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企業). 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운용되는 자본의 조직 단위를 말한다. 의외로 역사가 길어 고대부터 시작된 경제 단위이자 이윤결사체다.

현재 기업은 근대를 지나며 일종의 사회적 규약을 바탕으로 인류의 발전과 비전을 뜻하는 패러다임으로 규정되었다. 이제 우리의 경제활동은 기업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궁극적 가치는 돈을 버는 것이다. 좋은 상품을 생산해 많은 소비자에게 팔아 이윤을 거두는 것. 하지만 그와 비례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연속성이다. 생존하고 존재해야만 이윤을 창출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초입에서 수많은 기업의 명멸을 바라보던 우리가, 새삼 백년기업을 생각하는 이유다.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서양은 동양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기업의 혁신을 체화했다. 그런 이유로 유럽 및 미국에는 백년기업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1883년 칼 벤츠(Carl Benz)의 손에 의해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신인 벤츠 엔 시에 공장이 설립되었고 1892년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A. 에디슨(Thomas A. Edison)이 만든 에디슨제너럴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과 톰슨휴스턴(Thomson-Houston)의 합병으로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이 탄생했다. 아직 대한민국은 조용한 동방의 나라 조선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이들 백년기업은 무수히 쓰러져 간 단명기업과 비교해 무엇이 특별했을까? 먼저 변화에 대한 의지와 지독한 장인정신이다. 일견 양립될 수 없는 가치의 충돌로 보이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핀란드의 노키아는 제지회사로 출발해 스마트폰, 네트워크 회사로 스스로를 변화시켰고 제너럴일렉트릭은 금융사업을 매각하며 소프트웨어 인프라 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자신들의 서비스와 상품에 대한 우직한 고민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시야, 끈질긴 생존본능도 있다. 원래 일본의 닌텐도는 화투나 트럼프를 만들던 교토의 전통기업이었으나, 1949년 야마우치 히로시가 장난감 전체로 시선을 돌리며 닌텐도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대가가 됐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시야와 흐름을 잡아내는 능력. 여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생존본능이 어우러진 단적인 사례다.

시대의 흐름과 운도 큰 역할을 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지던 산업혁명, 제국주의, 세계대전은 서구를 중심으로 백년기업의 가치를 더욱 강하게 끌어낼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서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백년기업의 등장과 궤를 함께 한다.

여기서 우리를 돌아보자. 조선 시대 영정조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상공업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는가 싶었지만,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안타깝게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 세월이 흘러, 다음 기회는 개화기에 찾아왔다. 1904년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는 내탕금을 하사하며 종로구 예지동 일대에 광장시장을 조성하도록 하며 상공업을 부흥,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기업의 시대를 노렸기 때문이다.

이후 일제의 수탈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들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897년 한성은행, 1899년 대한천일은행, 1905년 몽고식품이 문을 열었고 이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정권을 거치며 나름의 생존방식을 습득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기도 했다.

그래서 자문해야 한다. 해외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백년기업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를 우리의 상황에 접목하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기업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백년기업으로 가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무수한 질문이 허공을 돌며 알 수 없는 방황에 부르르 떨고 있다. 우리가 지금, 백년기업 인사이트를 조심스럽게 들춰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