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의한 보궐선거로 선출되었기에 당선과 동시에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는 것이다.

이번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여러 면에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헌법을 유린한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혁명의 결과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뒤의 정부출범이라는 점을 유념할 부분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헌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동안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정당소속인 이명박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유신시대 이래의 공안통치의 상징이었다.

대면보고나 회의를 형식화하고 공식정부조직을 일방적 지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수첩’정부는 탄핵사태의 중대한 배경을 제공하였다. 민주공화체제의 근본인 공개정부와 책임정부 원칙을 무시한 ‘여왕식’ 통치의 결과는 공권력을 사유화하여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이었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국정농단을 탄핵이라는 헌법적 절차를 통해 종식시킨 것이 민주주의 회복의 동력이 되고 있다.

새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대통령은 민주공화국 행정권의 수반이다. 민주공화국은 반독재 정치체제, 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한 인권의 보장, 반독재와 인권의 기초인 사회적 평등의 실현을 핵심가치로 하는 정치공동체이다.

우선 ‘수첩여왕’ 대통령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독재적 권한남용의 폐습을 극복해야 한다.

헌법은 대통령을 행정권의 수반으로 설정하고 있지 유신대통령처럼 입법,행정,사법권을 초월하는 국정최고지도자로 설정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은 또 다른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와 협력하여 대선공약으로 제시된 정책의 법률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대통령은 보좌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한편 국정심의기관인 국무회의나 다양한 자문기관, 특히 여론수렴과정을 통해 숙의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특히 제왕적 권한남용의 수단이었던 권력기관의 분권화와 민주화에 집중해야 한다. 검찰, 경찰, 국정원의 개혁은 이들 권력기관이 탄핵사태의 원인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오랜 숙원과제였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이 공약한 만큼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 제왕적 대법원장에 의한 사법행정권의 독재를 혁파해서 견제적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개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민주공화국원리의 반독재정신은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과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근원적 해법이다.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 등 국민의 정치활동을 극단적으로 규제하는 정치관계법은 민주화이후에도 권위주의시대의 사회통제가 시민사회를 억압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국민의 정치적 자율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체제에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민대표들의 권한남용이 다반사가 되어 온 점을 볼 때 새 정부 제일의 과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개혁이어야 한다.

특히 국민대표성을 강화할 비례제 선거제로의 개혁과 정치권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획기적 지방분권을 개혁과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국이 요청하는 반독재정신을 제도화하기 위하여 제2의 민주화에 이를 정도로 견제적 민주주의를 확고히 하는 것이 적폐청산을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과제가 되어야 한다.

민주공화국 헌법은 또한 개인의 자율성에 입각한 인권의 보장에 철저할 것을 요청한다.

유전무죄,무전유죄로 상징되는 법집행의 자의성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적 자유의 근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할 때 또아리를 튼다. 특히, 인권사각지대에서 개인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부인받고 있는 소수자의 인권보장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물론 국가인권위와 같은 인권보장체제를 정비하는 것은 새정부와 전임정부가 헌법정신의 차원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공화국은 국민간의 사회적 연대와 정의를 구현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생활환경이나 노동조건에 신음하는 국민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구현할 수 없다. 일자리보장,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의 개선이 지난 대선에 뒤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주요한 쟁점이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극심한 경제사회적 양극화, 세계최고수준의 자살률, 저출산률, 노인빈곤률은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비춰주는 지표들이다. 새 정부는 무엇보다 헌법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교육, 노동, 사회보장, 환경 등에서 사회적 차별을 완화하고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 국가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재산과 권력이 사회적 신분이 되는 ‘신봉건체제’,‘갑질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주도해내어야 한다.

대통령 문재인이 반독재, 자유, 평등에 입각한 민주공화국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대통령직에 대한 분명한 이해이다.

대통령은 군주와 대별되는 공직이다. 군주가 세습되는 초월적 권위에 기초하여 권력을 인격화하는 지위를 가진다면 공화국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고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공복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공복의 지위는 유일한 최고국가권력이 아니라 국회 등 다른 국민대표기관과 동격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 모든 국사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능자라기보다는 헌법에 기초하여 구획된 국정과정이 체계적으로 운영된 결과 국정이 공화적으로 실현되도록 조정하는 조율자이다.

각 국정과제를 다양한 담당기관에게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한편 선택과 집중의 방침에 따라 효과적으로 국정을 수행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의욕만 앞서 개혁과제의 체계적 수행에 역행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더불어서 나아갈 때라야 개혁은 민주공화체제의 모세혈관을 따라 현실생활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민주공화국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입각하여 권력분립에 철저한 가운데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정치체제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보여주었던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 기득권의 독선과 소수자 배제, 개인의 무한경쟁과 사회의 무관심은 민주공화국이 극복해야할 현안들이다. 촛불혁명의 기운을 영양분 삼아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민주공화국 헌법정신에 투철한 정부로 시대적 소명을 다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