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갤럭시S8 광고 카피. 출처= 갤럭시S8 공식 홈페이지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선거 유세

삼성전자 갤럭시S8 광고 카피 “Unbox your Phone” 

“과자가 자기소개를 하면, 전 과자”라는 부장님의 아재개그  

유사한 측면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들 사례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언어를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의미 전달효과가 달라진다는, 즉 레토릭(Rhetoric, 修辭學)이 반영된 언어 행위라는 점이다.

레토릭은 다수에게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다. 그 속성상 정치 영역에 국한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나 사실 우리의 일상 언어행위에도 일어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특히 텍스트(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마케팅에서, 레토릭은 언어의 전략적 전달이 필요한 부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된다.

인류 역사와 레토릭 

레토릭(修辭學)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수많은 철학가들의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으로 대중을 설득하는 방식의 대화가 만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철학에 근거한 레토릭이 발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에 대해 “모든 주제에서 그 속에 내포된 설득의 가능성을 추출해내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들. 출처= 픽사베이

이후 18세기 이후 레토릭은 각 국가가 지닌 정치 이념(Ideologie)이 중요해짐에 따라 공동의 목표를 향한 국민의 일치된 행동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됐다.

이는 산업화 시대 부국(富國)을 목표로 한 긍정적 방향성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20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쟁을 부추기는 ‘선동’으로 활용되는 등 인류 역사의 크나큰 재앙을 불러오기도 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자신들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1934년에서 44년까지 약 10년 동안 진행한 뉘른베르크(Nuremberg) 전당대회는 선동 레토릭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의 대중 레토릭은 주로 정치 영역에서 각 정당이 가진 프레임을 국민들에게 제안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 선동 레토릭의 대표적인 사례,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연설. 출처= 유튜브

레토릭 마케팅

정치에서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말이나 글의 분량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오히려 너무 분량이 짧을 경우 정치적 신뢰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길이가 줄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마케팅에서의 레토릭은 이와 다르다. 

마케팅의 레토릭이 정치 영역의 적용방식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간결함’이다.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전달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얻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용은 가능한 줄이면서 효과를 높이는 것이 우선 과제다. 텍스트가 길어질수록 대중들이 내용을 잘 인식하고 그에 상응하는 효과가 발생한다면 일단 전달하려는 내용은 무조건 길어야 하겠지만, 마케팅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다. 즉 화려한 수사로 꾸며진 장문의 텍스트를 전달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마케팅에서 긴 텍스트는 비용의 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한 문장’ 정도의 텍스트가 마케팅에서는 선호되는 편이다. 

▲ 애플워치 신제품 광고 이미지. 출처= 애플 홈페이지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이 바로 미국의 IT업체 ‘애플’이다. 여기에는 간결한 디자인을 유독 강조했던 애플의 창업자 故 스티브 잡스의 제품 철학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매년 약 2~3가지 출시되는 애플의 신제품들의 광고들을 보면 텍스트는 ‘아주 길어야’ 한 문장이다. 그러나 제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해당 텍스트를 통해 충분하게 전달되고 소비자들의 브랜드 이해에도 크게 문제가 없다. 

이 밖에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그리고 “국물이 끝내줘요” 라는 한 문장의 광고 카피로 소비자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농심의 생생우동,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의 스낵 고래밥 등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TV 및 온라인 영상광고의 카피 그리고 언론 매체들이 보도로 전하는 헤드라인의 제목들도 마케팅이 레토릭을 활용하는 방법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흔히 ‘아재 개그’라 불리며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말장난도 일종의 레토릭이다. 말장난은 절대로 길지 않다. 단어 한 개의 조합이나 변형으로 원래 문장의 의미와 완전히 다른 의미 혹은 중의적 표현을 만들면서 메시지를 전달받는 대중들의 ‘예상치 못한’ 웃음을 자아내는 목적의 레토릭이다. 그래서 때로 아재 개그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에 대한 친근함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나 그 효과가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레토릭 마케팅의 부작용 

특징을 압축적 표현으로 강조하는 레토릭 마케팅은 매력적인 전달 방법인 만큼 부작용이 뒤따르기도 한다. 마케팅으로 멋지게 포장된 제품의 품질이나 브랜드의 수준이 소비자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이는 곧 제품을 생산한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돌아설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배터리 폭발 논란’에 휩싸였던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7였다. 애플의 아이폰을 능가하는 최고 스펙과 기능의 스마트폰임을 매력적인 레토릭 마케팅으로 강조했으나, 안전사항 문제로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에 큰 상처를 입었다. 제품이 매력적인 레토릭을 뒷받침할 만한 수준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오히려 브랜드에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실제 이행률이 떨어지는 정치인들의 공약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의미의 확장, 중요성은 커진다    

고대의 철학적 설득에서 정치 선동의 수단, 그리고 현재의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레토릭의 적용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박성창 교수는 “현대의 레토릭(수사학)은 고대의 수사학에서 말하는 3가지 장르(재판적/토론적/첨언적)에 국한되지 않고 광고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설득적 담론뿐 아니라 시와 같은 비설득적 담론까지 그 영역이 확대됐다”며 “미술·영화·영상매체, 광고 마케팅 들 예술의 영역까지 적용되고 있는 것은 레토릭의 의미가 점점 확장되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마케팅을 포함한 수많은 대중 커뮤니케이션에서 레토릭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영국인 칼럼니스트 샘 리스(Sam Leith)는 저서 <레토릭: 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을 통해  “전통적 대중매체와 함께 인터넷을 통한 상호 간 커뮤니케이션이 급증하고 있는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레토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라며 “인간은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감명을 주고 고무시키기 위해, 존경받고 정당화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며 개별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레토릭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