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방앗간 서울숲시작점(출처=소녀방앗간)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소녀방앗간 서울숲시작점은 ‘줄 서서 식사하는 곳’으로 명성이 높다. 소녀방앗간은 유행을 좇거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내세우지 않는다. ‘청정재료 한식밥집’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소박하고 담백한 식단을 권한다. 경상북도 청송에 있는 할머니들이 재배한 청정지역 농산물로 음식을 만든다. 소녀방앗간이 말하는 ‘청정지역’은 교통이 불편하고 관광 등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환경이 깨끗한 곳이다.

<이코노믹리뷰>가 소녀방앗간 서울숲시작점을 방문한 날도 식당 앞에서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십여분 기다렸을까. 차례가 돌아왔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봤다. 소녀방앗간 메뉴는 요일이나 절기,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제철 식재료를 반영해 메뉴를 구성하고 있는 것. 소녀방앗간의 시그니처 메뉴인 산나물밥을 주문했다. 산나물밥은 사시사철 매일 주문할 수 있는 메뉴다. 가격도 6000원으로, 평소 점심값과 비교했을 때 부담스럽지 않았다.

 

저렴하고 건강한 한 끼 식사

음식 주문을 받은 점원은 식수로 차를 내줬다. 취나물차였다. 처음 마셔봤지만 맛이나 향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얼마 후 산나물밥이 나왔다. 점원은 “밥에 간이 돼 있으니, 일단 맛을 보고 양념장을 넣어 드세요”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전체적인 음식 맛은 삼삼했다. 자극적인 맛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싱거울 수준이었다. 덕분에 쌀, 버섯, 연근 등 식재료 본연의 맛은 씹을수록 또렷해졌다. 소녀방앗간 매장에서는 음식과 함께 발효청, 잡곡 등 식재료도 구매할 수 있다.

소녀방앗간은 지난 2014년 10월 문을 연 뒤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숲시작점, 커먼그라운드 건대점,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 등 매장 수는 2년 6개월 만에 8개로 늘었다. 지난 2015년 약 8억8000만원이었던 매출도 지난해 2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소녀방앗간은 생생농업유통을 통해 쌀, 나물, 장류 등 식재료를 공급받는다.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는 소녀방앗간 설립자로 5월 현재 소녀방앗간 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공동설립자인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는 경영자로서 역할을 맡고 있다. 가난한 시골 사람들은 건강한 음식을 먹는 반면 풍족한 도시 사람들은 품질이 낮은 음식을 먹는 실상이 안타까웠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두 지역이 갖고 있는 불균형과 결핍을 상호 보완해줄 수 있는 방안으로 소녀방앗간을 시작한 것.

김가영 소녀방앗간 이사는 “소녀방앗간을 운영할 수 있는 최소 마진만 남기기 때문에 영업이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그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농민들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수익을 내기보다는 우리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명확하고 오랫동안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소녀방앗간 매장들이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서대문구 이화여대 등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배경이다. 상대적으로 임대료 시세가 높은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의 경우 메뉴 구성을 보강하고 판매가격을 올렸다. 임팩트투자전문기관인 HGI의 투자도 도움이 됐다.

소녀방앗간 식재료를 보면 산나물, 그중에서도 취나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대표 메뉴인 산나물밥에도, 식수 대신 제공되는 차에도 취나물이 들어간다. 생산자 입장에서 재배가 용이하고 생산성이 높은 까닭에 산나물을 식재료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메뉴명이 ‘취나물밥’이 아닌 ‘산나물밥’인 이유는 무엇일까. 절기와 작황에 따라 취나물 종류와 함께 들어가는 나물이 달라지기 때문.

▲ 소녀방앗간 매장에서는 들기름, 산나물차, 잡곡 등도 구매할 수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김 이사는 “한겨울 파프리카가 몸에 좋다고 소개하는 건강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추위 속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려면 비닐하우스를 짓고, 난방을 하고, 제철보다 훨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며 “반면 제철 농산물을 활용하면 생산자는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건강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녀방앗간에서 사용·판매되는 식재료는 자연스러운 농사 주기에 맞춰 결정된다”며 “우리(소녀방앗간)가 필요하다고 생산자(농가)에 무리한 주문을 하지 않고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의 조리법을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소녀방앗간은 생생농업유통이 보유한 인프라를 활용해 농가와 식재료 납품계약을 맺는다.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는 만큼 신뢰할 수 있는 농가로부터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농민들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안정적인 구매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언뜻 보면 농산물직거래와 유사해 보인다. 소녀방앗간의 식재료 유통망은 생생농업유통의 역할로 특별해진다. ‘장아찌 불고기밥’ 메뉴 탄생 배경이 대표적이다.

무 가격이 폭락한 해가 있었다. 유통업자들이 무 구매를 거부하면서 경제적 피해는 그대로 농가로 전가됐다. 당시 생생농업유통은 계약조건과 무관하게 거래를 맺고 있는 농가에서 무를 사들였다. 문제는 저장법이었다. 김 이사는 “무는 며칠만 지나면 바람이 든다. 장기간 보관이 어려운 식재료다”라며 “소녀방앗간 내부 협의를 통해 무 장아찌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추가된 메뉴가 장아찌불고기밥”이라며 여느 농산물 직거래 시스템과 소녀방앗간 유통 시스템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소녀방앗간이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일반적인 경영 논리와 거리가 있다. 지점 확장이나 식재료 구입 등은 수익성을 따지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진행한다”는 게 소녀방앗간 측 설명이다.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도 남달랐다. 산나물밥의 경우 법정 최저시급에 맞춰 가격을 책정했다. 한 시간 동안 일하고 한 끼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현실에 소녀방앗간 측은 의문을 제기했다. 소녀방앗간은 향후 최저시급이 오르면 그게 맞춰 가격을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농민들에게 수익을 돌려주겠다는 부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