판으로 본인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2월 말 뒤늦게 출마를 선언해 2위까지 올랐다. 흐트러진 보수 진영을 추슬러 선거전을 치렀지만, 사실상 혈혈 단신이었다. 막판 상승세는 선두 문재인 후보 진영을 긴장시킬 정도였다.

1위 후보인 문재인을 직접 공격하면서 박근혜 실패로 벙어리 냉가슴 신세로 전락한 보수층의 속을 풀어주었다. 거친 입담으로 비판도 많이 받았다. 메이저 후보로서는 유례없이, ‘서민 대통령’을 자처하며 지방 유세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대중 가요를 부른 것은 앞으로의 선거캠페인에 새로운 시도라 할만하다.

운도 따랐다. 김정남 암살, 미국의 THAAD 배치, 북한의 미사일 배치와 핵실험 등이 잇따르면서 안보 정국으로 선거 구도가 급변했다. 멀리 앞서가던 2위 안철수를 끌어내리고 근소한 차이지만 2위에 자리매김했다.

선거전 막판에는 탄핵에 참여했던 바른정당 의원 13명(하필이면 서양에서 불길한 수로 꼽는 13명일까?)이 자유한국당으로 귀환할 정도였다. 그러나 13명의 입당과 친박 징계 해제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고, 상승세가 꺾였다. 24%의 득표율만으로도 기적적인 성공, 보수 진영의 새로운 지도자감으로 떠올랐다.

홍준표에게 선전의 보상은 별로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당내 기반이 약해 당권을 장악하고 보수를 크게 통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재판, 거친 언사와 돼지발정제, 경남지사 사퇴 꼼수 등 개인적인 부정적 이슈등도 많다.

‘안철수 현상’의 종언

안철수는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본인의 고집으로 모두 놓쳤다. 방황하던 보수층의 지지로 문재인과 양강 구도를 이루는데 성공했지만, 홍준표에게 역전을 허용하고 3위로 전락했다. 품안에 날아든 새를 품지 못하고 날려 보낸 격이다. 두고두고 땅을 치게 되지 않을까?

호남 반문 정서에 의존하는 선거 전략은 한계가 있었다. 조직력 부족으로 분위기를 표로 연결할 수 없었다. ‘자강론’으로 포장된 유아독존적 사고방식으로 외부 세력과의 연대에 실기했다.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어떤 것이 안철수의 미래인지 제시하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온다’를 제외하면 콘텐츠의 절대 부족으로 과거형 캠페인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선거 과정에서 당연히 예상되는 가벼운 검증에도 쉽게 무너졌다. ‘MB아바타’ ‘갑철수’라는 공격이 그것이다. 과거 결단력 없이 주저하다가 얻은 ‘간철수’ 프레임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TV 토론의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4월 28일 TV토론 이후 “저는 말싸움은 잘못 합니다.”로 메시지를 바꿨는데, 유권자는 “저는 말싸움도 잘못 합니다”로 들었다.

운도 좋지 않았다. 일관성 없는 메시지로 정체성을 의심받았다. ‘확장성이 크다’고 주장했지만, 안보 정국에 접어들면서 보수와 진보 모두 떠나는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그나마 막판 뚜벅이 유세가 평가받아 21% 득표율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유일한 지역 기반인 호남 득표율도 30% 미만에 그쳤고, 권역별 1위 하나 없이 21% 득표로 3위로 전락했다. 호남 지역 국민의당 의원들은 거취를 깊이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는 예상 외의 3위 추락으로 당장 당 장악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의원직을 사퇴한 마당에 정치 복귀 타이밍을 언제로 잡을지도 확실치 않다.

정치 실험, 절반의 성공

유승민은 ‘배신의 정치’ 프레임으로 선거전 내내 고전했다. 정책 전문성을 내세운 TV토론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본고장인 대구에서조차 그의 지지율은 미미했다. 당내에서조차 여러 차례 완주를 제지할 정도로 어려운 싸움이었다.

막판 연이은 악재가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해 4위에 안착했다. 하나는 13명의 탈당과 자유한국당 복당 파문이다. 13명의 탈당 파문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유승민을 따르는 의원 머릿수는 줄었지만 지지율은 폭증했다.

다른 하나는 딸 유담 양의 성희롱 사건이었다. 감내하기 힘든 돌발 사건에도 불구하고 선거 운동에 끝까지 참여한 유담 양의 의연한 모습이 청년층의 표를 모았다.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그럼에도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을 수 없는 점은 어두운 그림자가 될 것이다.

심상정은 요즘 유행하는 ‘걸그러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선거전 막판, 안보 정국이 펼쳐졌지만 위축되지 않고 대응해 나간 점도 진보 정당의 큰 소득이다.

소속 정당의 특성상 당분간 국정 참여의 길은 제한될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41% 득표로 당선되고, 집권당이 과반수 의석에 못 미치는 현실에서 심상정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중 유세와 TV토론에서 모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박근혜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역할 공간이 확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