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주세로 논란이 벌어져 눈길을 끕니다. 지엽적으로 본다면 스타트업의 솔루션을 둘러싼 해프닝이고,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스타트업 업계 특유의 사업성 논란과 연결됩니다.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주스를 짜는 착즙기와 유기농 야채를 반제품 형태로 판매하는 주세로라는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제품이 출시되었고, 일반 가정에서 일일히 유기농 주스를 만드는 번거러움을 걷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간단합니다. 과일과 유기농 야채가 들어간 팩과 착즙기를 팔고 있고, 팩은 정기적으로 배달이 된다고 합니다. 사용자는 착즙기를 구매한 상태에서 매일 배달되는 팩을 넣어 신선한 주스를 만드는 컨셉이라고 하네요. 그 과정에서 앱을 통해 신선도를 체크하거나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요.

사단은 블룸버그 기자가 주세로의 팩을 손으로 짜는 것이 착즙기로 즙을 짜내는 것보다 더 빨랐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참고로 주세로 홈페이지에 들어가니까 착즙기의 가격은 399달러라고 하네요. "이렇게 비싼데 손으로 짜는게 더 낫다? 이럴거면 팩이나 파세요!" 라는 것이 블룸버그의 지적입니다. 참고로 팩은 1개당 최대 10달러 수준.

핵심은 이겁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중 상당한 투자를 유치한 주세로라고? 근데 왜 고가의 착즙기가 필요하지? 손으로 짜는 것이 더 좋아! 이건 말이 않되잖아! 여기에 투자한 기업들은 도대체 뭐하는 것들이여! 어허! 통재라! 실리콘밸리가 총명함을 잃었구나!"
블룸버그의 지적은 맞는 말입니다. 399달러에 달하는 착즙기보다 손으로 짜는 것이 더 낫다면, 당연히 블룸버그의 지적이 맞죠. 주세로는 도의적 차원에서 그런 사실을 반드시 알렸어야 했습니다.

이런 주세로의 '쌩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투자가 단행되어 업계 사람들이 "어허! 통재라!"를 외치는 부분도 이해가 됩니다. 투자 아무나 하나요? 이렇게 막 돈 던지면 되나요? 테라노스의 공포가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에서 실리콘밸리의 '요상한 투자 분위기'를 질타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뭔가 뒷 맛이 씁쓸합니다. 분명 블룸버그의 지적은 맞는 말이지만 왠지 가슴 한 켠에는 이상한 씁쓸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 주세로 홈페이지. 출처=주세로

이유가 뭘까요. 사용자 경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종의 생태계를 창출해 개인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런 관점에서 주세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 물론 주세로의 착즙기는 비쌉니다. 심지어 손으로 짜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착즙기가 있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청소하지 않아도 되며 손으로 짜면서 힘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손으로 짜도 큰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요? 그 말도 맞아요. 그럼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바쁜 아침. 씻고 옷 입고 준비하는 상황에서 주방에서 팩을 쥐어짜고 싶으세요? 아니면 착즙기에 맡기고 세수라도 한 번 더 하겠어요? 호불호가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에요.

그래서 이런 결론이 가능합니다. 주세로는 일종의 생태계적 차원에서,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생태게적 차원에서 이해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비싼 착즙기는 분명 무리수가 맞아요. 하지만 무턱대고 이를 비판하고 비웃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앱과 연동되어 유통기한을 알려주고 다음에 살 팩을 고를 수 있는 것. 이건 나름의 비즈니스 모델이자 순전히 개인이 선택하고 확보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이니까요.

물론 다 필요없다? 손으로 짜는게 편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식으로만 상황을 판단하면 카카오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집 앞에 택시 맨날 대기하고 있어요. "카카오택시 왜 써? 집앞에 가면 택시 무조건 있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택시가 없을 수 있고, 단거리의 경우 택시가 거부할 수도 있잖아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카카오택시를 통해 목적지를 입력하고 콜을 받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목적지를 설명하거나 택시를 잡으려 기울이는 노력을 걷어내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기꺼이 카카오택시를 이용하죠.

아, 그건 무료지 않냐고요. 우리가 혁신의 대명사라고 말하는 아마존의 대시는 어때요? "버튼 누르면 기저귀가 온다고? 집안 미관 상 별로인 버튼을 달고 싶어? 그냥 집 앞에 사는 것이 좋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모두 다 선택의 문제. 사용자 경험의 문제. 그리고 생태계의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주세로 착즙기 비싸요. 손으로 짜는 것이 더 나아요. 앱 생태계 아직은 큰 메리트 없어요.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우리는 O2O, 온디맨드 사업 못 합니다. 배달앱 쓰지 않고 전화로 주문하면 중국집에서 쿠폰 더 줘요. 그런데 우리는 배달의민족이나 배달통, 요기요 쓰잖아요. 선택의 문제. 그리고 기업은 그걸 노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착즙기 비사니까 좀 적절하게...너희들이 왜 투자의 선택을 받았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증명해라. 이런 수준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손으로 짜는 것이 더 좋아. 이런 바보들'이라고 비웃기 전에, O2O와 온디맨드 생태계를 생각하자고요. 아, 잊으면 곤란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망해지는 것도 주세로의 선택이죠. 재밌지 않나요? 결국 다 선택이고, 선택이 되어지면 사용자 경험이 되는 거고 사업이 되는 겁니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논란에 잔뜩 비웃음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가장 경계하는 지점. 바로 약점은 있지만 이러한 생태계 전략을 전개하려는 기업들이 자신감을 잃는 부분입니다.특히 온디맨드 기업이 많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배달 대신해주고, 택시 대신 잡아줘도 서비스 할 수 있고 기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십시요. 다만 선택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우리를 매료시켜 보세요"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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