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성공의 복합체 같은 기업이다. 시가총액이 8000억달러를 넘는다. 원화로는 90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그런 애플도 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때로는 실패작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콘솔게임기 ‘피핀’, 디지털카메라 ‘퀵테이크’, 소형 PC ‘파워맥 G4 큐브’ 등. 심지어 왠지 냄새 날 것 같은 아이팟 전용 양말까지 만들었다.

▲ 출처=위키미디어

과거의 실패를 비웃으려고 들먹이는 게 아니다. 애플은 실패작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렇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이 탄생했다. 혁신의 애플이 됐다. 실패는 대개 치명적이지만 때로는 유용한 반면교사다. 실패를 피하고 싶거든 남의 실패 자산을 탐독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실패 사례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어떤 기업도 100년을 버티기는 참 어렵습니다. 특히 성공한 기업일수록 자신의 성공 경험에 도취돼 환경 변화에 둔감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100년 기업을 위해 다른 기업이 왜 실패했는가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작업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공 사례 분석보다 실패 사례 분석이 더 교훈적이고 가치 있습니다.”

역사엔 애플처럼 실패를 딛고 성공한 기업만 있지 않다. 반대로 영광의 세월을 뒤로 하고 철저히 무너져 폐업에 다다른 기업들이 있다. 만성 위기에 빠져 있는 기업들도 다수다. 위정현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이런 기업은 무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묵직한 교훈 그 자체다. 100년 기업은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앞서 실패한 기업이 남긴 유산을 곱씹으면 100년 기업을 향한 여정에서 구성원들이 똑같은 실책을 반복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영광의 시절’ 집착, 빅트렌드 놓치다

코닥은 이런 취지에 딱 들어맞는 기업이다. ‘필름명가’라 불리던 이 회사는 한때 필름시장을 독점하며 영광의 시절을 보냈다. 100년도 더 전인 1888년 문을 연 코닥은 그해 자동 스냅샷 카메라를 저렴하게 선보였다. 카메라라는 당시엔 생소한 물건을 대중에 보급하고 필름을 팔아 몸집을 키웠다. “당신은 찍기만 하세요.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시 코닥이 내건 카피라이트다.

▲ 출처=위키미디어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러던 코닥이 21세기 들어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급기야 경영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필름 사업을 접고 디지털카메라 사업부를 매각하는 데 이르렀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지만 기술을 묵힌 것이 중대한 실책이었다. 필름이 덜 팔릴까 봐 디지털카메라 사업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결국 20년 뒤 일본 카메라 회사들이 줄줄이 디지털카메라를 선보이면서 코닥의 입지가 좁아졌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점할 수 있었는데 안정을 추구하다가 낭패를 본 케이스다.

노키아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노키아는 코닥보다도 역사가 길다. 1865년 프레데릭 이데스탐이 설립했다. 당시엔 제지회사였으며 1898면 고무회사로 변신했다가 1912년 케이블·전자회사로 자리매김했다. 노키아의 전성기를 있게 한 휴대전화 사업은 1992년에 시작했다. 특히 ‘노키아 1011’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키면서 1999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사에 올랐다.

세계를 평정했던 노키아는 애플의 아이폰 쇼크에 직격탄을 맞았다. 2007년 아이폰 돌풍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노키아는 시대에 뒤처지게 됐다. 심비안 OS에 집착했지만 시장은 냉정했다.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가 심비안을 가뿐하게 밀쳐냈다. 노키아 월드가 빠른 속도로 괴사로 향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지나치게 관료화된 조직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들은 과거의 성공에 경도된 채 다가올 미래를 보지 못했다. 노키아는 2013년 휴대전화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팔고 네트워크 회사로 방향을 잡았으나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 출처=위키미디어

아직 100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모토로라의 실패도 유사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폴 갈빈은 1928년 직원 5명을 데리고 갈빈제조회사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모토로라의 시작점이다. 이 회사는 역사에 남을 최초의 제품을 다수 만들어냈다. 무전기, 삐삐, 휴대용 무선 텔레비전 등이 모토로라 작품이다. 최초의 휴대폰도 모토로라가 만들었다.

최고 전성기는 1990년대에 찾아왔다. 글로벌 무선통신 최강자로 군림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휴대폰 시장 점유율 절반을 가져갔다. 그러나 1999년에는 17%까지 추락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이폰 등장 이후엔 더 처참했다. 시장조사업체 로라그룹은 모토로라가 “전통에 집착하다 시장 흐름을 놓쳤다”며 “레이저의 성공이 모토로라 발목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현재 모토로라 휴대전화 사업부는 구글을 거쳐 레노버에 매각된 상태다.

▲ 출처=위키미디어

 

1400년 역사가 단숨에 무너진 까닭은

10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기업이 끝내 무너진 사례도 있다.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금강조가 그렇다. 백제인이 서기 578년에 세운 건축회사다. 일본 쇼토쿠태자가 오사카에 사천왕사(시텐노지)를 짓기 위해 백제로부터 초빙해온 목수 3명이 578년 만든 기업이다. 일본 기업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가족들이 대물림하며 이어온 기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목수 3명 중 한 사람인 금강중광의 후손들이 사천왕사 유지·보수와 나라의 호류지 건립, 주요 사찰 복원 등을 하면서 1400년 이상 가업을 이어왔다. 그런데 2005년 파산에 이르렀다. 거품경제 시기에 과도한 토지 구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강조는 결국 다른 기업에 넘겨졌다. 긴 역사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는 사례다.

글로벌에선 잘나가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고전한 회사도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월마트가 그렇다. 전 세계 210만여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거대 유통 공룡이다. 월마트는 어느 나라에서든 일관된 원칙을 적용한다. ‘언제나 낮은 가격(Every Day Low Price)’이라는 문구로 표현되는 저가 판매 정책이다. 소비자는 결국 싸게 파는 매장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경제상식에 기초한 경영전략이다.

이런 정책으로 글로벌 유통시장을 지배하던 월마트가 유일무이하게 실패한 사례가 있다. 바로 한국 시장 공략이다. 월마트는 1998년 프랑스의 할인 체인브랜드 한국 마크로를 인수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이듬해 강남 한복판에 월마트 한국 1호점이 들어섰다. 국내 대형마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월마트는 전형적인 미국식 창고형 매장을 지향하며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모든 비용을 줄였다. 따라서 서비스나 판촉 활동 수준은 국내 마트에 밀렸다.

아울러 주요 도시의 최고 입지에 이미 매장을 마련해둔 대형마트들에 월마트는 상대가 안 됐다. 월마트는 자신들이 정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한국 시장에서도 고집했지만 결과적으로 통하지 않았다. ‘현지화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결국 한국 진출 8년 만인 2006년 신세계이마트에 16개 점포를 매각하고 한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 출처=위키미디어

스타트업 부문에서는 리타워텍 사례가 흥미롭다. 2000년 하버드대 출신 김유신이 보일러 업체 파워텍을 인수해 리타워텍을 설립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모델의 시작이었다. 주식스압의 방식으로 거대한 기업 집단을 이뤘다. 시가총액이 2000년 1월 70억원에 불과했으나 8월 1조2000억원까지 불어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주가 부양을 위해 진행했던 해외 인수 합병 업체가 흔들리고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순식간에 붕괴해버렸다. 리타워텍의 주역들은 주가조작 혐의로 법정공방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리타워텍은 기발한 비즈니스 모델로 규모의 경제적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스타트업의 활로를 열어주고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현재 옐로모바일과 같은 국내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등장하면서 리타워텍의 부족한 면을 채우는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았다는 것”

한국 사회에선 실패가 감춰진다. 숨겨야 할 부끄러운 대상이다. 반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다수 기업들을 보면 실패를 대하는 공통된 자세가 발견된다. 실패를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일단 구글이 그렇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회장은 말했다. “구글은 실패를 칭찬하는 회사”라고. 구글의 한 직원이 덧붙여 “실패를 두려워해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전했다.

테슬라를 창업한 엘론 머스크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패는 하나의 옵션입니다. 만약 실패를 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엘론 머스크의 말이다. 역사상 가장 빨리 성장한 게임사로 불리는 슈퍼셀을 세운 일카 파나넨의 생각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실패를 안 하면 결국 모험을 안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1년 동안 실패보다 성공이 많았다면 실망하게 됩니다.”

오직 실패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 실패를 하더라도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관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혁신으로서 생존해야 하는 오늘의 시장환경에서 100년 기업이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