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똑똑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무용지물일 수 있다. 반대로 가장 ‘멍청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쓸모가 많은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경우 흔히 발생하는 일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현실에 적합해 사업으로 영위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한국에도 이런 기업이 있다. 바로 파운트AI다.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파운트의 자회사인 파운트AI는 지난 4월 대선 챗봇 ‘로즈’를 선보였다. 카카오톡 친구맺기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로즈는 후보자별 핫이슈, 뉴스, 여론, 공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나의 투표소 위치와 함께 대선 후보자의 기본정보 등을 제공한다.

기자가 처음 로즈를 체험했을 때 다소 실망감이 없지 않았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채팅을 통해 실질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그 수준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실제로 로즈는 멍청했다.

▲ 주동원 파운트AI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주동원 파운트AI 대표는 “로즈는 우리가 가진 엔진 중 가장 멍청합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기자는 주 대표가 잘못 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로즈는 ‘멍청’하고 주 대표는 왜 로즈가 ‘멍청’하다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것일까.

“대선은 상당히 민감한 주제에요. 그런데 만약 로즈를 일반 모듈에 학습시키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요. 특정 후보를 공격하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등의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학습데이터를 최소화해 기본적인 답변을 하거나 정보을 알려줄 수 있도록 고안한 겁니다”

현재 파운트AI에는 로즈 외에 금융 전문 챗봇 ‘파이’와 아직 세상에 선보이지 않은 챗봇인 ‘욕쟁이’(가칭)가 있다. 세 가지 챗봇 중 가장 똑똑한 욕쟁이는 상대방이 말하는 의도까지 파악한다. 실제로 ‘어이’라고 입력을 하자, 욕쟁이는 ‘xx, xxx’라며 그 이름답게 ‘욕’으로 대답했다.

“욕쟁이는 ‘어이’라는 단어 자체가 약간 시비조라는 것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는 겁니다. 똑똑하죠. 근데 쓸모가 없어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니 서비스로 내놓기는 아직 곤란한 거에요. 그런데 로즈는 멍청하지만 서비스가 되는 거죠”

주 대표는 이를 BQ(Business Quotient)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굳이 한국어로 의역하면 여러 사업에도 그 ‘몫’이 있다는 것이다.

“챗봇의 목적이 뚜렷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욕쟁이와 로즈의 상황이 바로 그런 거에요. 제가 로즈를 ‘멍청하다’고 표현했지만 실질적으로 현재 비즈니스가 되는 챗봇은 똑똑한 욕쟁이가 아니라 로즈에요. 욕쟁이는 목적성이 없거든요. 이는 챗봇 사업에 있어서 기술력보다 기획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향후에도 로즈는 맛집 챗봇, 쇼핑 챗봇 등 그 목적에 맞게 보다 다양한 형태로 변화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파운트AI 설립의 계기를 마련해준 로즈. 로즈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 주동원 파운트AI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어느 날, 회식을 하다가 대선 얘기가 나왔고 그 자리에서 5시간 동안 직원들끼리 대선관련 챗봇 관련 얘기를 나눴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 날 아침부터 회사에 전부모여 역할 분담을 하고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존 업무와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분담했고 10일만에 로즈가 만들어졌습니다”

파운트에는 챗봇을 연구·개발할 수 있는 고급인력들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 고객들의 챗봇에 대한 요구와 맞물렸고 전략적으로 키워나가자는 취지로 파운트AI가 설립된 것이다. 또, 파운트AI는 파운트와 한양대 기술지주가 주요주주로 있어 산학협동 연구를 진행중이다.

“정치에 큰 뜻을 품고 만든 것은 아니에요. 다만 로즈를 통해서 사람들이 후보자들의 공약은 알고 투표 하자는 취지로 출발했습니다. 일반인들이 후보자들의 공약을 일일이 찾아보는 것은 지루할 수 있지만 챗봇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요. 그렇다면 자신이 투표하고자 하는 후보에 대해 관심이 생길 수 있죠. 우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즈는 1~5차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후보자간 공방횟수와 후보들이 자주 반복한 단어들을 추려냈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이용해 도식화된 표를 만들어 토론회를 직접 시청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시간별로 후보들의 발언과 함께 토론 중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댓글들도 분석해 공개했다. 이를 통해 누리꾼들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 주동원 파운트AI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벌써 파운트AI를 인수 하겠다는 기업이 있습니다. 직원들 전원이 매달린 결과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AI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많다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많이 신중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사업의 성공여부는 시장과 맞물리는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희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주 대표에게 조심스레 올해의 목표를 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다소 파격적이었다.

“대선봇을 선보인지 한 달 정도 됐지만 올해 목표는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는 겁니다. 하나의 챗봇으로 다양한 기획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수익성이 확보될 수 있는 만큼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익성만 보고 급하게 가진 않을 겁니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니까요. 천천히 그리고 탄탄하게 기술력을 다지고 기획을 더해 성장할 겁니다”

파운트AI가 성장을 할 수 있는 이유로 그들의 기술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 대표가 말한 BQ가 핵심이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즉 기획이 끌어주지 않는다면 기술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 생산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아 판매자들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대량생산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객과의 접점이 중요해졌으며 그 뒤를 이어 플랫폼 시대가 도래했다. 현재는 플랫폼 시대를 넘어 플랫폼끼리 전쟁하는 시대가 돼 버렸으며 이 가운데 모든 비즈니스는 ‘맞춤형’, 즉 기획에 초점을 맞춰가는 추세로 변모하고 있다. 파운트AI도 이러한 흐름에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있다. 기획이 기술을 이끄는 시대를 몸소 체득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