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보호 무역주의가 태평양을 넘어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로이터 통신은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10억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도록 할 것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상(FTA)의 재협상이나 종료를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 철회 명령서를 처리했으며,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지난 18일 방한 당시 한미FTA를 두고 '개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사드 배치의 경우 정치의 영역이다. 대선을 앞두고 현재 상주에 기습적인 사드 배치가 시도되는 가운데 한중 외교관계는 바짝 얼어붙었고,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은 이를 두고 북핵 문제와 동북아 역학관계를 고려한 큰 그림으로 접근하는 중이다. 한국 국방부 입장에서는 사드 배치 전 환경영향평가를 약속한 상태에서 미국 주도로 이뤄지는 사드 배치에 곤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커질 전망이다.

한미FTA와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경제의 영역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국내 가전 및 IT 업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려는 있었다
한미FTA는 한국과 미국 간의 상품 및 서비스 무역에 있어서의 관세 철폐 등에 관해 맺은 협정이다. 2006년 6월5일 협상을 시작한 후 2012년 3월15일 당시 야당의 강력한 반발속에 발효되었다.

양국 간 공산품과 농축수산물의 관세 장벽이 사라지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유 무역주의 기조를 살려 강력한 경제 블록화를 추구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최근 한미FTA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으로 일차 변곡점을 돌았다.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핵심 아젠다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변화가 파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자국기업을 대상으로 보호 무역주의 시동을 걸었다. 일자리 창출의 기조를 바탕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자국기업에게 '내수에 집중하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아이폰 생산 시설의 미국 이전을 강하게 유도하는 한편 법인세 인하라는 당근을 통해 압박했다. 자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는 기업에는 세금 폭탄을 운운하며 압박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이에 포드는 멕시코 공장 건립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의 만남도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에서 무려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며, 회담이 종료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1층 로비까지 마윈 회장을 배웅하며 "난 그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알리바바가 오는 6월20일부터 21일까지 미국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코보 센터에서 게이트웨이 17 행사를 연다고 밝힌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기업과 농업 및 창업가들이 중국 시장에서의 성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자리이자 중국인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다는 후문이다. 이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약속'을 이행한다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만남도 이해할 수 있다.

다음타깃은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장사하는 외국기업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트위터를 통해 도요타가 멕시코 신 공장에서 코롤라를 생산해 미국에 팔려면 큰 관세를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보복론 카드를 꺼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제일 먼저 움직였다. CES 2017 기간이던 지난 1월6일 조성진 부회장이 미국 내 공장 건설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며 그 진척도에 대해 "80%는 정리가 되었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삼성은 170억달러를 토자해 미국 오스틴에 있는 반도체 공장 이외에 TV와 세탁기, 냉장고 등을 만들 새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는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삼성과 LG는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이미 잽을 한방씩 맞은 상태다. 중국에서 생산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정용 세탁기가 미국에서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본 사안은 지난 2015년 월풀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내 판매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진 바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 무역주의 기조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상태다. 지난 22일 종료된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보호 무역주의에 대한 제한적인 언급만 거론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당시 글로벌 경제에 대한 성장 모멘텀 확보와 하방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이뤄졌으나 관심을 모았던 보호 무역주의에 대한 G20의 방향성은 보이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 열렸던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공동 선언문에서 보호 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멘트가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다.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과 국제기구 수장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까지 재협상하거나, 혹은 종료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우선 한미FTA 자체가 국내 전자 및 IT, 자동차 업계에 상당한 이득을 줬다는 것은 나름 인정되고 있다.

지난 2012년 한미FTA 발효 당시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가 이를 즉각 환영했던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의 행보를 보더라도 쌀시장 개방 이슈 등 약간의 이견은 있지만 크게 보면 한국경제에 고무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한미FTA가 불리하게 재협상, 혹은 폐기되면 당장 대미 수출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수립해야 한다.

방법이 없을까?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직후 현대경제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한미FTA 재협상을 전제로 새로운 대미 수출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통해 보호 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면서 한국경제에 일정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를 계기로 인프라 투자, 에너지산업 강화 등으로 미국의 관련 상품 수요 확대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맞춤형 마케팅을 통해 미국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하나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승산이 없기 때문에 일종의 융복합 솔루션을 판매, 원스톱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