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TV 드라마에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닥터 필(Dr. Phil)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TV쇼를 진행하는 심리학자인 필 맥그로우 박사의 과거 직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재판 컨설턴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재판 컨설턴트라는 생소한 직업은 언뜻 변호사들이 하는 것인가 싶지만 맥그로우 박사도 그렇고 드라마의 주인공도 변호사가 아닌 심리학 박사인 사람들이다.

재판을 컨설팅하는 데 변호사가 아닌 심리학 박사가 왜 필요할까 싶지만 미국의 재판제도에서 ‘배심원’이라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판례 중심의 미국 영미법 체계는 성문법 중심의 한국에서는 채택하지 않은 배심원제도가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민사사건의 경우 재판 당사자 중 한쪽의 청구가 있을 때 배심원이 참여하게 되는 반면, 형사사건의 경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배심원들이 참여하게 된다.

대부분은 법률과 전혀 상관없는 직종에 종사하던 평범한 시민인 배심원들은 자신들에게 제공되는 증거와 자료들을 토대로 논의와 토론을 거쳐서 피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언뜻 미국 법정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그렇다면 판사는 단순히 배심원들의 평결(Verdict)을 전달하는 사람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판사는 평결에 따라서 피고의 형량을 결정해서 양형을 선고한다.

그런데 죄의 유죄와 무죄 여부를 어떻게 보면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이 결정하게 되기 때문에 이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이끌기 위해 재판 컨설턴트가 등장하는 것이다.

검사와 변호사는 법의 논리로 정리된 내용으로 배심원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법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인 배심원들을 더 잘 설득하는 방법은 ‘이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재판 컨설턴트의 필요성이다.

법원에서는 12명의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야 평결이 이뤄지는데 배심원들을 선정하기 위해서 일단 예비 배심원들을 대상으로 검사와 피고의 변호사가 질문을 통해서 해당 사건에 대한 편견을 가졌거나 개인적인 이해가 얽혀 있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기피 절차를 통해서 최종 12명의 배심원단을 구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범죄를 저질렀다고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가 특정 인종이나 특정 종교의 사람인데 배심원 중에서 해당 인종이나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 공정한 재판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TV 드라마에서는 최면에 걸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청년의 재판에서 재판 컨설턴트가 총기를 소지한 사람들을 배심원으로 선택한다. 총기소지자들은 총기 사고가 났을 때 잘못은 사람에게 있지 총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최면을 건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고 도구로 전락한 이 청년은 무죄라는 변호인의 주장을 총기 소지 배심원들은 받아들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권위적이거나 정부와 관련된 사람들을 싫어하는 배심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그룹 CEO에게 정장 대신 캐주얼한 복장을 입혀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는 등 ‘사람’에게 호소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이끌어간다.

한국에서도 배심원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1월부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재판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많은 재판에서 배심원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재판의 경우에만 참여하며 이도 피고가 원치 않는 경우 배심원이 참여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의 경우 배심원의 평결이 구속력이 있는 데 반해 한국 배심원의 결정은 의견 제기일 뿐이지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도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뒤집는 선고를 하기도 한다. 재판에서 제시된 증거가 충분치 못하다고 판사가 판단하면 유죄 평결을 뒤집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