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던 시계가 빨라졌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빈티지 시계라 AS 센터를 방문하기 어려워 종로로 향했다. 목적지는 세운스퀘어에 위치한 M워치. 국내 시계 커뮤니티에서 소문난 시계 기술자, 이태주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이 나왔다. 먼지 한 톨 없는 작업대와 일렬로 정돈된 수리 도구에서 그의 꼼꼼함이 절로 느껴졌다. 안심하고 시계를 풀어 그에게 건넸다. 백 케이스를 열어 무브먼트를 요리조리 들여다본 뒤 “헤어 스프링이 망가졌네요. 금방 고쳐 드릴게요. 놓고 가세요”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소중한 시계를 맡겨 놓고 보니 입소문이 날 정도로 성공한 시계 기술자가 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홈페이지]

 

광고 디자이너에서 시계 기술자로

▲ 이태주 대표가 수리 중인 무브먼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이 대표가 전문 시계 기술자가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시계를 좋아해서’다. “원래 미술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죠. 대학에선 산업 디자인과 안경 광학을 전공했어요. 디자인 일도 꽤 오래 했죠. 서른 네 살까지 디자인 관련 일을 했으니까요” 광고 대행사, 방송국 등에서 활약하던 중에도 이 대표의 마음 한 편엔 시계에 대한 열망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시계 일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시계에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군대 전역하자마자 청계천에서 시계를 하나 샀어요. 그런데 시계가 잘 안 맞더라고요. 예지동에서 수리를 맡겼는데 웬걸? 시계를 엉망으로 고치는 거예요. 그때 결심했죠. 내 시계는 내가 고쳐야겠다” 그날 이후 시계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하나씩 사 모은 이 대표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기계식 시계를 뜯어보고 고쳐보며 한 걸음씩 시계 기술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 깔끔하게 정돈된 이태주 대표의 작업대.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올해로 10년째 M워치를 운영 중인 이태주 대표는 매장 청소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천성이 깔끔한 탓도 있지만 시계를 고치고 손보는 환경은 무엇보다 청결이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다이얼이나 무브먼트에 유입될 수 있는 먼지와 각종 불순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결에 예민한 편입니다” 실제 그의 매장은 전국에 있는 시계 수리 매장 중 가장 깔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깨끗한 건 매장만이 아니다. 그의 작업대 위엔 반짝반짝하게 닦인 시계 부품들이 놓여 있었다.

 

▲ 매장 한 편에 자리 잡은 그라이너 바이브로그라프(greiner vibrograf)사의 무브먼트 세척기.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 세척을 마친 시계 부품들.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이 대표는 매장 한 편에 놓인 무브먼트 세척기를 M워치의 차별화 포인트로 꼽았다. “공식 AS 센터 외에 자동화 세척기를 사용하는 곳은 거의 없죠. 전국에 열 군데도 안될 거예요. 기계 값만 해도 천만원이 넘는 데다가 세척액 가격도 만만치 않거든요. 사설 수리점에선 대부분 손으로 닦죠.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닦는 게 더 꼼꼼하지 않냐고 묻는데, 세탁기를 생각해보세요. 손빨래가 일상이던 시절, 세탁기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품었죠. 기계가 사람보다 빨래를 깨끗이 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세탁기가 없어졌나요? 아니죠. 무브먼트 세척기도 마찬가지예요. 초음파로 닦고 맞춤 솔루션도 제공되니 더 세밀하게 세척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 대표는 이외에도 다양한 공구와 부품별 맞춤 오일링을 M워치의 장점으로 꼽았다.

M워치의 수리 비용은 오버홀 기준 최저 12만원이다. 롤렉스는 20만원대, 파텍필립은 50만원대,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만원 중반에서 30만원 선이다. 퍼페추얼 캘린더 같은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100만원 정도. 수리 기간은 타임 온리 모델의 경우 일주일가량 소요된다. M워치에 수리를 맡긴 시계는 작업 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뒤 시간 조정까지 마친 상태로 고객에게 돌아간다.

이 대표는 시계를 수리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으로 부품 수급을 언급했다. ETA와 같이 기성으로 많이 나와있는 무브먼트의 부품은 구하기가 비교적 쉬운 반면, 희귀한 무브먼트는 파트가 없어 부품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이럴 때엔 선반으로 부품을 깎아야 하는데 국내에 선반하시는 분들이 점점 줄고 있어요. 종로엔 지금 두세 분밖에 안 남았고요. 이분들이 그만두시면 희귀한 무브먼트는 수리하기 더 어려워지겠죠”

 

'종로는 싸다'는 편견에 맞서다

▲ 올해로 10년째 M워치를 운영 중인 이태주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전 세계적으로 시계 산업이 불황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스위스 시계 수출액이 7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불황의 여파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중고 시계 구매율이 높아지고, 되려 있는 시계를 고쳐 쓰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대표는 종로 시계 수리 점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에 대해 꼬집었다. “예를 들어 같은 부분을 고치는데 압구정에서 수리 비용이 10만원이 나오면 괜찮고, 종로에서 10만원을 부르면 비싸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종로에서 시계 수리를 하고 계신 어른들 중엔 경력이 3~40년 이상 된 분들도 많아요. 정말 청춘을 이곳에 바친 분들인데 ‘종로에선 싸게 고쳐야 한다’는 선입관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게 아쉽죠” 이 대표는 이러한 편견에 맞서는 중이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안 해요. 편견에 타협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든요. 물건이 아니라 기술을 파는 거잖아요. 물건은 마진을 덜 떼면 깎아줄 수 있는 문제지만 인건비를 깎는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골 삼고 싶은 시계방

▲ 오버홀 작업 중인 롤렉스 서브마리너 무브먼트.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끝으로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독자들을 대신해 시계 수리에 관한 FAQ(자주 묻는 질문들) 시간을 가졌다. 먼저 시계가 갑자기 빨리 가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충격이나 자성에 노출되면 시계가 빨라져요. 헤어 스프링이 일정한 간격으로 감겨 있어야 하는데 충격이나 자성으로 인해 한쪽으로 쏠리면 헤어 스프링끼리 부딪히면서 시간이 빨라가죠. 기름칠이 과도하게 된 경우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요” 기계식 시계가 아예 멈췄다면? “우선 와인딩이 충분히 되었는지 확인해 봐야 해요.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면 메인 스프링이나 밸런스 휠이 망가진 거죠” 이 대표는 만약 시계 안쪽에 습기가 찼다면 방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 최대한 빨리 AS 센터를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수 관련 문제는 공식 AS 센터에서 수리하는 게 좋아요. 기존과 동일한 부품과 개스킷으로 교체해주니 아무래도 보다 확실하게 고칠 수 있죠. 방수 테스트도 다시 해주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오버홀 시기에 관해선 이렇게 조언했다. “보통 4~5년 주기로 오버홀을 받으라 권하는데 꼭 그렇진 않아요. 다만 시간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한다거나 파워 리저브가 짧아졌으면 오버홀을 받는 게 좋아요. 사실 평소에 점검을 받아 가면서 차는 게 가장 좋죠. 시계 좋아한다면 단골 시계방 하나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인터뷰를 마친 뒤 매장 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앉아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이태주 대표로부터 “시계 고쳐놓았어요. 언제든 편할 때 들리세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으로 아지트 삼고 싶은 시계방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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