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영원을 꿈꾸고 지속가능성에 매료된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조차 영원불멸을 꿈꾸며 머나먼 곳까지 ‘복사’들을 파견해 불로장생을 원했으나 그 역시 흘러가는 시간의 틈에 스며든 모래와 같을 뿐이다.

하지만 개인의 틀을 넘어 강인한 신념과 의지는 결사체의 이름으로 영원을 노릴 수 있다. 이는 철학이자 관념이고 이념이자 불멸이면서 문화 그 자체다. 정치 및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논리이자 당연히 경제에도 접목이 가능하다. 우리가 백년기업을 꿈꾸며 진시황의 오래된 비원을 떠올리는 이유다.

▲ 진시황릉. 출처=위키디피아

그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17의 사전행사격인 IFA GPC(Global Press Conference) 2017이 지난 4월 24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가운데, 업계의 관심을 끄는 인물이 등장해 화제다. 바로 피터 노타 필립스 CEO다. 그는 IFA 2017 첫 기조연설자로 일찌감치 확정된 가운데, IFA GPC 2017에서 사물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헬스케어의 강점을 설파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소형가전의 초연결 인프라를 극적으로 공개했다.

피터 노타 필립스 CEO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몸담고 있는 필립스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에게 네덜란드의 필립스는 대중적으로 전자회사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올해 설립 126년을 맞이한 필릭스의 역사를 간단하게 ‘전자’ 하나로만 이해할 수 없다. 필립스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관통하는 묵직한 무게감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변신을 거듭한 선구자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891년 탄소 전구 제조업체로 출발한 필립스는 1927년 라디오, 1950년에는 TV까지 제조했다. 이어 1979년에는 콘텐트디스크 개발에 나서기도 했으며 1997년에는 DVD를 제작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자기업 필립스의 이미지는 당시에 만들어진 셈이다. 반전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2005년에는 의료영상정보 분야에서 세계 2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2006년 휴대전화 및 오디오 등 대부분의 사업을 구조조정하며 새로운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어 2012년에는 TV 사업에서 철수하고 2013년 로열필립스로 사명을 변경하는 한편 2016년, 조명사업부를 독립 법인으로 분리해 또 다른 모험에 나서고 있다.

필립스의 이러한 전방위적 변화는 시대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에서 나름의 방법론을 끊임없이 진화했기에 가능했다. 시대를 선도하며, 또는 따라가며 스스로를 융합의 최전선에 거침없이 노출했고, 이러한 방식이 125년 역사의 기업을 존속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현재 필립스는 전자를 버리고 완전한 ‘헬스케어 시장’의 강자로 비상하고 있다. 매년 매출에서 7%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비전을 날카롭게 다듬었던 그들의 저력이다.

부침은 있지만 일본의 닌텐도도 마찬가지다. 18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손에 의해 설립된 닌텐도는 ‘진인사대천명’ 즉 ‘운을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한다’는 사명으로 유명한 곳이다. 왜 사운을 하늘에 맡길까? 닌텐도의 시작이 바로 하나후다(花札)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통 화투를 생산하며 시작됐던, 도박제품 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닌텐도의 역사는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동의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1902년 일본 최초로 서양의 트럼프를 제작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1963년 러브호텔, 인스턴트 식품사업까지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운명일까. 닌텐도가 벌인 사업은 모조리 실패했으며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평범한 기업이었다면 여기서 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981년 전설의 비디오 게임 동키콩을 출시하며 대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이후 2000년대 초중반 위와 닌텐도 DS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지금도 닌텐도는 위기다. 모바일 게임의 등장으로 콘솔게임시장이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닌텐도는 닌텐도 스위치와 같은 신제품을 연이어 출시하는 한편, 자존심을 접고 다양한 모바일까지 진출하며 와신상담을 노리고 있다. 최대한 닌텐도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열 번 찍으면 나무는 넘어간다… 방법이 중요

십벌지목(十伐之木), 열 번 찍으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본 백년기업의 극적인 교집합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노력의 방향성이다.

냉정한 말이지만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다. 이는 방향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백년기업과 평범한 기업을 가르는 중요한 경계라고 볼 수 있다.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며 백년기업으로 향하는 길을 장인정신으로 개척하거나, 다양한 변화를 통해 스스로의 로드맵을 개척하는 것 모두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절묘한 운용의 묘를 통해 선이 굵지만 유연한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발견한 백년기업의 핵심 인사이트다. 여기에는 조직운영의 방식과 기업문화, 리더의 선구안 등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대어 볼 가치가 있다. 진화다. 지금까지의 백년기업들은, 우리가 살펴본 백년기업들은 대부분 근대의 경계에서 태어나 현재에 이르러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즉 이들은 원래 시장의 주인이었으며, 치열한 경쟁을 통해 현재에 이르러 미래를 설계할 자격을 가진 이들이다.

문제는 이들의 방법을 지금 시작하는 기업들, 특히 스타트업들이 동일하게 답습할 수 없다는 점이다. 1911년 시작된 IBM은 이미 1998년 2000개의 특허를 쓸어 담았으며 GE는 발명왕 에디슨의 손에서 처음부터 최강자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들 백년기업들은 기회의 시대를 적절하게 활용해 말 그대로 백년의 가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스타트업은 다르다. 스타트업들이 IBM과 GE처럼 행동하기에는 규모의 경제 차이에 따른 리스크와 힘의 절대량에서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침 지금은 초연결 시대이자 사용자 경험의 시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백년기업이 경함하지 못했던 영역이자, 현재의 스타트업들이 기민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엘도라도가 될 수 있다. 이미 준비된 시장은 없고 새로운 시장의 창출도 어렵다면, 변화하는 작은 시장을 중심으로 판을 키워 대체불가의 기업이 되는 것이 핵심이다.

아직은 수련 중이지만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등이 걸어가는 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상거래와 배달이라는 기존의 시장을 각각 전자상거래+배송의 사용자 경험과 모바일+배달이라는 시장으로 바꿔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된 초연결 인프라는 기존의 백년기업과 경쟁, 혹은 협력하면서 스스로의 독창적인 솔루션을 구비하고 있다.

▲ 엔리케 왕자가 주로 활동한 세우타. 출처=위키디피아

대항해시대, 백년기업으로

피터 노타 필립스 CEO가 등장했던, IFA 2017의 사전행사격인 IFA GPC(Global Press Conference) 2017은 포르투갈에서 열렸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엔리케 왕자라는 위대한 선구자가 존재했던 나라다. 그는 포르투갈이 해양대국이 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닦았으며 포르투갈식 범선인 캐라벨을 고안해 자국의 국경을 드넓은 바다로 확장했던 인물이다.

그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고난의 연속에서 비전을 찾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봉건사회가 몰락하고 절대왕정이 일어나며 격렬한 힘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15세기 중엽을 전후로 근동지방에서 발현한 오스만투르크가 팽창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베리아 반도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포르투갈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현재의 백년기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스타트업과 닮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알가르베 서남쪽 끝에 있는 사그레스 곶의 암석 지대에 연구소를 세우고 대양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후 무수한 탐험대를 보내 아프리카를 탐험했으며, 이는 곧 대항해시대를 여는 단초가 될 수 있었다.

엔리케 왕자의 성공은 항해기술의 발전 및 이를 가능하게 만든 피나는 연구와 시대적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 간절한 의지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레콩키스타를 통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시작한 현재의 스페인 세력, 나아가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엔리케 왕자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는 방법론을 보여줬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백년기업은 엔리케 왕자 인사이트를 참고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과 변화를 바탕으로 거인들이 차지하지 못한 시장을 재발견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함께 대항해시대를 열어 스스로를 중요한 위치에 올리는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행운이라도 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