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한산도 큰 싸움의 승첩한 장계가 의주 행재소에 이른 것은 10여 일 뒤 7월 하순이었습니다. 적막한 행재소에서 군신이 소서행장 등 일본군이 밀고 들어오지 아니하나! 명나라로부터 구원병이 언제 오나! 하고 맘을 졸이고 있을 때였고 또 3, 4일 전에 고니시가 조선왕에게 글을 올렸는데

‘일본수군이 또한 서해로부터 오니 대왕의 용어(龍御=임금이 왕위에 있음을 말함)가 이로부터 장차 어찌 될 것인가?’

하는 글로 위협을 했었기에 선조와 대소신료들은 혼이 나간 상태, 멘붕상태에 있던 때인지라 전라감영의 도사 최철견이 감사 이광의 명을 받아 좌수사 이순신의 견내량 한산도 사이에서 대승전한 장계를 가지고 밤낮으로 달려 행재소에 도착한 것은 대단한 기쁨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시를 남파 홍우원이 쓴 것을 보겠습니다.”

 

노시부상열쌍개怒視扶桑裂雙皆 환환대의격장사桓桓大義激壯士

장과이극늠상설長戈利戟凜霜雪 두담윤균양적자斗膽輪囷楊赤髭

소탕성기족가기掃蕩腥氣足可期 백패황기교취유白旆黃旂交翠蕤

 

부상(일본)을 노려보며 부릅뜬 눈 대의로 장병들 격동시키고

예리한 창끝은 눈서리같이 찬데 불끈 일어난 큰 담력 휘날리는 붉은 수염

원수를 쓸어내자 기약하고 흰 깃발 붉은 깃발 휘날리네

 

“음! 이순신장군을 기리는 시구나! 여기서 양적자라고 하였는데 이순신장군의 수염이 붉었다고 한다.”

“네, 그런데 조정에서는 한산의 해전에 대한 장계를 올린 것에 대한 시기 질투가 묻어나오는데요.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이 견내량과 한산도에서 적의 병선 70여 척을 깨뜨려서 적의 수군 9천여 명이나 죽였다 하오.’

하고 좌의정 윤두수가 전라도사 최철견과 안동(眼同=사람을 데리고 가거나 물건을 가지고 감)해온 이순신장군의 군관 송여종을 옥좌 앞으로 인도할 때 선조는 마치 무서운 꿈이 깨친 듯이 최철견이 올린 장계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음! 임금이 이순신장군의 장계를 보니, 처음에 대전의 시종으로부터 경과한 것과 공을 이룬 제장의 성명을 상세히 쓰고 끝에는 제장 군졸 등이 분연히 제 몸을 돌아보지 않고 여러 번 힘껏 싸워 승첩하였으나 조정이 멀리 떨어져 있고, 길이 막혀 조정의 명령을 기다린다면, 군사들의 심정을 감동시킬 수 없는 고로 우선 공로 1, 2, 3등을 참고하여 헤아렸고, 의당 처음 약속하여 비록 머리를 베지 못하였더라도 죽이는데 힘써 싸운 사람들은 신이 직접 본대로 등급을 나우어 결정하였습니다 라고 운운하였다.”

 

4)나라가 풍전등화였던 것을 한산대첩으로 살려내자 또 조정대신들은 시기, 질투에 의해 나라를 살린 영웅 이순신장군을 헐뜯다.

 

“네, 인간은 어느 시대나 할 것 없이 훌륭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헐뜯는 구조적 결함에 의해 분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선조가 기쁨을 못 이겨 허리를 펴고 소리를 질러

‘과연 이순신은 천하의 명장이로다! 이렇게 막강한 적을 격파하니 만고에 참으로 드문 영웅이로다.’

하시고 또 그 문장필법을 찬양하며 못내 기뻐하여 좌우를 둘러보았습니다. 영의정 최흥원, 좌의정 윤두수, 우의정 유홍, 전 대신 유성룡, 정철, 병조판서 이항복 등이 좌우에 서 있었고, 그들 중에 장군의 대 승첩을 기뻐하지 않는 이가 많았는데, 나라는 어찌되건 말건 이순신장군은 유성룡이 천거한 사람이어서 동인이라고 낙인이 찍혔기 때문입니다.”

“조정대신 놈들이 썩어도 단단히 썩어 충신을 말로서 죽이려고 하던 자들이 아니더냐? 선조는 장군의 군관 송여종이 받들어 올리는 적장의 머리 3과 왼쪽 귀만 베어 젓 담근 항아리를 임금이 손수 열어보고 친히 송여종에게 싸움할 때의 광경과 그 계략을 말하게 하여 듣고, 곧 승지를 불러 이순신 장군을 정1품에 올리는 교지를 쓰게 하고 송여종을 남평 현감을 시키라 하였다.”

“네, 이에 정철이 임금 앞에 나와 엎드려

‘이순신의 공이 적다할 수 없소마는 그만한 공에 정1품을 주시면 더 큰 공을 세울 때에 무엇으로 갚으려 하시오. 작위는 남용하는 것도 장려하는 도리가 아닌가 하오.’

하고 임금의 1품 주자는 말에 반대하였다. 이에 간신배인 유홍이 또 임금의 앞에 엎드려

‘신의 생각도 그러하오. 장군이 비록 큰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일개 수군절도사에게 1품을 준다하면 기강이 무너지는 것이니 옳지 아니한가 하오.’

하고 정철의 말을 도왔고, 정철과 유홍의 말에 조정의 많은 서인들은 통쾌함을 느꼈습니다.”