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가 신기록을 앞두고 있다. 기술주의 약진에 힘입어 코스피지수가 사상최고치(2228.96)를 넘어설지 주목된다.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의 호조는 한국증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갤럭시노트7’ 폭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수감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 사태’ 이후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 정책에 힘입은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주친화정책은 투자업계에서의 주주들 전략이 ‘주주행동주의’로 변화한 데 따른 것이다. 주주의 적극적인 경영참여가 삼성전자를 움직이고, 나아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한국증시가 주주행동주의를 적극 수용할 수 있을까.

‘대장주’ 삼성전자 활약에 코스피도 ‘상승’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난해 4월29일 124만원에 저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상승, 올해 5월2일 종가 기준 224만5000원을 기록했다. 1년새 무려 100만원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대장주의 활약으로 코스피 역시 덩달아 상승하는 모양새가 나타났다. 같은기간 코스피는 1994.15포인트에서 2219.67포인트로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2200대’를 돌파했다. 지난 2015년 8월 1800선을 찍은 이후 2000포인트 박스권 등락을 거듭해 ‘박스피’라 불리던 과거와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2일까지의 코스피 움직임(위)과 삼성전자 주가 움직임(출처=키움증권)

삼성전자의 선방은 예상 밖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고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에서의 문제가 발생하는 등 악재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9월 등기이사 자리에 올라섰다. 그 즈음에 갤럭시 노트7은 배터리 발열 문제로 인해 폭발, 전량 리콜했다. 최근 출시한 신제품 갤럭시S8 역시 화면에 붉은색 기운이 감도는 ‘붉은 액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인 최순실에게 400억원대의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올해 초 구속기소됐다. 금융투자업계는 삼성전자가 리더의 부재와 더불어 주력상품에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상승한 것에 대해 영업이익 개선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50조5500원, 영업이익 9조9000억원으로 전년동기(매출 49조7800억원, 영업이익 6억6800만원)대비 각각 1.5%, 48% 증가했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6.3조를 넘어섰다.

▲ 출처=삼성전자

한편, 이같은 수면 위로 드러난 이유와는 별개로 주가 상승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인은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주주친화정책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달 27일 삼성전자는 자사주 대량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총 4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할 방침이며, 이 가운데 40조원어치는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물량으로 내년까지 소각하는 것이다. 이번 소각은 전체 발행 주식 수의 13.3%에 해당한다. 자사주 매입은 수급측면에서, 자사주 소각은 한 주당 가치를 높이는 측면에서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앞서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할 때만해도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견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지주사 전환은 사실상 중단됐다는 신호를 보내게 된 셈이다.

지주사 전환의 정지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인적분할’의 경우, 기존 회사 주주들은 신주를 원래 지분의 비율만큼 배정받는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 과정에서 지주사는 보유한 자사주의 비율대로 자회사에 대한 의결권을 갖게 된다.

만일 13.3% 이상의 자사주를 소각하고 나면 이 부회장은 경영권 공격을 받을 때 이를 방어할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이 부회장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0.6%이며, 부친 이건희 회장(3.54%)과 계열사의 지분을 합해도 18%를 겨우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외국인 주주의 지분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 등으로 지주사 전환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발 빠르게 지주사 전환을 포기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삼성전자는 줄곧 주주가치 제고를 표명했다는 측면에서 주주환원정책의 ‘현실화’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 자료사진(촬영=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엘리엇 요구 일부 수용…“국내주주도 이득”

삼성전자의 주주가치 제고 정책은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같은 벌처펀드들의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주행동주의란 주주들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뜻한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주주행동주의를 추구하는 펀드, 즉 행동주의헤지펀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부실기업을 인수한 뒤 단기간에 매매해 차익을 노리는 ‘약탈꾼’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2015년 2월 삼성물산의 지분 4.95%를 매입했다. 그해 5월26일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발표했고 6월3일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지분 2.17%를 추가 매입하여 7.12%의 지분을 가지게 됐다. 이후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대한 경영 참여를 선언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또 지난해 10월 삼성전자에 ‘주주가치 증대 제안서’를 통해 지배구조 개편을 포함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요구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삼성전자 홀딩스-삼성전자 사업회사) ▲삼성전자홀딩스와 삼성물산 합병 ▲30조원의 특수배당(혹은 1주당 24만5000원의 배당 지급)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한국거래소·나스닥 공동상장 ▲독립적인 3명의 사외이사 선임 ▲금산분리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등의 결정은 결국 엘리엇이 요구한 주주가치 제고 요청을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 이득은 국내 주주들에 대한 혜택으로도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도 이러한 주주행동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이상 ‘좋은 기업’을 찾는 활동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영자와 주주의 소통이 중요한 시대로 전환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