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하락세가 본격화되고 있다. 필자가 근저(김구철의 대선전략, 2017)에서 예측한대로며, 본란에서 누차 지적한대로다. 안철수의 경쟁력은 온실 속의 경쟁력임이 확인된 것이다. TV토론에서 안철수는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 초등학생이었다. 꼬맹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치맛바람으로 상장 받는 아이였다. 결국 호남은 문재인으로 되돌아가고, TK 기층 정서는 홍준표로 완전히 돌아섰다. ‘나라가 어지러분데 얼라한테 매낄 수 인나.’

난세에는 거칠어도 힘있는 자에게 기대게 된다. 그게 사람 마음이다. 이성이나 논리는 아니지만 저절로 힘센 자에게 의지하게 된다. 대선 정국에서 가장 힘센 이는 조직력으로는 문재인이고, 개인기로는 홍준표다. 당연히 문재인이 압도적인 선두고, 홍준표는 앞으로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올 것이다.

한 가닥 남은 가능성은 반문연대다. 당내 압력이 고조돼도 뻗대는 유승민은 이제 큰 변수가 못된다. 문제는 역시 안철수다. 단일화는 기업 M&A와 동일하다. 지지율이 정점일 때라면 프리미엄을 인정받지만, 떨어질 때는 디스카운트된다. 요컨대 작은 거 내주고 쉽게 할 수 있었을 단일화를, 훨씬 큰 거 내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김종인 전 대표가 더불어 민주당 탈당 직후 바로 옛 제자 안철수에게 되돌아와 도와줄 수 없었던 것이 누구 책임일까? 김종인 책임일까? 안철수 책임일까? 김한길이 왜 나섰겠나? 고립된 안철수에게서 큰 몫을 떼어받고, ‘상왕론’으로 입지가 좁아진 박지원 대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 아니겠는가? 더큰 문제는, 안철수에 대한 검증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양쪽에서 지지율이 깎여 나가면 안철수는,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 득표율 15% 사수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안철수는 희망이 없다.

전쟁을 치르려면 군이 편제돼 있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장수라도 군이 집단군, 야전군, 군단, 사단급으로 편제돼 있어야 전쟁을 치를 수 있다. 그러나 보수는 전쟁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쪼개진 상태였다. 조원진, 남재준, 유승민, 홍준표.. 소대 중대 기껏해야 대대급이 최대 규모였다. 장비와 식량 보급은 끊긴지 오래였고, 기다리던 후임 지휘관은 전쟁이 터질 때까지도 부임하지 않았다. 사병들은 다른 진영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난 4월 초까지의 보수 진영의 상황이었다.

보수의 장졸들은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듯하다.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늦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제 어떤 수를 쓰더라도 운명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장졸 모두 안다. 안철수에게 역전을 기대하고 표를 몰아줬지만, 4살 박이 푸의가 청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제 기회는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지더라도 힘을 보여주고 져야 한다. 최소한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무조건’ 항복은 없다. 항복하더라도 보수의 조건을 관철해야 한다. 우선 보수의 씨를 남겨야 한다. 대신 썩은 보수는 걷어내야 한다. 박근혜에게는 관용을 얻어내더라도 친박 진박 하는 놈들은 혼쭐 나야 한다.

보수는 전략을 수정할 때가 됐고, 이미 전략의 수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전략의 수정은 사병들이 주도했다. 무능한 장수와 장교들이 수정한 것이 아니었다. 장수와 장교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 안철수를 밀자고 묵계를 맺은 상태였다. 그러나 사병들은 거부했다.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자. 당당하게 죽자.

이 기회에 썩은 보수, 낡은 보수 걷어내자. 말로만 개혁적 보수 외치는 놈들 걷어내자. 보수 진영이 어려워지자 뛰어내린 배신자들도 정리하자. 단물만 빨던 놈들 정리하고, 진짜 보수로 재편하자. 끼리끼리 나눠먹고 돌려먹던 놈들 이 기회에 다 정리하자. 우리 손으로 죽일 필요 없다. 문재인에게 정권과 함께 그런 썩은 보수 총정리할 책임도 함께 넘기자. 요컨대 TK의 구호는 이것이다. ‘TK 야당을 각오했다!’

문재인은 이런 상황이 즐겁지만 한편 마음이 무겁다. 보수가 안철수에게 표를 모아주면 당장 선거가 어렵겠지만 집권 후 다루기 쉽다. 보수의 구심점이 없고, 안철수는 정체성이 없으므로. 자기 목소리 없는 TK는 무시하고, 호남만 챙기고 달래면 충분하므로. 구심점 없는 보수를 상대로 진보 정권을 10년, 20년 끌고 갈 수도 있다. 본인의 장담대로 ‘앞으로 절대로 정권을 뺏기지 않겠습니다.’

보수가 홍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면 선거는 쉬워진다. 1987년 노태우처럼 YS와 DJ를 적당히 분리 제어하면 문재인은 승리가 확실하다. 대신 선거 후에는 결집한 보수를 파트너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실패했건 말건 어쨌든 지난 9년간 집권 세력이다. 축적된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에 반해 문재인의 참모들은 대부분 10년 훨씬 전에 국정을 담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싫지만 보수와 협치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