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이지만, 사실대로 알려지면 곤란해지는 일이 세상에 너무 많다. 때문에 알릴만한 것만 골라서 알리는 것이 한 방법이다. 그래서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라는 것이 ‘피알(PR)’이라는 농담 같은 말이 회자된다.

‘거짓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 ‘그런데, 사실은 사실을 얘기해도 안됩니다.’

‘말 할 수 없습니다.’ =  ‘예, 사실입니다.’

‘왜, 그런 걸 알고 싶어 하나요?’ =  ‘예, 사실입니다.’

‘꼭, 얘기 해 줘야 하나요?’ =  ‘예, 사실입니다.’

내가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할 때 강조하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한다. 거짓을 말해도 안되고, 사실을 말해도 안되고, 말 할 수 없다고 해도 안되고, 왜 그런 것을 묻냐고 따져도 안되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 할 것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가 M&A를 상당히 많이 했다. 잦은 기업 인수로 인해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계열사가 몇 개씩 늘어나 있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에 변화가 너무 많아서 그룹 홈페이지를 한번 업그레이드해서 정리할 기회를 본다는 것이 2년을 넘게 기다렸을 정도다.

 

간 보기, 넘겨 짚기에도 장난은 없다

언론에서도 회사의 동향을 항상 예의주시 하고 있었기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M&A와 관련해 섣부른 기사가 나가기라도 하면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사는 쪽은 싸게 사고자 하고 파는 쪽은 비싸게 팔고 싶은데, 중간에 진행과정이 외부로 알려지면 제대로 된 협상이 진행될 수 없어 그대로 덮어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2007년 1월말 즈음에 야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고 낯익은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사에 좋은 일 있더군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순간 머릿속으로는 온갖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지만 짚이는 것이 없었다. 내용을 그대로 순진하게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어떤 이슈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살살 유도했다. 그 당시 회사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괜찮은 회사 하나 인수했다고 들었어요.”

한참을 요리조리 몰고 다닌 끝에 단서를 포착했다. 그룹의 모기업이 아니라 계열사를 통해서 물류회사 하나를 인수하고자 추진 중이었는데, 거의 막바지 단계에서 노출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끊을 수는 없고 어디서 노출 되었고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몇 마디 더 주고 받는 과정에서 내가 정곡을 찔렀다.

“얘기 들어보니 이미 기사 다 써놓으셨고, 마지막 멘트 따려고 하시는 거군요.”

“이야, 역시 귀신이셔.”

“그럼 저도 보고하고 내용도 정리해야 하니 삼십 분만 시간을 주세요.”

바로 옆 동에 있던 계열사 기획실로 달려갔다. 마침 기획부장이 자리에 있었는데, 다짜고짜 물었다.

“혹시, 좀 전에 기자와 통화하셨나요?”

“아, 예, 전부터 좀 알던 기자와 간만에 통화를 했는데, 이미 내용을 알고 있어서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어요.”

바로 재무실로 달려가서 임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다행이 인수 협상도 끝났고 서류적인 절차가 남아 있긴 했지만 보도를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원래 며칠 뒤 보도할 예정이었으나, 그날 저녁으로 앞당겨 긴급 회의를 가졌다. ‘기왕에 노출 되는 거라면 차라리 정식으로 기사화 시키는 방향으로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전화한 그 기자와 해결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독점이나 특종, 지킬 건 지켜라

각 언론매체들은 특종이나 독점 보도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기사 제목 앞에 빨간 글씨로 ‘Exclusive’ 또는 ‘독점' 이라고 달아둔다. 기자에게는 너무나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존중해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전화를 걸었다.

“내용은 맞습니다.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만 계열사가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인데요? 들어 드려야죠.”

“제가 보도자료를 아직 경영진까지 컨펌 받은 상황이 아니라서요. 지금은 밤이 너무 늦어 곤란하니 내일 아침까지는 해결하겠습니다.”

“에이, 내일 아침에 먼저 자료 뿌리면 내 기사는 물 먹는 거잖아요.”

“그게 아닙니다. 기자님께서 내일 아침 일찍 기사를 올리시면 그 직후에 자료를 내겠습니다.”

웬만한 기자라면 그런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 자기가 최초로 취재해서 단독으로 보도를 하게 되는 입장인데, 회사에서 전 매체에 자료를 먼저 뿌려서 자신의 특종이 날아갈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수년간에 걸친 신뢰가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기자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을 줬다. 일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버는 것이 중요했다. 통화한 직후에 재무쪽과 경영진에 보고를 하고 다음날 기사화에 대한 확인도 받았다. 일찍 퇴근한 팀원들에게 상황을 전파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첫 새벽에 출근해서 전날 통화했던 기자에게 먼저 자료를 보냈다.

오전 8시반에 작지만 붉은 글씨로 ‘Exclusive’라는 표시를 단 기사가 뜬 직후에 바로 전 매체에 자료를 배포 했다. 그러자 거의 순식간에 여러 매체에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독점 기사를 쓴 기자는 간발의 차이로 독점권을 지키는 순간이었고, 다른 매체들은 그 기사보다는 약간의 시간 차는 있지만 늦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계열사 기획부장과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기자가 알고 전화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팀장님이 지레 겁을 먹고 다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아뇨, 인수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꺼냈는데요?”

“동물적 감각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기자는 그냥 별다른 일이 없던 저녁이라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참이었는데, 팀장님과 통화를 하면서 팀장님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인수 어쩌고’ 한 이야기가 수화기 너머로 얼핏 들려서 넘겨 짚은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팀장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기라도 한 것처럼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와 비슷한 사안들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의외로 기업의 비밀은 최고 경영진이나 기획 또는 재무 부서 같이 기업의 가장 안쪽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사를 쓸 생각은 아니라고 해서 얘기했는데’라거나 ‘내가 얘기한 것은 아주 조금 밖에 안 되는데’ 또는 ‘그냥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라며 의아해 한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파악해보면 사실 그 안에 해답은 다 있다.

여러 프로젝트들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대표이사가 있었다. 마침 호텔 로비에서 안면이 있는 기자를 만났는데, 기자가 ‘잘 되어 가시죠?’라고 인사를 해서 ‘예,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만 했는데, 그날 오후에 회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기사에 거론되면서 ‘회사는 잘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는 엄한 커뮤니케이션 팀장이 동네북처럼 닦달을 당했다.

언론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면 방법은 단 하나,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회사의 공식 채널인 커뮤니케이션 담당에게 넘겨야 한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복을 시키고자 하더라도 숙련된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면 말려들기 십상이다. 자기 딴에는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 위해 이야기 하면 할 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언제 어디서든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임직원이 공유해야 함은 물론이다.

-------------------------------------------------------------

1.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2. 언론 커뮤니케이션, 아무리 사소한 것도 전문 커뮤니케이터가 해야 한다.

3. 물 먹이지 말고, 지켜야 할 불문율은 반드시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